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관한한 나는 운명론자이다.
내 결혼에 관한 이야기는 엤날에도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 한동안 회자 되었을만큼 특이하다.
내 나이 스물 아홉,가을도 거의 끝자락에 있을 무렵 우리 친정은 이십년 넘게 살던 산수동을 떠나 봉선동 아파트
입주 전까지 살 집을 구하고 있었다
집 가까운 지산동으로 이사가 결정 되었는데 갑자기 친척이 이민을 떠나게 되어 그 분이 사시던 운암동 금호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 한지 얼마 되지않아 7층에 사시는 반장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 호구조사차 방문 하셨다.
엄마는 아빠 고등학교 동창분의 부인이시니 어찌 사는지 궁금도 하시고 그러셔서 오시는 듯 하다고 추측하셨다.
토요일 오후 편안한 마음으로 즐겁게 텔레비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아주머니 두분이 초인종을 누르셨다.
귀찮아진 나는 얼른 내 방으로 들어가며 혹시라도 날 부르지 말아달라고 엄아께 부탁드렸다.
잠시후 거실에서는 벽에 걸린 우리집 가족사진을 보며 출가한 큰딸은 김자옥을 닮았네 하시더니 내 동생과 나를 비교하며
둘째딸이 더 복스럽네, 세째딸이 더 예쁘네 하며 의견이 분분 하셨다.
내용 인즉은 객관적으로 서구적인 미인인 동생 설란이가 예쁘다고 하시는 분은 옆동 아줌마시고 내가 더 인상이 좋다고 하시는 분은
지금의 시어머니이신 반장 아주머니셨다. 반장 아주머니가 당신 세째 아들과의 만남을 주선하셨다
그리하여 엄마가 그때 유행하던 타임이라는 고가의 브렌드 옷 한벌 사주신다는 꼬임에 넘어가 7층과 13층 한 지붕 아래 주소를 둔
두 남녀가 맞선을 보게 되었다.
난 평소에 옷 잘입는 남자를 좋아했는데 집 앞 호텔 라운지에 나타난 맞선 남은 빵떡 같은 촌스럽고 큰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 당시 유행하던 닥스 체크 양복에 짙은 브라운 하의를 입고 넥타이까지 깔금하게 깔 맟춤을 하고 나와 해맑은 얼굴로
이야기하는 내내 웃기만 하고 말수도 없었다.
내 아가씨적 지론은 아기부터 할아버지까지 말많은 남자는 싫다였었다.
거기에다 연애는 많이 해봤냐는 나의 질문에도 그저 웃기만 했다.
키도 크고 등치좋은 것도 싫지않고 친절하고 예의도 바르고 해서 호감이 생겼다.
그때 일산에서 남편은 근무 중이었는데 내가 근무하던 투자신탁으로 날마다 전화하고 주말마다 내려오고 적극적이었고
더군다나 아버님끼리 고등학교,대학교 동창생이셔서 집안 속 내도 잘안다고 착각해서 3개월 만에 약혼을 하고
만난지 6개월 만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 날을 잡고 나서야 내 남편이 윗옷은 절대 넣어입지 않고 아저씨처럼 항상 배를 가리고 청바지에도 구두를 신고
슬리퍼 신을 때도 양말을 신고 다니는 옷 잘챙겨 입는 엣지남과는 거리가 정말 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맟선보던 날 의상의 진실은 이러했다.
후줄근한 티셔츠에 물빠진 잘다린 면바지 평소대로 입고 내려온 세째 동생을 보고 미국 출장 가기전에 잠깐 다니러 오신
큰시숙님 내외가 1층에서 엄마와 백화점 다녀오는 나와 마주치셨고 나는 몰랐지만 13층 버튼을 누르는 순간 동생의 맞선녀임을 아셨는데 형님말로 멋쟁이임을 직감하셔서 큰 시숙님 옷을 입혀 내 보내신 것이었다.
과묵남의 실체는 평소 말하기 좋아하고 말 많은 우리 남편은 날 알고 있던 친구 부인에게서 평소 내가 말 많은 남자와 오래 사귄애인있는 과거있는 남자는 싫어해서 절대 말많이 하지말고 6년간 교제한 여자가 있었단는 것을 절대로 함구하라는 코치를 받고 나온 것이었다.
그후로 여러가지 진실을 알게된 나는 결혼 못하겠다고 남편에게 통보하러 갔다가 울고 메달리는 남편을 뿌리치지 못하고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런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생각해보면 나의 결혼은 이루어지지 않을 이유가 정말 많았는데 정말 인연이었나 싶다.
가끔 우리 결혼이 사기 결혼이다고 투정부리는 나를 보고 남편은 항상 말한다."당신은 내 운명"
나는 속으로만 말한다 "너는 내 운명"
첫댓글 아란님의 결혼 과정이 참 재미있습니다. 집안끼리도 잘아시는 관계라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셨네요. 그래요 저는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 믿습니다만 운명적인 것은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부부의 인연은 정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아란님 운명으로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사시네요.
만남의 속에는 그자체만으로 행운이 같이해서 열혈남여가 계속해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것같아요..
지금의 짝궁을 잘만나서 열심히들 살고있네요..
아란언니는 운명적으로 만나서 맨날 깨소금냄새가 많이 나군요~~
부러워요~~^~^
..
운칠기삼^ 운명론에 한표. 아란씨의 얼굴에 늘 미소가 떠나지 않더니 운명의 남자와 행복하게 살아서 그렇군요~
진짜 예정된 운명이란 것이 있는 걸까?
누군가 미리 짜놓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그는 누구일까? 왜 그렇게 짜놓았을까?
우리 인생은 그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은 아닐까?
저도 결혼에 관해선 절대적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8천겁(劫)의 인연이 부부의 연이라는데 어찌 운명이 아니겠어요.아란님부부, 서로에게좋은 운명의 연이셨네요.글 재밌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