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하는 이유 마태복음 6장 25-34절
오늘은 추수감사절 예배로 드립니다. 올해도 평화살림부에서 한 장의 사진으로 드리는 감사 릴레이를 진행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전교인이 참여하는 감사절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평화살림부를 위해 박수 부탁드립니다. 교회 절기의 마무리를 하는 시점에서 드리는 감사가 목회자 개인만의 몫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귀한 릴레이를 진행해 주셨습니다.
오광식 집사님 감사의 글에 보면 집이 안 나가서 무척이나 노심초사하셨습니다. 근데 어떻게 해결 되셨나요? 영원히 안 나갈 것 같았는데 기다리고 노력하다니 보니 어느새 해결되셨어요.
여러분들은 한해를 지내시면서 가장 우려하고 염려했던 일들이 무엇이었습니까?
1. 안식년을 다녀오면 교회가 괜찮을까 교인들은 어려움이 없을까? 재정은 사람들은? 특히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도 처음 가는 길인데? 그런데 생각보다 염려스러운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없어도 수없이 많은 언달들이 교회를 잘 지켜주셨어요. 촘촘히 이어진 연결성들이 삶의 그물망을 살려갔습니다. 최근의 언달산행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잘 자기 역할들을 잘 해 주셨어요.
2. 낯선 여행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소매치기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자유여행에 대한 낯설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두려움 속에서 상상했던 것들은 일어나지 않았고, 낯선 여행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새로운 경험속에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한 번 해보니 해 볼만 하고 여행에 대한 노하우도 생겼습니다.
많은 염려와 걱정이 있었지만 매번 살아보면 그때의 걱정들을 대부분 기우였던 경우가 많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것 같은 데 살다보면 다 살만하고 내 노력이든 주변의 도움이든 잘 건너왔습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는 때때로 아니지만 적절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지나고 보면 그럴게 걱정할 일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삶을 많이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이건 장성만 집사님의 감사고백입니다. 길을 잘못 들었는데 우왕좌왕 하다가 문득 본 하늘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승우가 물집이 잡혀서 천천히 걷고 자주 쉬며 도토리도 줍고 나비도 보고 나무로 지팡이도 만들어주고, 잘못 들어서지 않았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 그리고 잘못 들어선 길 때문에 해수욕장에 일찍 들어섭니다. 소라게를 보고 걷다가 갯벌을 만나고 내친김에 신발과 양말을 벗고 다양한 생물들을 관찰하고 심지어는 복어도 잡아보고...
삶에 있어서 어려움이라 생각했던 일, 실수, 잘못 들어선 길 이런 것들까지도 활용하셔서 우리의 인생에 귀하고 값진 경험과 체험과 일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한 달 전쯤 컴퓨터가 나갔습니다. 하늘이 노랗게 변하더라고요. 가까운데 갔더니 방법이 없데요. 또 다 날리는구나 했죠. 마음을 비우고 이제는 아수스 본사에 가서 제대로 정품을 깔아보자 해서 아수스 본사에 갔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서 C-Mos 문제였던 걸 알았고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몇 일이 지났는데 교인분 컴퓨터가 똑같은 증상으로 부팅이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제가 해결해 주었어요. 닥쳤을 때는 망했구나 싶었는데 배우기도 하고 뜻밖의 소득이 있고 그래서 그 경험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그런 일들이 참 많지요. 저희 고향교회 목사님은 결혼할 때 그렇게 반대하시더니(여자가 너무 많이 배우면 안된다고) 결국 마지막에 등록금이 없었을 때 그분이 등록금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지금 내 앞에 좋은일이 생기든 나쁜일이 생기든 좋은지 나쁜지는 끝까지 살아봐야 합니다. 크게 절망할 일도 크게 기뻐할 일도 아닌거죠. 미국에 있을 때 부목사로 사역하던 교회가 결국은 닫았어요. 돈을 받고 있을했는데 그 사례비는 물론이려니와 이제 달리 방법이 없으니 교회를 개척하는 방법 외에는 달리 선택의 길이 없었죠. 얼마나 고민하면서 기도했겠습니까? 받던 돈도 못받고 이제는 돈 들어갈 일만 남은 거잖아요. 그런데 저희 딸은 그 시절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어렵고 힘겹고 별로 좋지 않은 일로 다가오지만 그것이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새로운 경험을 주고 예기치 않는 은총이었음을 경험하는 경우가 우리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삶의 모든 시간들은 은총과 고마움과 감사의 시간들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진들은 삶의 소소한 일상에서 만나는 잔잔한 감사들입니다. 직장에서 관계에서 소소한 일상에서 심지어는 동물들을 통해서까지 다가오는 섬세한 하나님의 손길들에 대한 감사들이 넘쳐났습니다. 김주연 님 자신이 직접 6년 동안 가르쳤던 아이들에 대한 잘 자라준 것에 대한 고마움, 감사의 글쓰기로 인하여 자신의 일상에 수없이 많은 선택앞에서 좋은 것들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는 최윤정 님의 감사 등
감사는 없는 것을 찾는 것이니라 내 삶에서 깨닫고 발견하는 것이라는데 마치 밭에서 보화를 캐내듯 일상의 보물들을 하나씩 길러올려 자신의 삶의 에너지로 삼아가는 여러분들의 모습이 잔잔한 감동입니다.
무엇보다 감사드리는 것은 우리가 교리의 종교가 아니라 삶의 종교인으로써 삶의 기적을 욕심내지 않고 로또를 탐하지 않고 생활종교인으로 내안에 갇히지 않기 위해 좀 더 잘 사랑하기 위해, 좀 더 나은 관계와 세상을 만들어가기위해 성찰과 사랑을 아끼지 않으며 함께 살아온 삶의 시간들이, 그리고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으로 살아있는 여러분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살아있다는 건, 그런 거라 생각합니다. 백조의 우아함은 물속에서 끊임없이 발을 휘젓는 그 생명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그런 거죠.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그나마 그 자리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요 계속해서 위를 향해 걸어요. 걷지 않으면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몸도 마음도 끊임없이 퇴화되는 삶의 시간들 속에서 그나마 몸과 마음과 삶을 그나마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뭔가 계속해서 애쓰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보면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은 자동적으로 해결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이야기인겁니다. “A와 B가 있는데 A를 신경쓰면 A만 근근히 해결하고 살지만 B를 신경쓰면 A는 자동으로 해결된다.” 하나님의 정의를 세우면 먹고 사는 것은 자동으로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먹고 살려고 하는 일에 전전긍긍하지 말고 차라리 그 시간에 정의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지난 한주간을 보내면서 이 말씀의 의미가 더 와닿았습니다. 상식과 순리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면서 그 공존의 그물망이 생태계처럼 상호간에 연결되어 있다면 사람안에 있는 그 측은지심, 함께 하고 싶은 마음,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 돕고 싶은 마음 이런 것들이 교차하면서 상호 유기적으로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 살려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유기적 시스템을 깨뜨리는 행위들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오히려 권력을 차지하고 죄도 없는 사람이 감옥에 가는 세상이 되면 유기적 생태계의 그물망을 깨뜨리는 거죠. 단절되고 독점되고 선한 마음들을 감옥에 가두고, 하나의 대 자본이 지역에 들어와 모든 상권을 다 먹어버리면 한종만 남고 모든 종들이 사라지면 결국은 유기성이 깨지게 되는 거죠. 독점, 권력남용, 법질서가 무너지고 상식이 무너지는 게 곧 유기성을 무너뜨리는 일이요. 결국은 그 무너지는 유기성안에서는 하나님도 먹이시고 입히시고 돌보시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일을 하시게 하시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정의를 세울 때입니다. 생명의 그물망 안에 있는 유기성 즉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이 주신 본성적인 선함, 아름다움, 서로를 살리고, 돕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싶은 그 마음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공의를 세울 때입니다. 시인 박노해님께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세워야할 것은 계획이 아니다. 확고한 삶의 원칙이다. 나머지는 다 믿고 맡겨두기로 하자. 계획의 틈새와 비움의 여백 사이로 여정의 놀라움과 인연의 신비가 찾아오리니” 상식과 원칙, 순리와 정의가 지켜진다면 그 관계망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은 실수와 염려까지도 놀라움과 인연의 신비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삶에서 정의와 상식을 지켜야하는 이유입니다. 감사절의 감사가 모두의 감사로 이어지도록 그리고 연민과 사랑의 유기적 그물망 곧 입히시고 먹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회복하기 위해 이땅 한반도 곳곳에 정의를 세워가는 올 겨울이 되시길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