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김라일락이라는 꽃이 있다.
해방되고 미군정 시절 북한산 기슭에서 태어나
태평양을 건너간 우리 순이 같은 꽃.
지금은 전 세계의 꽃시장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팔려 다니는 미쓰김라일락.
미군들의 세상에 태어난 게 죄라면 죄다.
서울에 올라와 몸 한번 팔고 미쓰리가 된 덕자도 있는데
태평양을 건너 본토로 건너가자니
미쓰김라일락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겠지.
60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 할머니가 되었건만
지금도 몸을 파는 미쓰김라일락.
너는 아직도 잘 나가는 국제갈보다.
하지만 미쓰리도 고향에 묻혀 이덕자로 돌아왔는데
이제 네 이름도 찾을 때가 되었지.
뻐꾸기 우는 산천이면 어디에나 피어나는
네 이름은 정향나무꽃.
✱ 미쓰김라일락 : 현재 미국 화훼시장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꽃으로 해방 직후에 미국으로 건너가 품종개량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미군정청 소속 식물채집가인 미러 교수가 북한산 기슭에서 이 꽃의 종자를 채집하여 갔다고 하며 그것은 털개회나무(=정향나무) 종자라고 한다. `미스김라일락'이라는 꽃이름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자료를 정리해주던 타자수의 한국 이름을 따서 `미스김'으로 부른 데서 시작됐다고 한다.
최백호 라는 중년의 가수가
낭만에 대하여 라는 노래를 부를 때면
나는 괜히 낭만주의가 생각나는 것이다.
생떼 같은 목숨들이 죽어가는 시절에도
때죽나무 하얀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나고
밤하늘의 별들을 헤아릴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낭만주의의 승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더러는 술이 떡이 되어
나앙~만에 대하여 라고 노래하는 순간
낭만의 모자를 쓴 낭만주의는
실패한 인생들의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곤 했다.
번다한 세상살이에서 낭만은 늘 지천덩어리였겠지만
석가나 예수라 한들 길가의 나무 그늘에 앉아
노을을 보며 노래 한 소절 부르지 않았을 것인가.
생각해 보면 낭만에 죄가 없듯
인생에 무슨 실패가 있을 것인가.
숲을 나는 저 하얀 나비들 중에도
실패한 인생이 따로 있을 것인가.
낭만도, 낭만주의도 벗겨놓고 보면
내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한 떼의 시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