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는 32, 3도를 넘는 불볓 더위에 잠을 설치는 날의 연속이었는데, 오늘은 쌀쌀해서 긴 팔 옷을 꺼내야 할 정도입니다. 요 3, 4일 사이에 이렇게 계절이 바꾸니, 계절을 주관하는 존재가 자연인 것이 다행입니다. 만약 사람이 이렇게 했다면, 이랬다 저랬다 한다고 욕을 들을지도 모릅니다.
낮에는 간간이 비가 왔습니다. 쏟아지기도 하고 가볍게 내리기도 하다가 저녁이 되자 다시 맑아졌습니다. 풍물시장 인근 노점상들은 일찍 철수를 했습니다. 날도 이제는 일찍 저물고, 하늘은 확실히 높아 졌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둥굴레 차를 다시 따뜻하게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오늘 저녁 따비에는 거사님들의 줄이 길었습니다. 헤아려 보니 110여 명쯤 되었습니다. 한 거사님 말이 일요일에는 급식을 하는 데가 별로 없어서 여기로 많이 모인다고 합니다. 오늘은 바나나 260개, 백설기 250쪽, 냉 둥굴레차와 커피 각각 100여 잔을 보시했습니다. 그리고 거사봉사대에게는 반찬 2벌을 보시했습니다. 바나나는 낮에 운경행님이 두 개 씩 포장을 한 것입니다.
오늘 봉사하신 분은 퇴현 전재성 박사와 거사봉사대의 해룡님과 정식님입니다. 정식거사는 오늘 봉사자가 적은 것을 보고 슬며시 와서 서 있었습니다. 제영법사가 떡을 맡아달라고 하니 얼굴이 흐믓해집니다. 늘 와서 봉사를 해주는 병순님은 지난 번에 더위를 심하게 먹어서인지, 오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용한 가운데 따비를 회향하며 오늘도 무주상보시의 깊은 도리를 절감합니다. 사람들은 불교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는 보시바라밀을 실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불교의 진정한 보시는 무주상보시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그리고 주는 물건에 대해 어떤 분별도 하지 않는 보시가 무주상보시입니다. 그러나 이 무주상보시는 호랑이 굴과 같아서 막상 들어가는 사람이 흔치 않습니다. 무심으로 하는 보시가 현대의 적막한 경쟁사회에서 실현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 작은손길은 지난 15년을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무슨 대단한 경륜이 있어서가 아니요, 익히 경험이 많아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한 걸음 한 걸음 걷다보면, 같이 걷는 도반이 옆에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주위에서 이런 모임이 얼마나 갈까 걱정 반, 회의 반이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의 지난 날은 하루 하루 부처님의 가피가 늘 함께 하는 날이었습니다. 도처에서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났습니다.
관세음보살은 오온이 모두 공한 것을 비추어 보는 지혜로 중생을 돕습니다. 그러므로 관세음보살의 자비는 댓가를 바라지 않은 무주상보시입니다. 관세음보살이 가는 곳에는 사람들 가운데 저절로 순수한 자비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모르는 결에 사람들은 공(空)과 무아의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부처님의 묘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관세음보살입니다.
(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