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아저씨는 우리 아버지 이종사촌 이시다
엄마는 해방직전 1944년 결혼을 하셨는데 해방후, 625사변후, 1953년까지
시이모님 댁에서 아버지 이종사촌들등 대식구가 살았었다고 한다.
엄마가 시이모님들, 시부모님등 층층시하에서 시집살이를 할때
어느날 엄마가 귀한 그릇을 깻는데
아저씨가 "그 그릇 내가 깻다" 하셔
엄마 야단맞을 것을 막아 주신적도 있다고 한다.
아저씨는 오랫동안 결혼할 생각도 안해 노총각이 되어 가셨는데
집안 어른들이 걱정을 하시고.. 여기 저기 중매를 알아보신것 같다.
아저씨 총각때는 나와 내 동생한테 가끔씩 용돈을 주시곤 했었다
그런데 얼핏 들은 이야기로는 아저씨는 누나인 진이 아줌마 병원에서
오래 일하던 얼굴이 동그스럼하고 피부가 하얗고 예쁜 간호원을
좋아 하셨었다고 하는데...
옛날에는 요즈음 같이 간호대학을 나와 간호사 자격증을 딴사람이 간호사가 아니고
그냥 병원에서 잔 심부름 부터 시키면서 일을 가르쳐 간호원을 만들곤 했었는데
의사선생인 아줌마 밑에서 잘 배워서 그런지, 그 간호원은 아주 얌전하고.. 조용하고... 아줌마 비슷 했었다.
집안에서는 며느리감이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는지
아저씨에게 학교 선생님을 중매로 해서 결혼을 시키셨다.
아저씨 결혼하시고 얼마 되지 않았을때인가
어느날 밤에 용이 아저씨와 부인이 초췌한 모습으로
멀리 중화동 우리집에 오셨었다.
아저씨 어머니가 살아계실때
우리 할아버지가 아저씨네 청파동 집을 잡혀서 빚을 얻어 쓰셔서
집이 넘어가게 생겼다고 도와달라고...
우리 할아버지가 아무 경제능력이 없으시니 도움이 되지 못하고....
아저씨와 아줌마가 절망한 모습으로 그날밤 우리집을 떠나셨는데…
후에 들으니 아저씨와 아줌마가 대신 빚을 갚고.. 빚쟁이와 잘 해결을 봤는지
집은 뺏기지 않게됬다고... 정말 다행이었다.
아저씨는 그후 한진회사와 관련된 사업을 하신것 같은데.. 돈도 잘 버시고
또 부인은 교감선생님이 되시고...
(자가용을 타고 학교에 출근해서 다른 선생님들이 부러워 하셨다고...)
아들을 셋이나 낳고 유복하게 사셨다.
효녀인 아저씨 부인은 친정어머니, 친정여동생까지 같이 살았는데
이때 친정어머니가 살림도 해 주시고.. 아이들도 봐 주신듯...
아이들은 최고로 뒷바라지를 잘 받아서 그런지
세아들 다 공부잘하고 특히 둘째아들은 1등만 하고...
그런데 아저씨 부인이 갑자기 암에 걸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아이들 셋 데리고 갑자고 홀아비가 된 아저씨는
아내와 살던 그대로 장모님과 처제와 함께 살았는데
모든 경제권을 장모님께 맡기셨었다 한다.
아저씨 누나이신 진이 아줌마가 아저씨를 재혼 시키고 싶에 여자라도 소개할라 하면
장모님이 아저씨 재혼을 절대 반대 하셨다고...
아저씨도 아이들을 위해 재혼을 포기하고 사셨던것 같은데
외할머니가 뒷바라지를 하셨어도
아이들이 자기엄마 살아 계실때 같이 공부를 잘하지는 못한것 같다.
내가 2005년인가 한국을 방문해서 아저씨를 뵙기는 했는데..
청파동집은 아들들 주고
아저씨는 혼자 셋방을 얻어 사신다고 하셨다.
그때 만나뵜을때는 아저씨 건강은 좋아 보이시고..
받으시는 연금만으로도 혼자 사시기에 충분하셨을 것인데...
그 후 아저씨가 아들이 사는 집으로 다시 들어가 사신다고 들었는데
어느날 며느리한테 큰 소리를 지르셨다고...
그래서 아저씨를 치매검사를 받으시게 했는데... 치매기가 있었다고...
(나도 깜박 깜박 하는게.. 치매검사를 하면 치매기가 분명 있을것 같다)
그래서 치매약을 드리기 시작 했다는데...
아저씨는 치매약을 정말로 잡수시기 싫어 하셨는데...
큰아들은 무서워 하셔서..
큰아들이 잡수시라 야단을 하면 할 수 없이 잡수 셨다고...
그런데 주위 노인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치매약을 먹으니 너무나 몸이 아프고 괴로워.. 못먹고 중지 하셨다는데...
아저씨는 강제로 치매약을 드신것 같다.
그리고 2010년 한국에 가 보니 아들들이
아저씨를 요양원에 들여 보냈었다.
아저씨를 요양원에서 뵈었는데 내가 누군지 알아 보지도 못하시고..
내 이름을 얘기해도 누군지 모르셨다.
아저씨가 계신 방에는 다른쪽에는 남자 2명이 침대에 누워계셨었는데
아저씨는 "아야~"라고 다른방에서도 들릴정도로 크게 소리를 지르곤 하신다고...
그래서 같이 가셨던 대현 아줌마가 "어디서 그렇게 큰 소리를 나와요?"
했더니 "목구멍에서..."하고 대답하셨다.
그때는 무심히 들었는데 요즈음 생각해 보니, 누군가가 아저씨를 아프게한것 같다.
몸을 못쓰시니 대항할 수는 없고... 누가 들으라고 크게 "아야~" 소리를 지르신것 같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줌마한테 소식을 들으니
요양원에서 아저씨를 독방으로 옮겼다고...
아저씨가 하도 같은방에 있는 사람들과 싸워서...
그리고 얼마 지나니 않아 아줌마가 면회를 가셨더니
아저씨가 독방에서 아주 말라 비틀어 지고
건강이 아주 나빠지셨더라고...
아저씨와 한방에 있던 다른 두 남자도
아저씨 같이 침대 누워계시고 자기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시는데
아저씨가 어떻게 싸움을 하 실 수 있었는지...
병원에서 여러명이 한방에 입원해 있어도 환자들 끼리 싸우고
치고 받아서 한 환자를 격리시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아마도 아저씨가 그곳에서 누군가한테 밉보이신것 같기도 하다
아저씨를 독방에서
그렇게 말라 비틀어지고 거의 돌아가실 상태면
더 이상 싸우실수도 없었을텐데..
아저씨를 다시 사람들 있는 방으로 옮겨줘야 하는것 아닌지?
아저씨는 그렇게 얼마 안돼 그곳에서 돌아가신것 같다.
그 옛날 아저씨가 재혼을 하셨으면
노후가 쓸쓸하지 않으셨을것 같아 마음이 쨘 하다
첫댓글 가족이 요양원 에서 어떤이유로든지 독방에 격리되면
되도록 빨리 다른 요양원으로 옮겨야 할것 같습니다.
잘못하면 얼마안가서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게요, 상처하시고, 재혼 하셨더라면 좋았을텐데.
103세이신가 되신 김형석 교수님께서도 혼자가 되었을때
어머님께서 재혼하라고 하셨는데 당시에 연세가 아주 많았기에
그후에도 오랫동안 혼자 외롭게 사실줄을 모르시고, 재혼하시지 않았던 것을 아쉬워하시더군요.
그래 제자들에게 배우자를 잃었을때 재혼하라고 조언하신다고.
미국의 양로원은 너무 비싸서 탈이고,
한국은 요양원비가 미국에 비해서 많이 적지만,
케어를 잘 받지 못하니 탈이네요.
노후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수 없지만, 건강관리 잘 하고,
말이 씨가 된다니, 저는 혼자 거동을 못할때가 되면 자는 잠에 데려가 달라고
기도하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