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30. 토요일, 중국 연길로 4박 5일 여행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여서 그런지 갓 결혼한 신부처럼 설렜다. 연길에 도착한 날은 연변 박물관과 두만강, 둘째 날 백두산 북파, 셋째 날 서파, 넷째 날은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대성중학교와 그분의 생가를 방문하고 마지막 날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백두산의 경이로운 아름다운과 신비함을, 한국 분단의 아픔을 지닌 두만강에서 뗀 목을 탄 감격을 모두 표현하고 싶지만, 이번 아기 편지에서는 저항시인 윤동주님 발자취를 적으려고 한다.
우리는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을 보며 3시간 30분이나 차를 타고서야 용정에 있는 대성중학교에 도착하였다. 그곳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윤동주시인의 시비이고, 거기에는 그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서시(序詩) 전편이 실려 있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대성중학교 1층은 옛 시절 학교 모습을 재현했고 2층은 박물관 형태로 전시 및 이력이 나와 있었는데 2층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관광객이 많은 관계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전시관 관람과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현재 대성중학교에서 근무하는 조선족 선생님이 직접 설명을 해주시는데 그 목소리가 완전 기계적이다. 기나긴 설명을 막힘없이 또빡 또빡한 말로 설명하는 모습에 대단하다고 감탄을 했는데, 전시물이나 역사적인 사실에 질문하자 굉장히 당황하며 얼버무리니 괜히 질문했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방적인 설명을 듣고 나오는 입구에 용정중학교 후원함이 있었다. 좋은 마음으로 후원금을 넣고 방명록에 작은 흔적을 남기고 1층으로 내려와 윤동주 시인의 교실 체험하는 공간에서 기념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곳도 돈을 내야 가능하다고 하니 기분이 언짢았다. 윤동주 시인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에 잠시 윤동주 시인 동상 앞에 머물렀다. 그의 시에는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면서 작은 일에도 괴로워했고, 죽어가는 것까지도 사랑하면서 갈 길을 가겠다고 하는 마음, 나라 잃은 한 젊은 지성인의 번뇌와 시련 속에서도 떳떳한 삶을 살겠다는 곧은 의지가 담겨져 있다. 그는 소리 높여 외치지 않고 행동하지 않았지만 절제된 어조로 함축된 언어로 몸부림쳤던 것이다.
학교를 나오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날씨는 더운데 기름지고 뜨거운 현지 음식을 먹을 생각을 하니 배는 고프지만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때 가이드가 유명한 냉면집이 있다고 안내했는데 쾌 규모가 큰 식당이었다. 중국사람과 한국 관광객이 뒤섞여 떠드는 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 냉면이 나왔다. 세숫대야 같은 그릇에 굵은 면과 시원한 국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여자 두 명이 먹고도 충분한 양이었다. 이걸 어떻게 다 먹을까 걱정했는데, 맛있다 보니 거의 다 먹고 말았다.
배가 부른 탓인지 몸이 노곤해 행동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느그적 명동촌으로 이동하여 윤동주 생가를 방문하였다. 영화 '동주'의 배경이기도 한 이곳은 웅장하고 거대한 중국 관광지와 달리 아담하고 아름다워 차분하게 거닐며 여유롭게 둘러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윤동주 생가 내부 길옆이나 풀 섬에 크고 작은 돌에 윤동주의 시를 새겨 놓았는데, 주옥같은 시와 자연이 어우러져 더 감동적이었다.
윤동주의 생가는 1900년경에 그의 조부 윤하현이 지은 집으로 기와를 얹은 10칸과 곳간이 달린 조선족 전통 구조로 된 집이었다.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이 집에서 태어났다. 1932년 4월 윤동주가 용정 은진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그의 집도 함께 룡정으로 이사하고 이 집은 매도되어 다른 사람이 살다가 1981년 허물어졌다고 한다. 그 후 1993년 4월 명동촌은 그 역사적 의의와 유래를 고려하여 용정시 정부에서 관광 점으로 지정했고 윤동주 생가는 1994년 연변대학 조선연구센터의 주선으로 중국 정부가 지원해 복원 건립했다고 한다.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 아쉬운 마음으로 나오는데 들어갈 때는 지나쳤던 입구 대문 경계석에 새겨진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윤동주 생가'라는 선명한 글씨를 보았다. 윤동주를 '중국 조선족 시인'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니 화가 났다. 중국이 여기까지 동북공정을 하는 있는 사이에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하루속히 우리정부가 관심을 갖고 대책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그곳을 떠났다.
첫댓글 동화사랑님 남편분과 오붓이 여행을 다녀오셨군요. 간접경험인데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동화사랑님 덕분에 윤동주 시인의 시와 생가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수준있는 여행하셨네요. 신혼 여행 같은 시간에 그런 의미있는 여행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닐 것 같은데...
소중한 자료 쉽게 볼 수 있게 해주셔 고맙고요. 놓쳐서 안 될 것을 지적해 주신 동화사랑님께 짝짝~~
누구나 좋아할 윤동주시인의 발자취를 함께 따라갑니다.
바위에 새겨진 '서시'를 새롭게 읽어봅니다.
하하인답게 꼼꼼히 둘러본후 전해준 용정이야기 재미나게 들려줘서 고마워요.
동화사랑님! 대단한 애국심이 강한 여장부이시네요. 빡죽이는 중국을 여러번 갔다왔지만 윤동주의 생가는 못 가봤습니다.
소중한 자료를 올려 주어서 감사드립니다. 꼭 가보고 싶습니다.
원님 덕에 나발부는 사람 많습니다. 우리 시인님 덕에 나발부는 중국인들 반도의 조그만 나라 힘없는 나라 힘없는 민족
용정에 살아갔던 우리 조상을 생각하면 슬픔이 가슴에 뭉클합니다. 갸냘픈 붓끝 섬세한 손놀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미약하여 하염없이 눈물만 났습니다. 나도 용정가서 조선족 우리 선조들의 삶 음미하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만주는 옛날 주인없는 땅이었는데 우리 선조가 잘났으면 미국처럼 알레스카 사듯이 중국에 살수도 있었는데 이제는 영원히 안될것 같은 절망
하지만 과거는 없으니 음미만 하고 희망을 찾아 같이 길 가 봅시다. 즐거운 나들이 였을것 같아 나 또한 기분이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직 가 보지 못한 곳 용정,윤동주시인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공유하며 꼭 가 봐야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글과 사진 자료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