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문턱인 입추(立秋)가 지나고 내일이면 말복인데 금년들어 아직 땡볕 무더위가 뽐내고 있는 것 같구나.
모기 입이 비뚤어지고 풀의 기가 죽는 철, 처서가 낼 모래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자연의 변화는 거스를 수가 없는가 보다.
입추가 지났지만 아직 여름의 불볕더위가 한참인 데도 서늘한 기분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까지는 그런데로 지낼만했었지만 가면 갈수록 기상변화의 기미(幾微)가 심상치 않다.
내년에도 열대지방과 같은 날싸가 된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이상기후이기 때문에
누구를 원망 할 수 있겠는가. 연일 폭염 경보와 주의보로 이 땅을 푹푹 찐다.
옛적에 입추 때 찾아오는 명절은 음력 칠월칠석과 7월 15일의 백중절(百中節)이 있다.
칠뤌칠석은 비가 예부터 비가 오는 경우가 많은데, 비보다 맑은 입추가 더 중요하단다.
입추 때 맑으면 풍년이 들고, 비가 조금만 오면 길(吉)하고, 많이 오면 흉년이 든다고
예부터 내려온 이야기가 있다.
백중절은 농부에게 매우 중요한 명절이다. 단오와 함께 마을잔치로 단오가 벼농사 시작을 알리는 명절이라면
백중은 벼농사 마무리를 알리는 명절이다.
백중의 다른 이름으로는 호미씻이, 머슴 생일 이라고 하는데 이는 마지막 파사리(모내기를 한 후에는 피라는 잡초를
제거하는데 이 작업을 피사리라고 함)를 끝내고 힘든 일 마쳤으니, 호미는 씻어 걸어두고, 머슴이 힘든 일 끝냈으니
격려 차 잔칫상을 차려준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인 것 같다.
대표적인 마을 잔치인 단오와 백중은 전형적인 벼농사 중심의 농경 공동체 축제이며 농경문화의 꽃이라
할 만한데 요즘에는 기계농사가 보편화되고 그에 따라 두레 문화가 퇴색하면서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이젠 우리 추억속에 잠자고 있어 아쉽기만 하다.
양산동 주만센터에서 매주 화요일 한문공부를 하고 있다.
한 번은 한문선생님이 물어 본다. 평상시 한자를 쓸 때에 틀린기 쉬운 한자에 대해서 말이다.
백엽상(百葉箱), 인간미(人間味), 재물조사(在物調査), 밀월여행(蜜月旅行), 명사십리(鳴沙十里) 등 예를 든다.
연꽃 등이 포함 되여 있는 '수련과'의 '수'자의 한자 독음을 물었다.
우리들은 '물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물 수(水)자가 아니겠는가?'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의미를 생각해 보란다.
물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물수(水)로 생각하겠지만 잠잘 수(睡)라 했다.
'꽃이 오므려진 모양의 수(睡)'이었다.
해질녁에 꽃이 잠자는 것 같이 오므려진다고 해서 잠잘 수(睡)라고 한다.
수련과(睡蓮科)에 대해서 찾아 보았다.
수련과의 식물로서 쌍떡잎식물 갈래꽃류과의 한 과로서, 전 세계에 8속 90종이 분포하는데 우리나라에는 가시연꽃,
수련, 순채, 연꽃 따위의 9종이 분포하고 식용 하거나 관상용, 약용하는 것이 많다고 한다.
수련(睡蓮)은 먹지 않고 관상용이고, 순채(蓴菜)는 여러해살이 물풀로서 어린잎은 식용, 가시연꽃 공 모양의 열매는
약용하고, 땅속줄기는 먹는다고 한다. 연꽃(蓮)은 잎과 열매는 약용하고 뿌리는 식용한다고 했다.
내가 지금 와 있는 곳은 양산동호수다. 호수엔 연꽃이 만발하였다.
연일 폭염주의보로 햇볕이 따갑지만 호수엔 연꽃이 만발하여 이따큼 불어오는 바람에 춤을 춘다.
이 곳은 아침저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지만 한 낮이기 때문에 조용하다. 저 건너편으로는 많은 차량행동들이
왕래를 한다.
그러나 덥지만 더운 데로 조용한 분위기가 더욱 좋다. 나무 그늘 밑에 있는 벤치에 앉아 망중한을 느끼고 있다.
매미들은 짝을 찾아 노래하고 있고, 아직 더위는 안 가셨지만 호수가엔 가을을 알리는풀벌래소리가 우렁차다.
'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가 있다.
고려 시대 사람들은 유난히 연꽃을 사랑했던 것 같다. 고려 충선왕(제 26대 왕, 1275 ~ 1325년)에게도 연꽃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 온다.
원나라에 볼모로 잡혀 가 있는 충선왕이 임금이 되기 위해 고려로 돌아올 때의 일이다. 충선왕은 너무도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를 함께 데리고 올 수가 없었다
왕은 그녀에게 이별의 정표로 연꽃 한 송이를 꺽어 주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돌렸다.
왕은 도저히 그녀를 잊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오다가 신하인 이제현(고려 말기 문신, 1287 ~1367년)을 시켜서
그녀를 찾아보게 하였다. 이제현은 가보니 그녀는 왕과 헤어진 후 상심하여,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고 누어 말도
제대로 못하는 지경이었다. 그녀는 겨우 일어나 울면서 시 한 수를 써서 왕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贈送蓮花片 증송연화편 (떠나며 보내 주신 연꽃 한 송이)
初來的的紅 초래적적홍 (처음에 너무도 볽었는데,)
辭枝今幾日 사지금기일 (줄기를 떠난 지 며칠 못 되여)
憔悴與人同 초췌여인동 (초췌함이 제 모습과 똑같습니다.)
처음에 그렇게 붉고 곱던 연꽃 송이가 줄기를 떠나자 금세 시들어 버렸다. 사랑하는 당신이 내 곁을 떠나시니,
나도 이 시든 꽃처럼 참혹하게 야위어 간다는 너무나 가슴 아픈 사연이었다.
이제현은 이 시를 받아 가지고 돌아왔다. 그렇지만 왕에게 보여 주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거짓말을 했다.
"전하! 제가 그 여인을 찾아가 보니, 술집에서 젊은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술을 마시고 있어서, 아무리 만날려고
해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충선왕은 너무도 분해서 침을 뱉으며 그녀를 잊었다.
고려에 돌아온 이듬해, 왕의 생일이 되었다. 이제현은 왕에게 생일을 축하하는 술잔을 올리고 나서, 갑자기 뜰에
엎드렸다.
"신이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왕은 영문을 몰라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이제현은 그때의 일을 사실대로 아뢰었다. 왕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날 만약 내가 이 시를 보았더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그녀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그대가 나를 사랑한 까닭에
거짓으로 말하였으니 참으로 그 충성이 간절하도다."
임금과 신하 사이의 아름다운 미담으로 [용재총화 慵齋叢話]에 나온다. 용재총화는 조선 전기 용재 성현(成俔: 조선
성종 때의 문신, 1439 ~ 1504년)의 수필집에 실려 있다.
위의 시에서 연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서 슬픔을 이기지 못해 시들어 가는 여인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연꽃은 여러해살이 물풀로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어여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나는 공무에 시달려
청춘을 다 보내고 귀밑머리가 희게 변해 버렸다.
연꽃은 멀리서 은은한 향기를 전해 주는 군자(君子)의 모습으로 그러져 있다.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다."고 한다. 연꽃은 연못가운데서 피니까 가까이 가서 코를 대고 그 향기를 맡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따큼 바람결에 실러 오는 그 향기가 더욱 맑게 느껴진다.
연꽃은 더러운 진흙 속에서 올라오는데 그 꽃은 너무도 순결하고 깨끗하다.
한 줄기에서 하나의 연꽃은 가지치지 않고 넝쿨도 치지 않는 고귀한 연꽃이다.
나도 이처럼 욕심을 버려 마음을 비우고 바른 자세로 살아가고 싶다.
첫댓글 '연꽃 물결에 일렁이는 바람' 너무나 멋진 표현입니다.
저는 더위에 허덕이며 에어컨 밑으로 기어드는데 선비님은 역시 연꽃과 노닐며 역사를 논하고 있으니 고개가 저절로 숙여집니다. 옆에 이런 분이 계시다는 것이 큰 복입니다. 더위에 강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주돈이(중국 북송시대 유학자)의 애련설(愛蓮說,연꽃을 사랑하노라) 中에서
...향원익청,정정정식(香遠益淸,亭亭淨植/향기는 멀어질수록 더울 맑아지고,반듯하고 깨끗하게 서 있어서)...
기억속에 향기로 남아있는 문장입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들여다보시며 그 자연을 닮고자하시는 빡죽님의 아름다운 모습에서 은은한 연꽃향기가 나는듯합니다.
어렸을 적 칠월칠석,단오,백중절을 동네 어르신들이 함께 쇠는걸 보았는데 지금은 절기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어졌습니다.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들이 너무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너무더워 쉼을 찾아 양산호수에 나갔습니다. 거기에는 햇빛과 매미소리와 풀벌레소리 만이 들립니다. 巫돌님! 거기에서 저와 더위 건강을 나눴지요? 지금은 조석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곤합니다. 취원님! 취원님의 말씀대로 '나는 홀로 연꽃을 사랑한다.' 는 말씀이 생각됩니다. 하하회원님, 땡볕 아래서 건강하길 바랍니다.
가까이에 아름다운 호수 공원이 있다니 부러움 입니다. 엘지자이에 모임 동생이 사는데 그쪽에서 만나 빡죽님이 올려주신 총선왕 이야기와 연꽃의 향기를 맡을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겠네요.지금도 연꽃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련지요.
빡죽님의 글을 읽는 동안 제 마음도 정화 되는듯 합니다. 아름다운 연꽃을 보는듯 하구요. 잘 읽었습니다.
단오날은 여인들이 냇가에 앉아 청표물에 머리감고 그네타는 놀이를 하는 날로만 알고 백중도 잘 몰 랐는데 농경 사회엔 절기에 그 의미와 할일이 명확히 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