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품을 통해서 아름다운 부인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림을 그렸을'뿐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마티스는 심리적인 주관으로 색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심리적이고 주관적인
나 역시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에는 어떻게 부인 얼굴색에 초록색을
넣을 수가 있는거지?
좀 더 예쁘게 그릴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항상 보이는 색보다는
좀 다른 색으로 명암을 표현한 것은 새로웠다.
야수파의 색은 공간의 구성이나 감정 및 장식 효과를 위해 임의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마티스 그도 역시 그 효과를 위해 색을 임의적으로 사용한 듯 싶다.
그림을 여러 번 보아도 마티스가 그려낸 감정의 효과가 왜 이런
그림으로 표현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마티스는 예술이 단지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만을 위한
예술로 나아가길 추구했다.
여기서 알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초상화는 단지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고 예술만을 위한 예술이 아닌 것임을 ...
초상화는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도 중요하지만 느껴지는
그대로도 중요한 것인 것 같다.
이 초상화를 보면 그림에서만 느껴지는 마티스에 대한 감상보다 도전정신, 수많은 시도를 했을
마티스라는 인간에 대한 감상을 좀 더 하게 되는 것 같다.
노년의 마티스는 병마와 싸웠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화가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기법으로 자신의
예술에 활기를 더했다.
새로운 기법이 바로 종이를 오려 붙이는 기법이었다.
종이 오려 붙이기 기법이란, 캔버스에 물감을 칠해서 그림을 그리는 대신 채색된
종이로 형태를 만들어서 붙이는 기법을 말한다.
종이 오려 붙이기 기법을 이용한 작품 중에 <달팽이>라는 작품이 있다.
일정하지 않는 모양의 조각이 하나의 그림을 이루고 있다.
이 작품은 예전의 다른 작품들과는 비교적이게 붉은 색을 주로 사용하던 마티스와는
살짝 다른 느낌이 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일까? 색이 강렬했던
마티스의 예전 작품
과는 좀 다른 분위기이다.
가만히 보면 조상들께서 만들어 쓰시던 조각보가 생각이 난다.
마티스의 작품이 조각보처럼 조각조각이 모여서 하나가 된 듯 보였다.
이렇게 그림을 보다가 ‘어째서 이게 달팽이라는 제목을 얻게 된거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겉으로 봐서는 어울리지 않는 제목이었다. 당초 이 <달팽이>는
'현실에 뿌리박은 추상적 패널'이라고 이름 붙여 있었다고 한다.
그림을 자세히 보기 보다는 멀리서 색종이 한 조각을선으로 생각하고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