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절을 짓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고 있었는데 상좌들이 많이 생기다 보니 함께 공부할 곳이 마땅치 않아 해인사에 금강굴을 짓게 되었다. 해인사에서 소임을 보고 있던 천제스님과 의논해 금강굴을 짓고 난 후 큰스님이 아실까 두려워 3년 동안 인사를 드리지 못했다. 못난 중으로 숨어서 공부만 하겠다는 약속에 상반되는 일을 했기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금강굴을 짓고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큰스님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호되게 꾸짖는 경책의 편지를 받은 것이다.
“금생에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한 방울 물도 소화하기 어려우니라. 今生未明心 滴水也難消
공부에 손해되는 일은 일체 하지 않아야 한다. 만사가 인연 따라 되는 것이니 모든 일은 인연에 맡겨두고 쓸데없는 신경은 필요 없다.
나와 남을 위한 일 착하다 해도 모두 생사윤회의 원인이 되나니 원컨대 소나무 바람 칡넝쿨 달빛 아래에 샘이 없는 조사선을 깊이 관할지어다. 爲他爲己雖微善 皆是輪廻生死因 願入松風蘿月下 長觀無漏祖師禪“
인사를 드리러 갔던 석남사 스님 한 분에게 던져 보낸 이 편지를 받고서야 겨우 인사를 드리러 갈 수 있었다. 큰스님은 지난 일은 묻지 않으시는 성정대로 금강굴에 대해 다시 말씀하지 않으셨다. 어느 날 금강굴을 짓는 데 큰 힘을 보탠 상좌의 부모가 "저희들 스님(딸)이 시주를 받아 얻어먹으면 빚이 되어 공부하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부모가 공양한 것으로 살아가면서 수행하면 어떨까요?" 하면서 논 스무 마지기를 시주할 뜻을 비쳤다. 그 일을 큰스님께 의논드리자 "여러 사람에게 복을 짓게 해야지 한 사람에게만 복을 지을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 주는 거라고 다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큰스님의 말씀을 듣고 시주를 사양했더니 두 번이나 더 간곡히 권고하기에 정중하게 거절했다. " 더 이상은 안 됩니다. 큰스님 말씀입니다. 여러 사람에게 시주를 받아야 복전(福田)이 심어집니다." 큰스님은 평소 돈은 비상과 같다고 하시면서 "거저 얻게 되는 돈을 뿌리치는 사람이 가장 용기 있고 청정한 사람이다" 라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