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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통해서 ‘빅 히스토리’라는 학문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대 역사’라 번역할 수 있는 ‘빅 히스토리’는 단순히 한 국가와 주변의 지나온 흔적을 다루는 ‘역사’와는 다르게, 우주의 탄생으로부터 지구의 생성과 생명의 탄생 과정을 다루는 그야말로 ‘거대한 역사’를 다루는 분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우주‧지구‧생명‧인류에 관한 빅 히스토리’라는 이 책의 부제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지질학자인 저자는 스스로를 ‘역사 과학자(historical scientist)’라고 지칭하고 있다. 저자는 지구의 지질학적 특성을 통해 지구의 생성 과정과 생명의 출현 등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추론을 할 수 있으며, 지질학에서는 기본 단위 시간이 1백만 년이라고 한다. 기껏 1백년을 살면 오래 산다고 하는 인간의 시간 단위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이라고 하겠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우주의 생성 과정에서 생명이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지구의 탄생은 그야말로 우연적인 사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지구에서 생명의 탄생과 인간의 존재, 그리고 지구의 지질학적 특성이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것도 모두 우연적인 현상에 의해 초래된 것이라 주장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삶에서 우연 아닌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책의 제목도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로 정했을 것이다. 지구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현재의 삶의 모습이 ‘빅 히스토리’의 관점에서 보면 철저한 우연의 산물인 셈이다.
아마도 나처럼 이 분야가 생소한 사람들을 위해 저자는 1장에서 ‘빅 히스토리, 지구, 인간 현실’이라는 제목을 통해, 자신이 ‘빅 히스토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지질학적 탐사와 그 과정에서 얻어진 각종 지식들, 그리고 그것을 ‘빅 히스토리’와 인간 현실과 연계시켜 생각하게 된 계기들이 설명되어 있다. 문학을 전공하는 나에게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없지 않지만,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빅 히스토리’에 대해 조금씩 친숙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저자는 먼저 ‘우주’를 대주제로 하여 ‘빅뱅에서 지구까지’(2장)라는 제목으로 우주의 탄생 과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 다음에 ‘지구’라는 항목으로 모두 4개의 장에 걸쳐 지금 현재 상태 지구가 만들어지는 장구한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칼 세이건은 그의 저서 <코스모스>에서 인간을 ‘별 먼지’로 지칭하고 있는데, 저자는 이를 ‘우리는 지구에 의해 응축된 별 먼지로 만들어졌다’라고 재정의를 하기도 한다. 3장은 ‘지구가 준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지구의 원소 중 특히 규소(Si)의 중요성에 대해서 특히 강조하고 있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도구의 사용이 지니는 중요성은 늘 강조되어 왔는데, 이것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 바로 규소라고 말하고 있다.
나아가 4장에서는 ‘대륙과 해양이 있는 행성’으로서의 지구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 상세하게 풀어놓고 있다. 지금도 화성을 비롯한 행성에 물의 존재 여부가 중요시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생명체의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구의 대륙이 원래 거대한 하나의 대륙이었다는 ‘판게아론’과 대륙 이동설을 통해, 인간이 살아갈 수 잇는 토대가 만들어졌다는 ‘우연한’ 사실들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물이 없다면 인간도 없을 것이고, 생명도 없을 것이며, 지구는 …… 빈 공간에서 공전하는 죽은 천체일 뿐이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지구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서, 저자는 ‘빅 히스토리에서 얻는 즐거움 중 하나는 멀찍이 물러나서 과거를 전체적으로 보고 역사의 특성을 생각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5장에서는 북아메리카의 애팔래치아산맥과 유럽의 알프스산맥을 통해서, 산맥이 초대륙 순환을 보여주는 매혹적인 역사를 가진 지구의 주요 특징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5장의 제목도 ‘두 산맥 이야기’이다. 저자는 지질학적 특성을 살펴, 알프스산맥이 이탈리아와 유럽의 대륙 충돌 과정에서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에 반해 북아메리카의 애팔래치아산맥은 2억 5천만년 전에 형성이 멈추었고 그 이후에 원래 높았던 봉우리들이 오랜 침식으로 낮아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두 산맥의 특성을 지질학적 탐사로 얻어진 암석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과거에는 인간들을 가로막는 거대한 산맥들이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세 가지 발전을 통해서 탐사와 여행의 대상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그 세 가지를 여행의 발달과 낭만파 예술, 그리고 지질학자들의 발견을 들고 있다. 이제는 철도를 건설하여 산맥을 가로지르는 것이 가능해졌고, 비행기를 통해서 산맥을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지구’를 설명하고 있는 마지막 6장은 ‘고대 강의 기억’이라는 제목으로, 강의 형성과 사람들의 삶에 끼친 영향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물론 그 바탕에는 저자의 전공인 지질학적 지식이 전제되어 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미국 횡단열차의 타고, 그 경로에 있는 각 지역의 지질학적 특성과 그것이 사람들의 삶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흔히 사용하는 ‘역사에서 가정이란 무의미하다’라는 명제와 다르게, ‘빅 히스토리’에서는 반대 시나리오 혹은 대안 역사가 결코 무익하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 강조하기도 한다.
이제 지구의 생성 과정을 이해하게 되엇다면, 그 속에서 ‘생명’이 탄생하게 된 과정을 살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7장은 ‘생명’이라는 주제 아래 ‘생명 역사의 개인적인 기록’이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구에 산재해 잇는 화석과 생명체의 기본을 이루는 DNA를 중심으로 생명체의 탄생 과정에 대해서 추론하고 있다. 저자는 ‘화석은 생명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주고, DNA는 두 생명체가 어떻게 연관되는지 알려 준다’고 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세포의 탄생과 산소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이해시키고 있다. 특히 영장류의 화석을 추적함으로써 인간 생명의 출현 과정과 영장류의 진화 과정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었다.
우주로부터 지구, 그리고 생명체의 탄생을 추적해 온 저자의 시각은 이제 마지막으로 ‘인류’로 향한다. 과학적으로는 어느 정도 결론이 내려졌다고 할 수 있으나, 여전히 인류의 시초에 대한 창조론과 진화론은 대립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8장의 ‘위대한 여정’에서는 인간의 유전자를 통해 인류의 기원과 진화의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인류의 선조를 추적할 수 있는 두 가지의 재료를 들고 있는데, 그것은 여자 쪽의 미토콘드리아 DNA와 남자 쪽의 Y 염색체 DNA라고 하고 있다. 마지막 9장의 ‘인간되기’는 인류의 진화 과정을 추적하면서, 인간되기의 특징으로 불의 사용과 도구를 만드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을 통해 숯을 이용하여 그릇과 청동기를 만들어 사용함으로써 인간을 다른 생명체들과 구별 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현상들은 철저히 우연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라는 제목의 에필로그를 통해서, 이러한 우연성의 특징과 의미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 모든 조건이 맞았다고 하더라도, 만약 공룡이 멸망하지 않았다면 거대 포유류가 나타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지금 지구의 인류들은 수많은 우연성을 기초로 오늘을 살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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