"진리도 고차의 생명도 모든 사람의 혼에 내재해 있다. 각 개인은 그것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고 또 발견해 내야 한다(초감각적인 세계인식에 이르는 길, 2026, 113)."
매일경제신문(2026, 07,31) 15면에 SK 하이닉스 수시 채용에 관한 내용이 실렸다. 종전과는 다른 모양인데, 자소서 없애고 다면 인터뷰로 근원적 사고력을 종합평가하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신문에 따르면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생각 근육(근원적 사고력)'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개편이라고 한다. 연령과 학력 상관없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으며, 20-30분 진행되던 기존 면접대신 반나절 동안 심도있는 과제 수행과 인터뷰를 진행해서, 지원자의 직무 전문성부터 AI 응용능력, 인문학적 소양, 논리적 사고력 등을 종합 검토한다고 한다.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서 이와 같은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외쳤지만, 귀를 기울이는 경우가 많지 않았는데, SK에서 실시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여기에서는 생각 근육을 어떻게 키울것인가가 중요한 핵심사안이다. 생각 근육만 있으면 직무 전문성, AI 응용능력, 인문학적 소양, 논리적 사고력 등이 모두 길러지기 때문이다. '생각 근육이 뭘까'? 그리고 '어떻게 키울까'가 질문이다.
물론 생각 근육이 정신이다. 그러므로 정신을 어떻게 발달시켜야 하는지가 질문이 된다. 정신은 인간의 발달단계에 따라서 발달하므로, 인간의 발달단계에 따라서 발달시키면 된다. 하지만 인류가 정신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현재 공교육이나 사회에서는 인간의 발달단계에 따른 정신이 발달하지 못한다. 어쩌면 오히려 정신을 망가뜨린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므로 방법은 현재 자신의 상황, 자신의 정신을 살펴서 스스로 발달시켜야 한다. 현재 다른 방법이 없으므로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물론 자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다른 사람의 모습이 잘 보이는 것도 있지만, 이것은 정신이 보이지 않아서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다.
정신은 시공간을 막론하고 물질의 이면에서 물질을 움직인다. 예컨대 누가 어떤 말을 한다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정신이 그렇게 말을 하도록 한 것이므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정신이 그렇게 그 사람을 움직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말, 예컨대 도덕적인 법칙에 맞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 들어올 복을 차게 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안 보일 수도 있지만, 긴 눈으로 보면 그렇다. 왜냐하면 이것이 진리이기 때문인데, 필자의 짐작으로는 그 사람의 정신이 발달할려면 그런 시련을 계속 겪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시련이 계속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정신이 발달한다면, 그런 시련을 겪을 필요가 없으므로 그런 시련에서 비로소 놓여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신은 보이지 않지만, 끊임없이 작용해서 그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이 발달하도록 돕는다. 이것이 물질적인 시각으로 보면 터무니 없겠지만, 이것이 정신의 속성이기 때문에 일종의 진리라고 해도 된다.
통상 우리는 인간이 태어날 때를 기준으로 삼지만, 반면 죽음을 기준으로 삼으면 죽음에서 새로 태어날 조건을 형성한다고 볼 수도 있다. 예컨대 이번 생에서 이루지 못한 목표를 다음 생에 이루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의 목표가 아니라 정신의 목표이다. 인간에게 죽음이란 정신의 목표를 이루기 어려운 상태의 몸이 되면, 인간은 스스로 죽음에 이르고, 새로운 삶을 통해서 정신의 목표를 이어 나간다고 한다(슈타이너의 주장). 이런 관점에서 죽음이 출발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 오는 시련이란, 정신의 발달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시련을 통해서도 정신의 발달을 이루지 못한다면, 계속해서 그런 시련을 겪어야 하고 끝내는 물질의 몸이 이를 수용하지 못하게 되어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시련 속에서 정신의 발달을 이루려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칙이 있다. 불가(종교)에서 말하는 오계이다. 이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데 크게 보면은 도덕적인 법칙이다. 도덕적인 법칙이 몸에 배서 완전히 내것이 되어야 한다. 어느 순간 어떤 곳에서도 저절로 지키는 수준에는 이르러야 정신의 발달이 일어난다. 물론 필자도 처음에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할 때는, 정신의 발달이 그렇게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 몸에 배인 것을 확인한 순간 정신의 발달도 눈에 띄게 발달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확 와 닿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정신의 속성이 그러므로 이해가 되면은 정신의 수준도 그만큼 높아졌다는 사실을 파악할 것이다.
다음은 그 이유이다. 인간의 정신은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에 의해서 발달한다.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는 육체, 에테르체, 아스트랄체, 그리고 자아이다. 먼저 아스트랄체는 감정체로 영혼의 바탕을 이룬다. 예컨대 내가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가지면 아스트랄체가 즐거움이라는 감정으로 영혼의 바탕이 된다. 영혼의 바탕이 즐거우면 영혼도 하는 일이 즐겁다. 영혼은 사고, 감정, 행동(의지) 활동을 한다. 그러므로 영혼은 자신의 활동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아스트랄체는 또 에테르체를 깨우는 역할을 한다. 아스트랄체는 에테르체를 깨워서 영혼이 하는 활동을 즐겁게 연결해 주게 된다.
예컨대 내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즐겁게 운동을 한다고 한다면, 에테르체에 이런 사실이 전이된다. 그러면 에테르체도 즐겁게 운동을 할 것이고, 이것이 오랜 시간 쌓이면 습관이 된다. 습관이 되면 물질체인 육체에 까지 영향을 주게 된다. 오랜 시간 운동 습관이 쌓이면 육체는 건강해지고 얼굴도 밝아지는 것이 정신이 물질을 움직인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까지 갈려면 나의 자아가 깨어있어서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 그리고 육체를 감독하고 안내해야 한다.
반면 이러한 정신과학적 요소를 배제하고 무시하면, 즉 내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무시하고 배제하면 나는 내가 가진 감정에 휘둘리게 되어서 그 감정에 빠지는 결과가 된다. 요컨대 내가 우울한 감정에 빠지면, 나는 우울증에 걸릴 수가 있는 것이다.
다음은 도덕적인 법칙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이유이다. 이런 정신과학적 요소가 내 안에서 움직이는데, 움직이는 그 체계가 도덕적인 법칙에 따른다면, 그 체계와 도덕적인 법칙이 하나가 된다면, 나는 정신세계의 법칙에 따라서 움직이게 된다. 이 말을 다르게 말하면 내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저절로 정신세계의 법칙에 따른다는 것이다. 결과 정신세계의 속성과 지혜를 내가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감각에서 정보가 들어오면 영혼활동이 일어나는데, 처음에는 무의식, 잠재의식에서 영혼활동이 이루어지고 이어서 의식으로 드러난다. 우리는 통상 의식에 드러난 영혼활동을 파악하지만, 잠재의식에서 이루어지는 영혼활동이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영혼활동이다. 따라서 만약 이러한 영혼활동을 내가 파악한다면, 정신세계에서의 영혼활동도 파악할 수가 있다. 만약 내가 도덕적인 법칙과 하나가 된다면, 나의 정신과학적 요소가 정신세계의 속성에 따른 활동을 할 것이다. 이것이 정신의 발달이다. 요컨대 도덕적인 법칙에 따라서 나의 영혼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다음은 도덕적인 법칙을 따라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첫째, 도덕적인 법칙에 따르면 나는 나의 카르마대로 삶을 살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의 영혼활동은 나의 카르마대로 움직이는데, 도덕적인 법칙에 따르면 나의 영혼활동이 카르마에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나의 영혼활동이 도덕적인 법칙에 따르게 되면 정신의 발달이 이루어진다. 이미 말했듯이 나의 영혼활동이 정신세계의 속성에 맞게 이루어지기 기 때문에 그렇다. 도덕적인 법칙이 몸에 배면 영혼활동 또한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음은 필자가 도덕적인 법칙이 몸에 배었다는 것을 파악한 예이다. 아주 사소하지만 어떤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행동하고 말한 예이다. 얼마 전에 필자의 아주 작은 상가 사무실 임대 계약차 과거 임차인과 새 임차인이 서로 만나서 게약을 하는데, 과거 임차인이 '손해만 보았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고 그 일을 말한 모양인데, 오히려 '그동안 잘있었다'는 취지로 말해주면은, 이런 환경에서 정신이 발달했을 것이므로 도움이 된다. 예컨대 그런 환경에 정신이 발달했을 것이므로 다시 그런 환경에 놓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 말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이것이 아쉬웠던 점이었다. 이것이 몸에 배인 때문인듯, 이럴 때 필자는 말하지 않는다. 다른 경우도 많이 있겠지만, 모두 정신의 관점으로 보면 같다. 이것이 중요한 점이다.
이것이 정신을 발달시키는 방법이고 발달시켜야 하는 이유이다. 요컨대 '진리도 고차의 생명도 모든 사람의 혼에 내재해 있으므로 각 개인은 그것을 스스로 발견해야 하고 또 발달시켜야 한다'. 되풀이하지만 정신과학적인 요소를 발달시켜야 하고, 도덕적인 법칙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완전히 도덕적인 법칙과 하나가 되어야 아주 조금 정신의 발달이 드러날 것이다.
물론 인류가 정신을 배제해서 이와 같이 정신을 말해도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SK 하이닉스가 뽑을려는 인재인 생각 근육은 정신이 발달해야 그와 같은 근육이 길러진다는 사실은 진리이다. 어떤 방법으로 말해도 정신이 발달해야 가능한 일이다. 인간의 발달단계에 따라서 인간 정신이 발달해야 하지만 인류가 정신을 배제하였으므로 발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오직 스스로 노력해서 자신의 정신을 발달시켜야 한다.
여기에서 필자는 현 인류가 정신을 배제하고 지성을 발달시켰으므로, 현 인류는 사고력을 통해서 정신을 발달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사고력이 정신이므로 역시 정신으로 귀결되지만, 현재의 자신의 상황에서 사고력을 통해서 정신을 발달시킬 수가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에서 '왜 그럴까'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자신의 내부와의 대화이다. 어떤 문제이든 자신의 내부와 대화를 시도해야 하고 결론을 이끌어 내야만 한다. 물론 처음에는 자신의 내부와 대화가 어려워서 마치 안개속을 헤매는 것과 같겠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므로 어쩔 수도 없다.
이렇게 하면은 최소한 정신병에는 걸리지 않을 것이고, 나아가 정신의 발달도 가지고 올 것이므로 꾸준히 해야 한다. 결과 점차 도덕적인 법칙에 맞는 삶을 살게 되고, 도덕적인 법칙에 맞는 만큼 정신의 발달도 가지고 온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