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고 어느새 내 엄마가 아줌마였던 그 나이 50이 넘은나이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계실때 연세 88세89세 2012년 6월 에서2013년 1월 폐가 나쁘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폐에 좋다는 바위손을 따러 비금도로 아들과 배낭을 메고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양쪽 배낭에 꾹꾹 눌러 한가득 채워 광주에 도착 중환자실에 계신 엄마를 간호사에게 부탁하고 6시경 병원에 도착
늘 옆에 있었던 딸을 몇 시간 만에 보자 몇 년 만에 만나는 딸 인냥 반가워 하신다.
의지 할때라곤 딸뿐인 엄마는 병원에 계시는 동안 외출했다 돌아오는 나를 보면 순산아 아이고 순산아~!!! 반가움을 표시한다.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광주로 모시고 오실 때만해도 더 오래 사실수 있을거라 믿었다 엄마와 딸인 나의 생각~
그러나 병원에서 페가 나쁜 결과는 있지만 정밀한 원인을 알아내지 못한다. 라며 한국 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가든지 그곳에서 운명을 기다리든지 윗선 병원으로 옮기시라는 말씀만 하신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독교 병원을 찾아갔다.
한국병원의 중환자실과는 달리 엄마를 많은 중환자들 틈에 모셔놓고 딸의 손을 잡는 엄마를 달래놓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는 심정은 만가지 교차하였다.
저려오는 아픔을 뒤로하고 나오며 폐 전문 병원이라 기대를 하고 다음날 담당 주치의 말씀을 들으며 그래도 가능성에 대해 희망을 가질래요.라며 자신있게 말했다. 불가능 상황에서 희망을 가져본다는 보호자말에 네~ 라고 답을 해준다. 보호자의 희망을 저버릴 수는 없었으리라~
나 역시 엄마가 평소에 100살 까지 사실 것 같다는 말씀에 그럴 수 있다는 기대를 해보았다. 지금은 돌아가는 길을 두려움에서 벗어나 있지만 그때만 해도 받아들이지 못한 두려움 그 자체였었다.
그런 보호자와 환자가 간절히 원했기에 담당의사는 최선을 다하기 위해 회진 돌기 전 아침, 저녁 밤 시간 또 중간 중간에 환자를 관찰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해주시는 과정은 의학자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뛰어 넘는 훌륭한 의사로서의 과정 이었다.
담당 주치이신 과장님역시 최선을 다 해주셨으며 과장님이 오시면 여지없이 엄마는 가지 말라며 가지마, 가지마 하신다.
보호자인 나를 담당 주치의가 자주 밖으로 부르신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나는 그 자리에사 눈물만 흘리고 있다.
의사로서 힘겨운 환자와 보호자 였으리라~
광주기독교 병원 담당샘 이셨던 이 승 현 선생님, 장시간 최선을 다해 주신 김 종 택 선생님 담당 주치 과장님께 다시 한번감사 했음을 올려봅니다.
첫댓글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는 것과 안 좋은 이름으로 기억된다는 것은 어떤 차이일까?
아무도 없는데 두리번 거려집니다.
나는 누구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봤는가? 또 누구를 좋은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는가?
순산님 글이 나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고맙습니다.
생각으로는 되는데 효도는 마음은 크나큰일인것 같아요..나도 한달간 엄마랑 같이있어서 무지행복했는데..순산언니도 그때생각이 많이 났을것같아요~~^~^
특히 중환자와 환자보호자의 입장에서 의사의 존재는 바로 절대자입니다.연로하시고 병중에 계신 엄마와 순산씨의 마음까지 의지하게 해 주신 두 분 의사선생님,진정 인술을 펴시는 훌륭한 의사시군요.
엄마를 위해 배낭 메고 바위손 따러 비금도 가신 효녀순산씨의 모습이 빤히 그려지네요.
에로부터 의술(醫術)은 인술(仁術)이라 했고, 심의(心醫)라고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늘 마음(心)을 평안케 하는 인격을 가진 의사, 그 눈빛만 봐도 마음의 안정을 느끼게 하는 의사을 말한 것 같습니다. 환자를 진실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만 가능한 품격을 소유한 자를 말하지요. 순산님! 인술(仁術) 베푸는 의사선생님을 만나 뵈었고, 감사하신 순산님의 그 모습이 자랑스럽습니다.
순산님 참 효녀이십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에 순산님의 따뜻한 성품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