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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1일
빨갛게 물든 장미가 역시 6월의 미인이다. 아파트 앞이나 거리의 담벽에 화려하게 수를 놓고 있다. 새벽에 어제 청주에 간 아내가 김치를 가지고 올라온다고 고속버스터미널에 나오라고 전화가 온다. 맛있게 먹게 하려는 마음이야 알겠지만 서울도 아닌 지방에서 그것도 승용차도 없이 무리한 일이라고 말하고 늦게 일어난 아들과 모래네 설렁탕 집으로 가서 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오후에 강형수선생이 몸에 이상이 발견되어 건강검진을 받는다고 하는데 당사자는 초조함이 많을 것이고 남부터미널 근처에서 만난 영식이는 필리핀 교육사업에 자금을 투자한다기에 배 사업과 달리 필리핀에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고 가능성도 없는 사업이라고 내 입장에서 반대를 했지만 귀담아 듣지를 않는다. 집에 일찍 들어와 아직도 해가 중천에 있는 6시에 안산에 올랐다가 내려왔다.
2일 아침 날씨가 쾌청한데 오후부터는 비가 내린다는 예보다. 감기 기운으로 계속 기침을 하고 컨디션도 좋지가 않아 집 근처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도 사 가지고 왔다. 체육관에 차를 두고 세무사를 찾아가 종합 소득세를 신고하여 지난 1차 때는 70만원 이번에는16만원을 더 납부했다. 어머니께서 2급 환자로 계시어 간병비 등을 감안한 것인데 세금은 여러가지 이유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모순 덩어리다. 운동을 하고 병원에 가는 중에 차의 게이지가 경고를 알려 3만원에 수리를 하고 구리시 삼육학교에 들어가 용구아빠가 어제 차로 가져온 김치를 받아 서울로 나왔다. 어머니를 뵙고 오는 중에 오늘도 광화문 방향은 시위로 길이 막혀 있다.
3일 감기 몸살로 머리가 아프고 기침이 계속된다. 아침에 밥을 먹으면서 한 번에 많은 양을 성급하게 거기에 씹는 소리까지 요란한 아내에게 천천히 조용하게 먹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오전 11시에 안산에 올랐다가 내려와 오후에 잠실부근 석촌동 공증사무소에 가서 엊그제 전달한 5천만원에 대하여 영식이와 공증을 마쳤다. 친구 간에는 돈 문제가 예민한 것이라 말하기가 어려웠는데 영식이가 먼저 공증을 해 주면서 배 사업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진다고 믿음을 준다. 여기 석촌동은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돌아가신 큰형과 함께 살던 곳으로 아침에 석촌호수를 달리고 저녁에는 호수주변에 나와 산책을 했던 동네다. 공증을 마치고 경찰병원 근처 맛있다는 순대집으로 가서 식사를 하고 로데오거리 2층 BAR에도 갔다가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왔다.
4일 날씨는 흐리지만 일주일 전에 비하여 여유도 있고 마음도 가볍다. 김성만 건도 해결되었고 배 사업도 동참하게 되고 거기다가 공증까지 마쳤으니 그럴 법도 하다. 안산에 올라가 걷고 중턱에 있는 정자에서 식사를 하고 이슬비를 맞으며 내려왔다. 오후에 신설동 옥상 물탱크를 점검하고 병원에 가서 어머님 뵙고 노량진 근처 장승배기 식당에서 김성만을 만나 저녁을 먹었다. 동영상과 오프라인 학원을 동시에 하겠다며 동업을 제안하기도 하는데 마음도 없었지만 여건이 허락치 않아 고사하고 돌아왔다.
5일 어제부터 오락가락 비가 내린다. 학교에 태우고 가면서 아들을 보니 많이 자랐는데 요즘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15살일 때는 야단하고 잔소리 하는 아버지가 싫었고 혹시라도 눈에 띄지 않으면 자유스러워 좋았다. 어제 고3 모의고사를 실시하여 강의도 준비할 겸 문제를 보고 있는데 현대시 '결빙의 아버지'가 출제되었다.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가정을 이끌고 사랑을 남기고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화자의 회상 형식으로 된 작품인데 내가 몰입되기에 충분했다. 점심을 먹고 병원에 가서 어머니와 대화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 때는 너무 황당하고 엉뚱한 말씀을 하시니 웃지 않을 수 없었는데 내가 웃으면 어머니도 그저 따라 웃으신다.
6일 송추에서 오봉을 거쳐 자운봉 정상에 오르니 산 입구부터 3시간이 지났다.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경관도 아름답고 마치 설악산 계곡에 와 있는 것처럼 절벽의 기이함도 있어 내가 자주오는 곳이다. 어제 저녁에 내가 식사를 혼자 준비하는데도 컴퓨터에만 정신이 팔려 꼼짝 안하는 아내에게 목소리를 높였더니 마음이 불편했는데 오늘 산 정상에 서니 그나마 진정이 되는 듯하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밝은 모습으로 싹싹하게대화를 하는 사람이 좋고 무뚝뚝하고 투박한 사람들은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현충일 휴일 아침에 아내는 딸과 일산에 사는 친구 유미네 집에 가고 아들은 축구를 한다해서 나 혼자 산에 온 터이다. 정상 부근에서 식사를 하고 반대방향 도봉산역 근처로 내려와 지하철로 어머니 병원에 갔다. 저녁에 집에 오니 아무도 없고 잠시후 들어온 아들을 데리고 해물탕집에 가서 외식을 했다.
7일 일찍 일어나 교재를 정리했다. 어디서나 강의를 재미있게 잘하기 위해서는 사전 교재연구와 자료정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아침에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비가 온 뒤라서 습기가 많고 후덥지근하다. 안산에 올라 점심을 먹고 내려와 여유있게 집을 나서 충무로를 거쳐 경기도 안산 유레카학원까지 2시간을 지하철로 이동했다. 지루함을 잊으려고 거기에서 저녁을 사 먹고 학원에 들어가 11시까지 수업을 했다. 시간이 촉박하여 정신없이 달려 막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리니 12시 30분이다. 거리도 멀고 시간에 쫓기다 보니 학생들의 질문도 받지 못하고 면담할 시간도 충분하지 않아 장기간 강의하러 다니기에는 어려울 듯하다. 오늘도 광화문 시위로 차가 다니지 않아 서대문 로터리까지 걸었다가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8일 일요일 아침 9시에 일어났다. 식사를 마치고 아들에게 함께 북한산을 오르자고 하니 계획을 이야기하여 나 혼자 안산에 올랐다. 비가 온다고 해서 우산까지 준비하여 갔는데 해가 뜨고 하늘이 맑다. 아들은 종로 도서관에 공부한다고 갔는데 잘 하는지 점심은 제대로 먹는지 걱정이 된다. 산에서 내려와 병원으로 가는데 비가 많이 내려 오전에 날씨가 좋아 기상청을 불신했던 내가 머쓱하다. 평소에 식당을 다니며 젖갈을 잘 먹는 나를 위하여 고향에 다녀오는 영식이가 꽁치 젓갈을 싣고 온다고 전화가 온다. 대게로 유명한 강구항이 고향인데 동해의 파도가 마당까지 들어오고 아침에 일어나면 게가 신발을 물고 바다로 들어가는 정도라고 한다.
9일 천둥치고 비가 내리더니 아침에는 그치고 빗소리 때문이었는지 몸이 무겁기만 하다. 새벽에 거실에 나오니 아들이 숙제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제 일요일에 미리 해놓고 오늘 월요일에 여유있게 학교에 가면 좋았을텐데. 역시나 밥도 안 먹고 나가는 아들을 불러 세우니 억지로 앉아 국물만 홀짝거리고 불만의 얼굴로 인사도 없이 나간다. 지금은 사사건건 내가 관여를 하지만 빠른 세월과 인생을 감안하면 아들과 딸도 머지않아 성인이 될 것이고 그때는 오히려 나를 제어하고 간섭할 것이다. 9시에 집을 나와 개봉동에 가니 김성우와 조사장이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는데 공사대금을 1년씩이나 못 받은 김성우의 입장이나 형편을 잘 아는 나로서는 안타깝기만 했다. 오후에 신설동 1층 사장한테는 내용증명, 3층 백사장한테는 임대료 독촉 서류를 등기로 보냈는데 건물주로서 임대료를 받는 일이 쉽지가 않다. 어제까지는 날이 흐리고 비도 내리더니 오늘은 더워서 집에 오자마자 안산에 올라가 운동하고 내려왔다. 논술을 마친 아내가 토마토 쥬스를 만들어 마시고 요가를 간 후에 저녁식사를 하는데 반찬이 맛이 없고 부실하여 혼자 투덜거렸다.
10일 아침에 아들은 일찍 학교에 간다. 기말고사 준비한다고 어제 학원에서 11시 지나서 왔는데 피곤도 하겠다. 된장국으로 식사를 하고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고 EM학원에 갔다가 집으로 오니 입이 아프다는 아내는 병원에 다녀왔고 오늘은 논술 수업이 없는지 여유를 부린다. 오후에 병원에 갔다가 어머니 뵙고 90%의 공사가 완성되어 이번 주 금요일에 오픈한다는 신설동 2층에 들어갔다. 시설을 완전 다르게 꾸미어 고급스럽고 깨끗한 레스토랑으로 변모된 모습이다. 오늘도 광화문 도심은 시위가 계속이다.
11일 날씨는 맑은데 바람이 거세게 불고 제주도에는 비가 온다고 한다. 안방과 거실을 들락거리며 잠을 잔 탓인지 눈이 무겁고 일찍 일어난 아들은 숙제를 하더니 오늘은 밥을 잘 먹고 학교에 간다. 늦게 일어나면 잠에 취해 밥먹을 생각이 없지만 일찍 일어나 활동을 하면 자연 밥맛이 좋은 것이다. 8시에 학교 가는 딸을 불러 쓰레기통처럼 엉망인 방을 지적하고 청소부터 하게 했다. 보기에는 착하고 예쁜데 방을 보면 경악을 금할 수 없을 만큼 무질서하고 엉망이다. 누구를 닮아서 그런지 아무리 혈액형이 털털한 O형이라고 해도 정도가 지나치다. 오전에 모의고사 문제를 풀고 교재정리까지 마치고 12시에 안산에 올랐다. 바람이 불어 시원한 바위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바라보니 시내 고층빌딩의 모습들이 우뚝우뚝 솟아 있다. 3시에 병원에 가서 어머니를 뵙고 성수대교를 건너 영식이 아파트에서 꽁치젖갈과 영덕 특산물인 복숭아 박스를 싣고 돌아왔다. 집에서 젓갈을 먹으니 맛이 있고 과일을 받은 아내도 고마워한다.
12일 아침에 장모님께서 식혜를 만들어 청주에서 일찍 고속버스로 올라 오셨다. 건강할 때 여행 삼아 새벽에 다닌다고 하시는데 그래도 오셨다가 바로 가시니 미안하기도 하다. 사임당 모임에서 부산에 1박2일 가는 아내는 내일 어머님 생신에 참석 못한다고 오늘 뵙고 온다고 한다. 차에 태우고 함께 가다가 북부지원 앞 법무사에서 신설동 3층 명도에 대해 상담을 하고 어머님 뵙고 집으로 돌아왔다. 곧바로 EM학원에 가서 원장과 중국음식으로 점심을 함께 먹는 중에 전주 완산구청에 있는 초등학교 친구한테 36년만에 전화가 왔다. 가물가물 했지만 어린시절 이야기를 하니 반갑고 즐거운 마음이었다. 6시에 안산을 올라 8시에 내려왔는데 갑자기 번개가 치고 소나기가 거세게 내린다. 학원에 간 아들은 새벽 1시에 왔다.
13일 토요일을 제외하고 특별한 일이 없는데도 바쁘고 하루가 짧다. 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보고 학교에 가는 아들을 지켜 보니 식사도 안하고 단추도 3개씩이나 떨어진 교복을 입고 등교하고 있다. 한심하여 잔소리를
하고 체육관으로 나가 운동을 했다. 아내는 오래 전부터 부산에 KTX타고 가 보고 싶다고 하더니 오늘 동네 사임당 아주머니들과 1박2일 떠나는 날이다. 부산이 고향인 호성이 엄마 주도로 지리나 교통문제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데 오히려 아들과 딸 식사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한다. 오후에 신설동 1층 사장이 내용증명으로 손해배상 6백만원을 통보하여 황당하고 화가 났다. 병원에서 어머님 생신 축하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신설동에 들어가 서류를 팽개치며 큰 싸움을 벌였다. 김성우 사무실에 가서 억울함을 이야기하고 오늘 집에 아들과 딸만 있어 일찍 들어가니 주말 보내고 담주 월요일에 만나서 식사나 술을 하기로 약속했다.
14일 어제 신설동에서 싸웠더니 아침까지 후유증이 생긴다. 산에라도 가야 하는데 우선 어머니 병원에 갔다. 휠체어에 모시고 밖으로 나와 뒤편 산밑에 앉아서 마음과 머리를 진정시키며 시간을 보냈다. 1시 지나 집으로 오니 학원에 간다는 아들은 머뭇거리며 2시가 되어서 나가고 딸은 하루 종일 방에만 누워 있다. 오후 4시에 안산에 올라 약수터를 지나 정상을 오르고 내려오는 길에 바위에 앉았다. 아직도 햇살은 따갑지만 이따금 바람이 불어 시원하다. 집으로 와서 아들과 딸에게 자장면 시켜 먹으라고 1만원을 주고 서울역에서 페르마학원으로 출발했다. 오늘도 늦은 밤에 수업을 마치고 막차와 막차를 갈아타며 새벽 1시에 집에 오니 부산에 여행을 갔던 아내가 와 있다. 다녀왔다는 인사는 커녕 즐거웠는지 불편했는지 여행에 대하여 아무런 말도 없고 피곤한 내가 더 피곤하다.
15일 어제 늦게 잠을 자고 눈을 뜨니 일요일 아침 8시가 지나고 있다. 영식이는 과천 수목원에 가자고 문자가 와 있고 아들과 딸은 일요일이라 일찍 학원에 간다. 아내는 오늘도 아무 말이 없으니 용돈을 주지 못한 나를 원망하는 것인지 황당하기도 했는데 베란다에서 수업하러 가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용돈 문제가 아니라 살면서 뚱뚱하다고, 음식 못한다고, 섬세하지 못하다고 여러가지 구박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 안산에 오르니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많고 녹음이 짙은 여름 산에 바람까지 불어 시원하고 좋다. 6시에 내려오니 학원에서 돌아온 딸은 잠을 자고 아들은 컴퓨터를 하고 있다.
16일 새벽에 창문을 여니 바람이 시원하다. 기상예보는 오늘 덥고 내일부터는 3일간 비가 온다고 한다. 아침식사를 하는데 아들은 7시40분이 지나도 샤워만 하고 결국 늦어서 밥도 안 먹고 학교에 가니 답답하기만 했다. 아침에 집을 나와 개봉동에 갔다가 신설동 3층 명도소송 접수를 하고 33만원을 입금했다. 소송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다. 오후에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 뒤쪽으로 나오니 붉은 장미는 벌써 시들어 가고 반대편 텃밭에는 호박,고추,상추 등 다양한 채소가 잘 자라 가득하다. 바람이 산들산들 부니 선선하여 어머님께서 좋아하시고 옆에서 신문을 깔고 앉아 있는 나도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다. 어머니께서 가장 먹고싶은 것이 잡채라고 말씀하시어 내일은 사서라도 가져오리라 생각하고 집에 돌아와 오후 6시에 안산을 올랐다. 장마 직전이라 그런지 인천 앞바다가 보일 듯 서울 공기가 맑다. 저녁에 김성우와 식사를 하기로 지난 금요일에 약속하여 연락을 했는데 통화가 안 되고 할 수 없이 요가를 마치고 온 아내와 9시경 식사를 했다. 오늘도 아들은 밤 12시가 되어 수학학원에서 돌아왔다.
17일 장마가 시작되어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다. 어제 늦게 온 아들이 일찍 일어나 숙제를 한다고 부산한데 학원에서 새벽 1시경 오는 것에 내 마음은 탐탐치가 않다. 중학교 2학년 학생이 밤12시 또는 새벽1시까지 공부한다고 얼마의 효과가 있을까. 오히려 잠도 못자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학교에 가서는 몽롱한 상태로 역효과가 생길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하지만 아내는 오래 붙들어 두는 현재의 수학학원을 고집하니 어쩔 수 없는 우리집 교육현실이다. 아들이 넓은 보드같은 과제물을 비도 오는데 그대로 들고 가기에 종이가 젖으면 쓸모가 없다고 지적을 하고 할 수 없이 학교에 태워다 주었다. 체육관에서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와서 점심을 먹었다. 어제 만나 식사를 하기로 한 성우가 연락이 안 되었는데 오늘도 여러 번 전화를 해도 역시 불통이다. 걱정도 되고 곧바로 지하철로 약수동 2층 사무실로 들어가니 문이 잠겨 있어 ‘삶이 어렵지만 힘내고 쪽지 보는 대로 바로 전화하라’고 명함 뒤에 편지를 써서 손잡이에 끼워 두고 있는데 열린 창문 틈으로 버티컬이 불쑥 튀어 나와 놀라서 뛰어 내려왔다. 어머니 병원에 갔다가 오후 7시에 충무로에서 영식이와 저녁을 먹고 중구 백병원 근처로 걸어가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김성우 사망' 문자가 들어온다. 오늘 만나 식사하기로 하고 사무실에 갔다가 편지도 써 놓고 왔는데 무슨 조화인지 알 수가 없었고 소름이 돋는 일은 지금 내가 백병원 영안실 건너편에 서 있다는 것이다. 죽은 그가 나를 부른 것인가 충격과 두려움으로 영안실로 달려 들어가 처절한 마음으로 목놓아 울었다. 오늘 새벽에 집을 나서 사무실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했고 새벽 신문을 돌리는 배달원이 발견하여 신고하여 이 곳 영안실에 안치했다는 것이다. 몇 시간전 내가 방문했을 때는 이미 사망하여 텅빈 사무실이었고 결국 내가 남긴 응원의 메시지도 보지 못하고 그는 떠나갔다. 며칠 전에 끈을 들고 매듭 짓는 연습을 하며 나에게 묘기 부리듯 장난을 하더니, 평소에 내가 필요하다는 물건을 웃으면서 이것저것 넘겨주더니, 어려운 상황에서도 오히려 나를 붙들고 좌절하지 마라고 여러차례 당부하더니, 이렇게 떠나갈 준비를 했었나 보다. 오늘쯤 만나 술 마시자는 약속이 영정 속의 그를 두고 나 홀로 마시는 자리가 되어 버렸다. 백병원에 늦은 밤까지 있다가 새벽 2시에 집에 도착하여 놀이터근처 의자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장마철 먹구름 사이로 달빛이 보였다 사라지고 나무가 휘어질 정도의 거센 바람이 눈물을 씻어간다. 전화를 하니 아내가 내려 왔다.
18일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김성우가 죽다니 사업 관계를 떠나 너무 자상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사업이 어려워 몸부림치면서도 오히려 어려운 나를 위하여 자신의 사무실에 책상과 컴퓨터를 설치하고
집에만 있으면 답답할테니 지하철로 나와서 커피도 마시고 사무실처럼 이용하라고 배려를 해준 사람, 지난 주 맛있는 중국집이 있다고 해서 사무실에서 한참을 걸어가니 가격이 2500원이었고 식사를 마치자 가진 것이 5천원 뿐이라서 어쩔 수 없이 사무실에서 멀리 왔다며 끝내 비용을 계산한 사람 - 이것이 그와 이승에서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어제부터 오는 비가 아침까지 주룩주룩 내려 아들을 학교에 태워다 주고 돌아와서 식사를 하는데 김성우에 대한 미안함과 슬픔으로 밥이 목에서 넘어 가질 않았다. 오전에 곧장 영안실에 들어가니 평소 보는 지인들이 왔고 하루 종일 지키다가 밤12시경 집으로 왔다. 내일은 김성우 발인이다.
19일 오늘은 비가 그쳤고 해가 떴다. 연일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식사도 거르고 잠도 제대로 못자니 피곤하다. 하지만 김성우 영결식이라 서둘러 나가 발인제를 보고 화장장으로 떠나는 관을 붙들고 그와 이별을 하였다.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큰형님에 이어 성우까지 젊은 나이에 비통하게 떠나가니 고통과 슬픔을 주체할 수가 없다. 영구차를 보내고 백병원에서 을지로 그리고 성우의 사무실까지 눈물을 흘리며 걷다시피 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어머니 계시는 병원으로 갔다가 휠체어에 모시고 밖으로 나왔다. 장마철 비가 그친 구름 사이로 지금쯤 화장장에서 이승을 떠나는 성우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저녁에 집에 들어오니 아내와 딸은 강민정 음악회하는 서대문구청에 다녀오고 필리핀에서 영어회화 전화가 왔다고 통화를 한다.
20일 날씨가 화창하다. 아침에 아들은 또 샤워를 오래하여 오늘도 등교 시간이 늦었다. 차에 태우고 서둘러 학교에 내려주고 집으로 와서 식사를 했다. 학교에 가는 딸한테 아내는 말랐다고 걱정하고 나는 반대로 뚱뚱해서 걱정이라고 하니 불쾌한 표정으로 현관을 나간다. 아침에 구파발을 지나 북한산성 입구에서 대남문을 오르고 석가탄신일에 왔던 문수사에 들어가 김성우의 명복을 빌고 부디 극락에 갈 수 있기를 또 후세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원했다. 불교 신자도 아닌 내가 긴 시간 합장하고 눈을 뜨니 건너편 산자락 햇살에 눈이 부시다.
21일 토요일 아침, 특기적성으로 학교에서 축구를 한다고 아들이 유니폼을 입는데 키도 크고 다리도 튼실하기만 하다. 올해도 가을 체육대회가 열리면 작년처럼 달리는 아들의 모습을 또 볼 수 있을까. 오전에 아내는 영화를 보러가고 딸과 나는 라면을 끓여서 점심으로 함께 먹었다. 3시경 안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니 페르마 원장 전화가 와서 중간고사 기간으로 접어들어 당분간 수업이 어렵다고 전한다. 너무 멀어서 힘들었는데 차라리 마음이 편했고 곧바로 어머니 뵈러 갔다가 8시경 집으로 오니 아내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어 우울한 저녁이 되었다.
22일 눈을 뜨니 비가 내려 안방에서 보는 창밖에 빗물이 콸콸 흘러 내린다. 일찍 일어나는 아내에게 일요일이니 아들 딸 더 자라고 식사를 늦게 하자고 했고 결국 9시경에 학원에 간다는 아들과 햄이 들어 있는 김치찌개와 계란찜으로 식사를 했다. 아내는 어제부터 불만이 있는지 완전 얼굴이 굳어 있어 11시경 안산에 오르려고 집을 나서도 말도 없이 책만 읽고 있다. 독서도 좋지만 산에도 가고 체육관에 나가 걷고 달리고 땀을 흘리며 자신감에 찬 활기찬 인생, 그런 당당한 모습을 나는 보고 싶다. 정상을 올라 내려오다가 바위에 앉으니 비가 온 뒤라 맑고 집에서 가져온 점심까지 더 맛이 있다. 2시경 내려와 병원에 가서 광선형 그리고 여동생과 만나 어머니 병원 이전 문제로 토의를 했다. 비용이 부담스러워 저렴한 요양원으로 옮기자는 형과 비용이 들어도 병원이 딸린 요양병원에 모시자는 나와의 의견이 달라 답답했고 형은 금전적으로 어렵고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아서 서운한지 눈물까지 흘린다.
23일 어제 가족 모임으로 내 마음도 불편하다. 광선형이 어머님 병원비를 책임지기로 하고 시골 논을 대부분 가져 가는데 지금까지 병원비 약 1700만원을 처리했으니 이제부터는 형제들이 분배하여 모시자고 한다. 여동생이 제안하기를 광선형이 가져간 재산 금액 지평선논 2필(2400평=약 1억원)중 33% 3천3백만원, 나는 밭논(1000평 =약 2천만원)중 50% 1천만원을 어머니의 병원비로 내라기에 나는 동의를 했는데 형은 대학을 나온 우리와 달리 자신은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며 33% 지출은 억울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어머니 통장과 매년 농사 수입금액 그리고 큰형 사망 당시 어머니 위로금 1천만원도 가져가 아직까지 언급도 안하면서 무조건 자신의 뜻을 따르라니 야속하기만 했다. 음식을 준비하여 시내버스를 타고 송추에 가서 도봉산을 올랐다. 오봉을 지나 우이암을 거쳐 반대방향 도봉산 입구로 내려와 오후에 병원으로 가니 형수가 오셨는데 어제 병원비 문제로 마음이 불편하기만 했다.
24일 어제 도봉산에 갔다가 돌아와 일찍 잠을 잔 탓에 몸이 가뿐하다. 아들과 딸이 학교에 가고 안방에 누워서 생각하니 22년 동안 새벽에 출근하여 아침식사 전에 강의를 하고 노량진 학원을 나오면서 그만두었는데
요즘은 새벽을 잊은 듯하다. 10시경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마치고 어머님 병원에 갔다가 신설동에 가서 1층과 배상액을 논의했는데 결론도 만들지 못하고 싸움만 하고 돌아왔다. 주변 일들이 심난하니 어떻게 일을 풀어야 할지 판단도 못하고 대안을 만들지도 못하고 있다.
25일 어젯 밤 늦은 시간에 아들이 배가 고프다고 음식을 먹으려고 하자 아내가 큰 소리로 꾸짖어 거기에 내가 잠을 깼다. 한창 자랄 때는 수시로 배가 고픈 것인데 나보다 아들이 더 야속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침에 식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와 쉬다가 김성우 가족에게 인천 건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사람이 죽었으니 기를 쓰고 투쟁하여 해결해야 된다고 연락을 했다. 그러나 중학생과 고등학생인 그의 두 아들이 상황을 전혀 모르고 현재 살고 있는 약수동 중앙하이츠 아파트마저 대출금 이자처리를 못해 조만간 경매로 처리될 상황이니 안타까울 뿐이다. 나역시 성우에게서 받아야 할 채무가 남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요구할 수가 없었고 요구한다고 해도 나올 돈도 없는데 성우의 가족을 위하여 살아있는 내가 양보하기로 마음먹었다.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고 집에 2시에 들어와 점심을 먹었다. 학교에서 딸이 왔고 4시에는 아들이 들어오더니 시험이 목전인데도 컴퓨터 앞에 앉는다. 매월 한 번씩 병원에 오는 영식이가 오늘도 방문하여 어머니를 뵈었다.
26일 장마철이라고 하는데 오늘은 비도 내리지 않는다. 중간고사가 다가와 스트레스가 많을 아들이 아침부터 엄마의 잔소리까지 듣고 불만의 표정으로 학교에 간다. 그렇지만 현재는 원망의 마음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모두가 부모로서 사랑이고 관심의 표현이었음을 아들이 이해할 날이 올 것이다. 점심 때 장모님께서 또 식혜를 만들어 청주에서 오셨다. 집근처 공사장 식당에서 밥이 많이 남아 만들어 온다는데 나로서는 별로 달갑지가 않다. 안산에 올라 평소에 다니는 길을 걷고 내려와 저녁을 맞이했다.
27일 피곤하고 머리가 복잡하다. 아버지로서 무능력하거나 무기력할 때 나의 괴로움보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오히려 많다는 것을 학교에 가는 아들을 보면서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지식은 물론 판단력 결단력 등 모든 것을 겸비하는 일은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일이기에 무슨 이유든 어느 순간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면 천하를 호령하는 큰형님이나 똑똑한 김성우처럼 목숨을 버리는 일이 생긴다. 현대건설 정몽헌 사장이나 부산시장을 역임한 안상수, 특전사령관을 지낸 정병주 중장도 모두 마찬가지로 그들의 죽음은 실력과 명예, 지위 물질적인 조건과는 관계가 없었다. 개봉동에 가서 김성우 죽음에 대하여 사장들과 이야기를 하는데 충격적이지만 모두가 자신들의 책임은 아니라는 입장이라 혼란스러웠고 신설동에서는 계속하여 보상액을 터무니 없이 요구하여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광화문으로 와서 후배 변호사와 이야기를 하고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신설동 상황을 하소연하고 방법을 모색하는데 견해가 달라 위로나 힘은 커녕 다투기만 했다.
28일 어제 다투어 술을 많이 마셨다. 답답한 나의 마음과 뜻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마치 남의 일처럼 이야기하는 무관심이 그 원인이었다. 금년에도 상가부도, 실직으로 인한 무기력, 어머니 문제와 형과의 갈등, 아들의 학교문제, 성우의 죽음, 신설동 사건까지 어려움이 많다. 새벽에 들어와 몸과 마음이 피곤하여 오전부터 오후까지 하루종일 집에 누워 있었다. 화도 나고 젊은 사장한테 더 이상 자존심을 굽히고 싶지 않아 직접 해결하라고 아내를 신설동에 보내고 안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니 현금 5백만원 주기로 약속증서를 만들어 친구 유미와 함께 왔다. 5백만원이 결코 작은 돈이 아니어 홧병이 나는데도 큰소리도 못치고 끙끙 앓기만 했다. 상대방은 자신들의 피해 규모를 말하지만 법으로 하든 내 입장을 고수하면 반값으로도 처리할 수 있는데 생활이 짜증나고 의욕이 상실되니 거의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나로 인한 결과다.
29일 일요일 하늘이 맑고 바람이 선선하게 분다. 아침에 영식이가 도봉산에 가자고 전화가 오는데 마음이 심난하여 거절하고 홍은동 풍림아파트 방향으로 혼자 북한산에 올랐다. 겨울에 눈이 펑펑 내리던 길을 녹음이 우거진 이 여름에 다시 걸어 비봉 정상을 지나고 사모바위도 넘었다. 문수봉을 향해 가면서 중간에서 점심과 청하를 마셨는데 심난한 마음이라 오늘은 맛이 전혀 없다. 대성문에서 정릉으로 내려와 단숨에 음료수를 1병 마시고 버스로 제기동 경동시장에 와서 다시 260번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어머니를 뵈니 억울한 심정이 가시는 듯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나는 정신과 두뇌가 멈춘 박제가 된 것만 같다.
30일 신설동 건은 더 철저하게 시시비비를 가리고 법정에서 결판을 냈어야 돈을 잃어도 당당하고 억울하지 않을 것인데 상대방의 요구에 대응도 제대로 못하고 고스란히 500만원을 넘겨 주는 것이 자존심이 상해서 견딜 수가 없다. 살다보면 사고가 생길 수도 있고 최선을 다한 사업이 실패하여 금전적 손실이 생길 수가 있다지만 의류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어서 당하는 이런 치욕은 처음으로 격는다. 아침에 개봉동 가서 일을 보고 집에 전화를 하니 500만원을 입금해 주었다고 한다. 집에 왔다가 홍제천으로 나가 오늘의 심정을 이기기 위한 몸부림으로 한강 입구까지 10킬로 이상을 달리고 돌아왔다. 내일이면 더위와 함께 7월이 나를 기다리지만지난 달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섰던 도봉산 포대능선의 시간이 아직도 뒤돌아 보아지는 험난한 6월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