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에서의 피노키오
목수 제페토 할아버지가 통나무를 줍는다. 시장 곳곳을 굴러다니며 말썽을 부리던 살아있는(?) 나무토막이었다. 그 나무를 깎아 인형을 만들었는데, 살아 움직였다. 그게 피노키오다. 디즈니가 만든 피노키오와는 탄생부터가 다르다. 피노키오는 작가 카를로 콜로디가 이탈리아 최초의 어린이 신문 에 주간 연재한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의 주인공으로, 작가는 연재 도중 신문사와 고료 문제로 사이가 틀어져 화가 난 나머지 피노키오가 여우와 고양이에게 속은 뒤 나무에 목매달려 죽어버리는 결말로 이야기를 끝내 버린다. 피노키오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접한 어린이 독자들이 큰 충격을 받고 신문의 구독율도 떨어져 신문사 측에서 작가에게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 ‘파란 머리 요정이 피노키오를 살려준다’는 전개로 바꾸어 다시 연재를 재개했다고.
연재 재개 후에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 아름답게 착색된 모험담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었다. 마음을 다잡고 착한 아이로 살기로 한 피노키오는 통나무 시절부터 가지고 있었던 특유의 말썽쟁이 기질 때문에 고초를 겪는다. 나쁜 친구의 꾐에 빠져 수상한 놀이동산에 갔다가 당나귀로 변하기도 하는 등 ‘착한 아이 - 나쁜 친구의 유혹에 빠짐 - 사건사고를 겪음 - 간신히 돌아옴’ 패턴을 반복하는데, 때마다 파란머리의 요정이 나타나 피노키오를 구해준다. 오직 피노키오만. 피노키오가 부리는 말썽, 그의 주변에 있는 나쁜 인간 친구들의 말썽 정도는 상당히 레벨이 높아서 아동을 독자로 하는 신문에 연재되어도 문제가 없을까 싶을 정도다.
우리가 <피노키오> 하면 떠올리는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와 ‘고래에 삼켜졌다’는 설정 또한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원작 <피노키오의 모험>에서는 누구나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고, 코가 길어지는 거짓말 뿐 아니라 ‘다리가 짧아지는’ 거짓말도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고래에 제페토 할아버지가 삼켜졌다’는 내용도 원본은 고래가 아닌 상어였다고 한다.
디즈니의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피노키오>는 원작 <피노키오의 모험>을 원작으로 하지만 보다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다방면에 변화를 주었다. 주인공인 나무인형, 피노키오의 디자인부터 많은 캐릭터들을 귀엽고 친근한 느낌을 풍기도록 그렸고, 지나치게 폭력적이거나 비극적인 에피소드들은 삭제하거나 순화시켜 원작이 ‘피노키오의 말썽과 생활에서 얻는 반면교사의 교훈’에 포커스를 맞춘 반면 ‘순진하고 귀여운 피노키오가 인간 소년이 되기 위해 펼치는 모험’으로 초점을 맞췄다.
시계공 제페토 할아버지의 집으로 겨울밤 추위를 피하기 위해 귀뚜라미, 지미니가 들어간다. 지미니는 <피노키오>의 화자이자 극 내내 피노키오의 든든한 동반자, 버팀목이 되는 캐릭터. 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목각인형에 요정이 생명을 불어넣어 준 이유는 평생 착하고 아름답게 살아온 할아버지가 하늘의 푸른 별을 보며 “이 목각인형이 진짜 소년이 되면 좋겠다”고 소원을 빌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가 몸을 만들고, 할아버지의 소원이 현실로 이루어져 태어난 나무 소년 피노키오는 제페토 할아버지의 크나큰 기쁨이 되었고, 백지와도 같은 순수함 때문에 무슨 일이든 “왜요?”라고 되묻는 피노키오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고, 학교에 입학시켜준다.
순진함은 곧 무지함과 맞닿아 있으며 무지함은 가치관의 부재와 이어진다. 정말 모르는 것 투성이인 피노키오는 꾐에 넘어가 서커스단에 팔려가기도 하고, 나쁜 아이들이 이끄는 대로 이상한 유원지에서 불량소년들과 어울리다가 당나귀로 변하기도 한다. 제페토 할아버지는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는 피노키오를 진짜 아들인 양 애타게 찾아 헤매다 결국은 바다의 고래에 삼켜지고 만다. 뒤늦게 할아버지를 찾는 피노키오에게 할아버지가 고래에 먹혔다는 소식이 날아들고, 고래를 찾아나서 결국 할아버지를 구출하지만 생명이 빠져나가 다시 목각인형이 되어버리고 마는 피노키오. 비장한 음악이 흐르고, 피노키오의 죽음에 슬픔이 밀려드는 찰나 푸른 요정이 나타나 피노키오의 선한 마음과 용기, 희생정신을 칭찬하며 약속대로 피노키오를 인간 소년으로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