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관련해서 올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이어지는 내적 체험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비밀학 개요, 2024, 346)."
올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이어지는 내적 체험을 얻어야 한다는데, 얻어지는 내적 체험이 궁금하다. 이것이 질문이다. 사실 정신은 모두 내적 체험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절대적으로 내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내적 체험을 통상 그냥 지나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내부에 집중해서 이어지는 내적 체험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 처음에는 마치 허공을 헤매는 듯, 캄캄한 밤중을 더듬는 것과도 같겠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반드시 정신을 파악하고 또 정신을 발달시킬 수가 있다.
이에 관한 여담으로 경허스님(한국 불교 중흥조, 1849-1912)의 일화이다. 경허스님은 어릴 때 절에 맡겨져 자랐는데, 굉장히 총명해서 약관 20세에 불교를 가르치는 강사님이 되셨다. 어느 날 스승님이 민가로 심부름을 시켰는데, 가는 길에 전염병이 돈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인적이 끊어진 마을에 들어선 경허스님은 마침 그때 비가 내려서 빈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게 되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이런 경허스님을 보고, '여보시오, 여기는 전염병이 돌아서 마을이 폐쇄되었으니,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이 마을을 떠나시오'라고 소리쳤다. 이때 경허스님은 문득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동안 경허스님은 불교 교리를 가르치면서 생과 사를 떠났다고 생각했고, 학생들한테도 그렇게 가르쳤는데 실제 죽음 앞에 선 자신은 죽음 앞에서 떨고 있었던 것이다.
'심부름을 다녀 온 경허스님은 강사 자리를 모두 내려놓고 동학사 조실방으로 들어가 목숨을 걸고 정진을 시작하였다. 창문 밑으로 주먹밥이 들어올 만큼의 구멍을 뚫어놓고, 한 손에는 칼을 쥐고, 목 밑에는 송곳을 꽂은 널판지를 놓아 졸음이 오면 송곳에 다치게 장치하여 잠을 자지 않고 정진하였다고 한다. 석달 째 되던 날 제자 원규가 동학사 밑에 살고 있던 이처사로 부터 소가 되더라도 '콧구멍없는 소가 되어야지'라는 말을 듣고 의심이 생겨 그 뜻을 물어왔다고 한다. 그 말들 듣자 모든 의심이 풀리면서 오도( 悟道)하였다고 한다. 그 뒤 서산 천장암으로 옮겨 깨달은 뒤에 보임 (保任)수행을 했다고 한다(경허선사 일대기 (석우당)작성자 지원 참조).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첫째, 문득 죽음 앞에서 떨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다. 글을 읽고 가르치면서 생과 사를 떠났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생각(현실에서의 상)이었고, 이것이 자신의 본래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도 몰랐다. 이렇게 자신의 본래 모습을 본 것도 늘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내면에 집중해서 의문을 품었기 때문에 볼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자신의 생각과 본래의 자신을 구별해서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 정신은 이렇게 불현듯 깨달음을 준다. 오랜 시간 둥안 의문을 탐구해야 순간 깨달음이 오는데, 이를 놓치지 않을려면 늘 자신의 내면에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불가에서는 '화두'이고, 슈타이너는 '오류'라고 불렀다.
셋째, 이렇게 깨달음이 오면 그 문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탐구해야 한다. 경허스님 시대는 칩거햐여 외부의 모든 대면을 끊고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수행을 하였다. 경허스님은 특히 잠이 많아서 정신을 또렷이 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장치를 한 모양인데, 잠을 자지 않고 오로지 그 질문에 집중해서 답을 탐구한 것이다. 이것이 당시 자신에 집중하는 방법이었다.
넷째, 이는 모두 자신의 본래 자아를 만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잠에서 깸과 동시에 에테르체가 만든 상속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인간의 자아는 상속에 들어있게 된다. 하지만 인간의 본래 자아는 상을 벗어야 드러난다. 그래서 생각해 보면 본래자아는 에테르체가 인간의 몸을 떠났을 때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죽기 전에 인간은 본래자아를 만나야 한다. 다섯 째, 그 이유는 현실의 삶은 상이므로 일종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즉 현실에서 본래자아를 만나는 것이 깨달음이다. 이렇게 현실에서 본래자아를 만나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본래모습을 보기 위함이다.
마지막, 이렇게 본래 자아를 만날려면 에테르체가 떠난 상태, 목숨을 버린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 정도로 자신의 내면에 집중해서 화두나 오류를 탐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본래 자아를 만나면, 비로소 인간의 본래 모습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예컨대 물질세계에서 식물은 죽고 씨앗을 남겨서 다시 자라지만, 정신세계(본래의 모습)에서는 죽음이 아니라 변형일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인간도 마찬가지이고, 삼라만상이 모두 같다.
이런 체험이 모두 내적으로 이루어져서, 이와 같은 글을 읽어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정신은 체험하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가 지식과 실천의 괴리가 생기는 지점이다. 학교에서 지식을 가르쳐도 마음(정신)에 연결되지 않으니, 즉 체험하지 못하니 지식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내적 체험이고, 이러한 내적 체험이 이루어질려면 자신의 내면에 집중해야 한다. 얼마나 집중해야하는지는 경허스님의 예에서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다음은 내적 체험의 단계이다. 슈타이너는 준비, 깨달음, 정신계 입문의 세 단계를 말하였다. 물론 세 단계는 순서대로 이루어질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단계는 거쳐야 한다고 말하였다. 경허스님으로 보면 준비단계가 불교에서 공부를 하고 강사를 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깨달음의 단계가 동학사에서 정진을 하던 시기였고, 정신계 입문의 단계가 서산 천장암에서 보림을 하던 시절이 아닌가 한다. 슈타이너는 정신계 입문 이후의 단계는 글이나 말로 할 수가 없는 단계로, 경허스님의 단계를 꼭 '그렇다'고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을 듯하다. 문제는 이 모든 단계가 보이지 않는 정신 체험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신체험이라고 해도 비슷한 단계의 수행에서는 비슷한 정신체험을 한다고 하니, 이렇게 옛날 선사들의 체험이 전해 내려 올수가 있는 것이다.
준비 단계는 먼저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하는 정신에 대한 체험이다. 슈타이너의 예로 살펴보면 자라는 식물을 보면 태양이 떠오르는 느낌을 느끼는 것이고, 쇠퇴하는 식물을 보면 달이 떠오르는 느낌을 느끼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아스트랄체의 느낌을 느끼면 이러한 체험을 할 수가 있다. 즉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아스트랄체의 느낌을 느끼는 정도가 준비단계이다.
다음은 깨달음의 단계이다. 슈타이너가 말하는 깨달음의 단게는 씨앗을 놓고 볼 경우, 겉 모습은 같지만 모조씨앗에서는 어떤 싹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 씨앗에서는 싹이 트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 물론 눈에는 안 보이지만 분명 모조 씨앗에 없는 것이 진짜 씨앗에는 있다. 이 힘을 느끼는 것이다. 이 힘이 정신의 힘으로 슈타이어가 주장하기를 일종의 불꽃이라고 한다. "중심부에는 연보라색을 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올 것이며, 가장자리에는 푸르스름한 색깔을 대할 때처럼 느껴질 것이다(고차세계의 인식으로 가는 길, 2006, 84)."
다음은 정신계의 입문 단계이다. 씨앗에서 정신의 불꽃을 감지할 정도가 되면 정신계 입문을 할 수 있는 단계가 되었다고 한다. 정신계 입문은 정신 세계에서 명명한 이름을 아는 단계이다. 정신 세계에서 명명한 이름을 아는 것은 그 사물의 본래 모습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그럴려면 일종의 시련을 거쳐야 하는데 그 순서는 불의 시련, 물의 시련, 공기의 시런이다. 깨달음의 단계까지 왔다면 스스로가 포기 하지 않는 한 정신계에 입문할 수가 있다고 한다. 문제는 오직 혼자서 이 시련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단계 이후는 글이나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고 한다.
이렇게 정신세계로의 입문은 오직 혼자서 가야 한다. 자신의 내적 체험에 집중하면서, 그렇지만 누구나 갈 수 있어서 갈지 말지는 오직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한다. 가면 좋은 점은 현실에서의 문제점, 수수께끼같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살면서 만나는 모든 문제점을 해결할려면 정신계에 입문해야 해결한다. 두 번째는 정신계에서 얻은 정보와 능력은 물질세계에서 사용할 수가 있다. 사실 정신계에서 정보를 얻는 이유도 물질계에 적용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정신계에서 얻은 정보가 물질계에서 많이 사용되어 왔다. 예컨대 종교의 경전이 대표적이다. 그들도 정신계에서 정보를 얻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일을 할 수가 있었다.
세 번째, 자신의 정신을 사용할 수가 있다. 정신은 현실에서 드러나지는 않지만,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깨달은 사람의 마음이라면 전달되어서 전달된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주므로 도움이 된다. 물론 이는 그 사람에게 마음을 열었을 때만이 전달되므로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가스라이팅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마음을 열게 만들어서 세뇌를 하는 것이다.
네 번째, 이렇게 세뇌가 안될려면 늘 자신의 내면에 집중해야 한다. 집중해서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세뇌되어 있는지 살펴야 한다. 자신의마음이 어디에 빠져있는지, 중심을 잘 잡고 있는지 살펴서 중심을 잡아야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현실의 물질계에서 살지만, 늘 자신의 정신을 살펴야 자신의 삶을 살수가 있다. 이는 늘 자신의 내면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현실세계에 40%, 정신세계에 60%라고 통상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