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케이팝에 이어 드라마도 전세계에 이름을 떨친다고 그러대요. 그래서 그런가, 해마다 감동받는 드라마가 있어 행복합니다. 몇 년 전 응답하라 1994였던가? 괜찮더니만 올해는 아무래도 '미생'이 물건인가 봐요. 티브이 방송국에는 종편이 있고 지상파가 있다면서요? 지상파는 케이비에스, 엠비씨하고 에쓰비에쓰라고 종내에 있던 방송국이고, 종편은 새로 생긴 방송국이라면서요. 아무래도 지상파쪽으로 손이 먼저 가니까 응답하라라든가 미생 같은 것은 입소문으로 그거 괜찮더라는 추천을 받아야 그래, 하면서 나중에 보게 되더라고요. 응답 도 나중에 되돌려보기를 통해 봤습니다만 이번 미생도 요즈음 지나간 걸 보고 있습니다. 아직 다 보지도 못 했을 뿐 더러 듬성듬성 보느라고 스토리 연결이 제대로 되질 않습니다만 대단한 작품인걸 알겠더라고요.
바로 우리들 시대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서 더욱 그러지 않는가 생각되는군요. 더우기 직장생활의 애환을 그린 거라 더욱. 참 주인공, 누구에요? 장그래가, 계약직이라 우리 시대가 아니고 요즈음 이야기인 거 같은대도 금방 훅하고 공감하는 걸 보면 미생이 걸작인 건 분명해요. 직장이 바로 대우 건물이라 반갑더구먼요. 자연 종합상사가 그 무대가 되었구요.
전 상사맨이 아니지만 친구들이 여럿 상사맨이 있어 잘 알지요. 당시 상사맨뿐 아니라 회사원은 일요일이 어디 있어요. 3대 국경일만 제대로 쉬었지 일 년 열두 달이 다 출근하는 날이었지요. 어떻게 다녔을까, 참 용하다싶어요. 개천절, 삼일절, 광복절만 온전히 쉬고 다른 공휴일따윈 다 출근했지요. 요즈음 은행원들 근무환경이 좋다했지만 그땐 어휴~ 대단했어요. 마감 시간, 6시쯤 되면 끔찍합니다. 창구에 돈다발이 쌓이는데 창구 직원들, 정신줄 놓은 거처럼 보이지요. 그것만 있냐고요. 차장이나 지점장실에는 거래업체들 직원들, 이 양반들은 아주 높은 사람들인데 부도나는 거 막으려고 손발이 닳도록 빌러오는 거지요. 명동, 소공동 쪽이 대개 은행 본점들이 있는 금융가였는데 은행을 거쳐서 단자회사로 온 사람들은 돈을 마련하지 못한 거지요. 은행인들 어쩌겠어요. 마감 시간을 미뤄줄 뿐, 자금 담당 고위 임원들은 사채쪽으로 달려가서 급전을 구하려고 난리가 나는 거지요. 에휴 육이오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야 라고, 밤 열 시가 되어서 마감을 겨우 하고선 집으로 가냐고요? 천만에 본사에서 기다리는 사장 같은 높은 양반들한테 보고하러 가거나 맥이 빠져서 술이나 하려고 술집으로 가든가, 어쨎든 집에 들어가는 시간은 거의 열두시가 되야지요. 그땐 통행금지가 있을 때니.
상사맨들은 바이어가 들어오기라도 하면 계약 따느라 난리부르스를 추지요. 제 친구는 가죽쟁이인데, 상사의 가죽 파트 직원이었다. 중동의 바이어 접대하느라 2차를 끝내고선 다음날, 일찍 호텔에 문안 여쭈러 가보면 앉으라는 말도 없이 완전 머슴 취급을 하는데, 음음 ...술집 2차에서 챙겨준 아가씨가 앉으라하고선 커피 주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대요. 그때는 가방 들고 비행기 타고 출장 간다고 부러워하면, 쓴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다더군요. 그 나라 시장, 아~ 동대문 시장 같은 곳에 가방을 질질 끌고 다니며 도매상을 찾아가서 샘플을 들고선 흥정을 하는 걸 주위에선 외국으로 출장 다닌다고 부러워했다고 해요. 상사맨, 보따리 장사꾼의 눈물이 모여서 수출입국의 금자탑을 쌓은 거지 뭐예요. 미생에서도 나오잖아요. 계약 실적에 목을 매고 살아가던 상사맨들, 경험을 쌓아서 독립해서 오파상을 차리고 하더니만 끝이 뭐 그렇더라고요. 열번 잘 해도 단 한 번 실수하면 그냥 망하던지 대미지 엄청 입고선 친구, 친가, 처가에 폐만 끼치는 걸 한두번 봤던가요. 우리나라, 우리 또래들, 수출입국이라고 날리던 시절을 살아낸 세대, 지나고 보니 말년이 뜨뜻한 친구들 별로 없더라고요. 참 허무해요.
요즘 동창회가 아주 잘 되는데 할일이 없으니 동창회는 성황이지요. 또 혼사가 있으니 동창회를 소홀히 할 순 있나요. 술 한잔 들어가면 허무하다고 넋두리하는 친구들이 그러더군요. 그래도 자식 키우고 했잖는가 고. 맞는 말이지요. 결과가 이런들 저런들 어쩝니까,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 와중에 아이들 키워내고 부모님 용돈 드리고, 동생들 챙겼으면 됬지 뭘 더 바래느냐고. 옳은 말이지요. 그럼요. 인생은 뭘 거두었나보다 어떻게 살아왔냐 는 과정이 중요한 게 아니던가요?
미생만큼 치사하고 살벌한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하지만 그런 직장도 있었겠지요. 드라마니까 과장도 있겠지만 가슴 한편이 찡하네요. 뭐라고 소감 한 마디라도 하려했지만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만 둘래요. 바로 제 이야기였거든요. 그동안 난 직장에서 참 잘한 놈인줄 알았단 터인데......지나고 보니 한심하네요. 더 잘 할 수 있었을 건데. 미생을 통해서 내 지나온 날을 반성했지요.
적나라하게 요즈음, ...................................내 기분 털어놓을까봐요. '수컷이라서 참 불쌍해요.' 내 기준이란 건 애초에 없었다고요. 내 아내가, 내 부모님이, 아이들한테 무슨 소리 들을까 눈치 보고, '그래 잘 했지?' 날 어떻게 볼까 내내 불안하고......폼나게 쏘고싶었는데, 직장에서도 폼나게, 부하들 잘 챙기고 싶었는데, 호인이라는 소리 듣고 싶었는데.....어쩜 오차장이던가? 그런 양반 절대 임원 되기 쉽지, 아니 될 턱이 없지요. 전무라는 이경영이던가? 연기 잘 하더구먼, 바로 그렇게 비정한 사람이 출세하는 게 조직의 생리랍니다. 당신이 사장이라면, 아니 오너라면? 오차장은 실컷 부려먹을 총알받이에 불과해요. 비정한 사람, 부하를 어떤 방법으로든 잘 부려먹고 가차없이 버릴 줄 아는 사람이 조직에 필요하답니다. 오차장이 장그래한테 쓴 연하엽서, '장그래, 더할나위없이 잘 했어. 예쓰' 라했던가. 장그래가 한참이나 감격하드만, 장그래한테 그랬지요. 꿈 깨라고, 회사는 절대 인정에 휘둘릴 턱이 없는 철옹성이라고, 오차장이 인간적인데 대개 그런 사람은 리더가 될 수 없어요.
아직 순서대로 보질 못해서 감상문을 제대로 쓰질 못하고 우왕좌왕합니다만, 인간사가 정이 통하고 의리가 있거나 능력대로 굴러가는 세상이 아니라는 게 진리가 아니던가요.
그냥 찡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살아온 직장 생활을 반추해불 수 있어서 의미있는 드라마라고 말하고 싶네요. 세상은 ........제가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몇 편 더 보고 기회가 된다면 감상문 올리지요.
장그래가 부디 정규직이 되어서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