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63)
◇ 운명은 하늘에
재물이라면 물불 안가리는 곽가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고자되자…내시로 궁중에 들여보내는데…
곽가는 재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노름판에서 사기도박을 하고, 창기를 두고 포주 노릇도 했고, 부잣집 영감에게 색녀를 붙여놓고 협박해 돈을 뜯고, 타고난 완력에 두둑한 담력으로 해결 안 될 일을 해결해주고 전대를 채웠다. 돈이 좀 모이자 고리대며 장리쌀을 놓아 섣달이면 곽가에게 논밭을 뺏겨 거지가 된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마침내 고을에서 몇째 가는 부자가 된 곽가는 진사 벼슬까지 샀다. 커다란 갓을 쓰고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기침소리도 커졌다.
재물에 벼슬까지 잡았으되 하나 부족한 것은 자식이다. 이 여자 저 여자 첩을 얻어 씨를 뿌리던 중 머리 얹어준 기생 도화가 헛구역질을 해대더니 여덟달 만에 고추 달린 놈을 뽑아냈다. 쫓겨난 조강지처가 눈물을 흩뿌리며 고개를 넘다가 소나무에 목을 매도 곽 진사는 꿈쩍도 않고 도화를 안방에 앉히곤 금이야 옥이야 아들 칠수를 안고 불알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칠수는 두돌이 지나도 걷지를 못하고 목소리는 여자애처럼 가늘었다. 고추와 불알은 점점 쪼그라들어 사타구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아홉살이 돼도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고 삐쩍 말라 손마디만 기다랗더니 급기야 앉아서 오줌을 누는 것이다. 팔도강산 용하다는 의원 다 불러도 백약이 무효. 칠수는 고자가 돼버렸다.
“이놈아, 울지 마라. 김자원처럼 임금님 곁에서 총애를 받으면 모든 대감이 네게 고개를 숙일 게야.”
칠수가 내시로 궁중에 들어가기로 결정된 날, 곽 진사가 아들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곽 내시는 마음만은 제 아비를 닮아 야심을 가슴 깊이 품고 있었다. 늘 임금 곁에서 입 속의 혀처럼 굴었다.
국화향이 바람에 실려 궁궐을 돌던 어느 가을날, 임금이 비원으로 행차했다. 내시 일곱이 곁에서 수행했다. 빨갛게 물든 나무 아래서 가마에 비스듬히 누운 채 잠이 든 임금은 도르릉도르릉 코를 골았다. 내시들은 그늘에 앉아 신세타령을 늘어놓았다.
“앞으로 늙으면 어떻게 살아갈까?”
“핏줄이 닿지 않은 양자놈이 효도를 할까?”
“마누라는 도망갈 것이고…. 일가친척은 반겨줄까?”
“….”
한참 후 이 내시가 입을 뗐다. “우리의 운명은 하늘이 결정할까? 임금님이 결정할까?”
“운명이야 하늘에 달렸지.” 오 내시의 대답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당연하지.” “임금님 운명도 하늘이 좌지우지하거늘 하물며 우리야….”
모두 하늘을 찍는데 곽 내시 혼자 큰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우리의 운명은 주상 전하께서 쥐고 있습니다. 임금이 곧 하늘이니….”
여섯 내시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 어떤 내시는 끌끌 혀를 찼다.
얼마 후 임금이 깨어났다.
“여봐라. 지필묵을 가져오너라.” “예이~.”
항상 지필묵 보자기를 들고 다니는 임 내시가 가마 앞으로 달려갔다. 임금은 무언가를 쓰더니 봉투에 넣은 후 곽 내시를 불렀다.
“이걸 가지고 승정원에 가서 도승지에게 전할지어다.” “예이~.”
임금의 가마는 궁궐로 돌아가고 내시들은 흩어졌다. 곽 내시는 오만상을 찌푸리고 아랫배를 비벼대다가 박 내시를 붙잡고 사정했다. “박 대감, 승정원 쪽으로 가는 길에 이 서찰을 도승지에게 좀 전해주구려. 갑자기 설사가 나서 통시에….”
이튿날, 궐내가 술렁거렸다. 박 내시가 좌승지로 발령이 난 것이다. 내시 세계에서는 천지개벽이다. “이 서찰을 가지고 간 사람을 좌승지로 임명하렷다.” 임금은 잠들지 않고 자는 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