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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형 히스테리에 대한 이해
히스테리(hysteria)란 정신적 원인으로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병적인 흥분 상태이다. 흔히 일시적인 심리적 불안이나 흥분상태를 보이고 국부의 신경마비나 경련 증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히스테리를 이해하기 위하여 우선 전형적인 한국 여성을 눈앞에 그려 본다. 순자는 태어날 때부터 말썽이었다. 첫 딸을 낳고 미역국을 사흘이나 못 먹은 어머니는 시부모 밑에서 낯을 못 들었다. 아버지는 출생신고도 미루었다. 순자는 물론 어머니 등에 업혀 자라났고 쌍방이 아무런 노력 없이 겉으로만 붙어살았다. 남동생이 생기고 순자가 밥상을 들게끔 되었을 때부터 동생을 돌보아야 했다. 그러나 밥은 으레 아버지 진지상이 물러 나온 후에야 부엌데기처럼 일만하는 어머니와 함께 먹었다. 다행히 학교에는 다니게 되었는데 학교에서는 계집애답게 얌전해야 했다. 얌전하다는 것은 웃지 않고 남을 피하는 것이다. 애교라는 것은 집안이 좋지 않은 애들이 하는 버릇이다. 순자가 중학교에 진학할 때에는 온 집안이 법석했고, 어머니는 간이 뒤집힌다고 했다. 성교육이라고 어머니한테 배운 것은 월경이 시작됐을 때, 다 그런 거라는 얘기를 들은 것뿐이다. 외박은 수학여행 때만 하는 것이고, 양가집 아이들은 해가져서 밖에 돌아다니는 법이 아니라고 배웠다. 아버지는 술 잘하고 외박도 가끔 하고 떠들어대는 것이 ‘사내’라고 여기고 있다. 남성들은 크면 기생집에도 출입하고 외도도 하는가 보다. 학교에서 행실 나쁜 애들이 속닥거리는 것이 뭣인지 순자는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한다. 월경 때면 순자는 우울해지고 짜증이 난다. 친구들하고 외국영화를 보러가기로 했으나 순자는 이북에 있다는 외삼촌과 낙산에 사는 외사촌을 생각해 본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던 부산 피난생활, 다시 그런 일이 되풀이 된다면 차라리 독약을 먹고 죽겠다고 생각한다. 올가을 방학에는 쌍까풀 수술을 할까? 대학에는 내 클럽 애들이 다 가는 약학과에 갈까? 하기는 싫지만 인기도 있고 잘 팔리기도 한다지 않나? 그렇지 않으면 미국에 갈까? 시집도 가야지. 중매로 가면 아마도 시집살이! 남편에게는 정숙해야지. 도둑이 들끓으니 집에는 철조망을 둘러치고 집을 토치카처럼 만들어야지. 만일 굶어 죽게 됐을 때, 남편이 도둑질하면 남편 따라 도둑질도 같이 해야지. 성적으로 남편이 무엇을 요구하든 여자는 그것에 따라야지. 여자는 송장이 되어도 시집에서 죽으란다. 음식은 양기 돕는 것을 가려야 한다. 첫애를 낳기 전까지는 성에 관한 농담도 해서는 안 된다. 순자는 성은 억제되어야 하고 한실도피, 의리와 체면, 자중하는 도덕을 지켜야 한다.
순자를 떠나서라도 한국사람, 더 나아가서는 동양인이 서양인과 다른 점은 무엇이며, 상반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구명해 보는 것은 히스테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이를 구명함으로써 창피함, 죄, 도덕적인 관념, 해리, 전환 등의 용어도 정신의학에서 사용되는 뜻을 넘어선 새로운 뜻이 드러날 것이다.
히스테리에 관하여 조홍건(옛날한의원 원장, 경원대 겸임교수)님의 조언을 들어보자.
우리가 흔히 히스테리라고 하면 여자가 공연히 신경질을 내고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고 또는 잘 울고 짜증을 내고 밥도 안 먹고 아프다고 누워있는 것으로만 여기고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물론 남자보다 감정이 예민한 여성에게 많지만, 진짜 히스테리는 남녀를 막론하고 걸리는 것이다. 히스테리가 여자에게 많은 이유는 여자의 정신구조와 사회적 입장과 가정 내에서의 위치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히스테리는 지능상에는 장애가 없으면서 심인성(心因性)으로 오는 기능적인 병이며, 심인이 주로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날 때를 전환형(轉換形) 신경증이라 하고, 주로 정신적인 증상으로 나타날 때를 해리형(解離型) 신경증이라 한다.
전환형(轉換型) 히스테리는 노이로제 중에서도 가장 원시적 형태의 병이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 깊이, 즉 무의식계에 눌려 있는 정신적 갈등이 그대로 표면으로 터져 나오지 못하고 다른 형태로 상징화(象徵化)되어서 신체증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히스테리 증상 역시 마음속에 감추어진 공격적인 마음이나 미운 감정에 대한 불안이 신체적인 증상을 형성함으로써 불안을 해소하려는 뜻이 담겨져 있기도 하고, 한편 질병을 통해 주위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모으고 동정을 받으려는 무의식적 시도이기도 하다.
19세기 후반에 프랑스의 유명한 신경의(神經醫) 샤르꼬는 히스테리라는 병은 남에게서 암시를 받아야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따라서 기질적인 병이 아닌 심리적인 병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히스테리는 심리적인 병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마음이 다르듯이 병의 증세도 달라진다. 그러나 아무리 다르다 해도 몇 가지로 크게 나눌 수는 있다.
심한 위기에 당면했을 때는 거미나 곰 같은 동물은 죽은 체한다. 사람도 너무 무섭고 놀랐을 때에는 도망치려 해도 사지가 말을 안 듣고 그 자리에서 굳어 버린다. 뿐만 아니라 목소리마저 안 나온다. 말하자면 가장 원시적이 방어방법인 의사반응(擬死反應)을 보이는 것이다.
히스테리에도 심한 감정적 위기에 당하면 갑자기 까무라쳐서 연극적인 경련발작을 일으키는 것이 있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이런 증세를 보이는 경우를 많이 본다. 갑자기 팔다리에 마비가 생겨서 움직이지 못하거나 또는 움직이기는 하지만 감각이 없어져서 자기 살 같지가 않다.
진짜로 신경에 병이 나서 마비가 생길 때에는 마비된 부위가 신경이 가는 위치에 일치되어서 마비되는 것이지만 히스테리의 경우는 마치 팔에 장갑을 끼거나 다리에 양말을 신었을 때처럼 신경이 지나가는 위치와는 관계없이 마비증상이 생기는 게 다르다. 환자 중엔 어제까지도 언어생활이 정상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는 수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목소리가 나오는 성대(聲帶)에 어떤 장애가 생긴 것이 아니고 히스테리로 인한 것이다.
눈알이나 눈 속 신경이 멀쩡한데도 장님같이 안 보이기도 하고, 또는 시계(視界)가 아주 좁아져서 마치 대나무 토막을 눈에다 대고 볼 때처럼 동그랗게 좁아지곤 한다.
우리가 흔히 신문지상을 통하여 종교집회에서 종교적인 감동으로 벙어리가 갑자기 말을 하게 되고 앉은뱅이가 걷게 되었다는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 기사를 보게 되는데, 그런 경우에는 정말로 신경에 탈이 나서 앉은뱅이가 되었다거나 도는 성대가 탈이 나서 벙어리가 된 사람이 아니라, 히스테리성으로 그렇게 된 사람이 종교적인 감동으로 병이 나았다는 말인 것이니 기적이 아니다.
또 이렇게 감동으로 말미암아 병이 즉석에서 낫는 사람은 대개 학력수준이 낮고 지능이 낮고 피 암시성이 높아서 남의 말을 잘 곧이듣는 사람에게 많이 나타나며 인텔리에게는 드물다. 이런 사람들의 성격은 대개 미숙해서 몸만 크고 나이만 먹었다 뿐이지, 인격 면으로 볼 때에는 어린애 같은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
어느 정신분석학자는 히스테리의 발병을 남의 관심을 자기에게 집중시키기 위해 발병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히스테리를 일으킨 환자의 심리상태를 분석해 보면 이 병의 특징 중의 하나로 항상 주위 사람들의 관심을 자기에게 집중시키고자 하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남의 집 잔치에 가서도 한 방안에 있는 사람들의 화제가 자기에게만 집중되기를 바라며 자기의 용모라든지 자기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훌륭하다든지 옷치레나 머리의 스타일이 예쁘다느니 자기 아이들이 똑똑하다는 식의 얘기를 남들이 해 주기를 바라며 그런 쪽으로 노력한다. 남의 관심과 동정심이 자기에게만 집중되기를 바라며, 남들이 모두 자기를 부러워하기만을 바란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도 무의식적으로 허영 • 사치 • 과장에 빠지게 되고, 따라서 남을 깎아내리려는 연극을 꾸미기에 바쁘다. 이런 심리를 <여왕의 심리>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다시 예를 들어 보면, 동생이 생겨서 부모들의 사랑이 자기에게서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이면, 히스테리의 성격이 강한 딸이 투정을 부리고, 오줌을 싸기도 하고 머리가 아프다고 밥도 잘 안 먹고, 이것저것 말썽을 부리기 시작하는 수가 있다. 그렇다고 의식적으로 일부러 하는 것은 결코 아닌 것이며, 이렇게 말썽을 일으킴으로 해서 부모들의 관심을 다시 자기에게 집중시켜 보겠다는 방어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또 하나 예를 들어 보자. 높은 빌딩을 짓는 공사장에서 자기의 실수로 떨어진 인부가 까무라쳐서 인사불성에 빠졌다. 병원을 데리고 가서 응급처치를 시킨 뒤 삼십 분 만에 의식을 회복되었지만, 그 후부터는 머리가 아프다, 다리가 떨려서 걸을 수 없다, 밥을 통 못 먹겠다, 잠을 잘 수가 없고 귓속에서 바람소리가 난다는 등 갖가지 증세를 호소하면서 자리에 누워 있게 된다. 병원에서 종합 진찰을 해 보아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본인은 무척 괴로워한다.
법정에서 재판을 받은 결과 상당한 액수의 위자료를 받고 나자 그 다음날 바로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병은 나아 버린다.
물론 전부가 고의성이 깃든 꾀병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외상성 신경증도 다분히 히스테리적이다.
또한 꾀병과의 한계가 분명치 않아지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무슨 범죄를 지어서 교도소에 갇혀 있든지 또는 정치적인 강제 수용소에 들어 있는 사람이 일으키는 구금반응(拘禁反應) 이라는 것이 있다. 처음에는 자기가 구금상태로부터 빠져 나가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병을 일으켜서 금방 숨이 막힐 것 같다는 협심증이나, 천식발작, 위경련 같은 병을 일으키다가 나중에는 크게 객혈(喀血)을 한다거나 또는 정신이 혼미해져서 흥분 광란을 하는 수도 있는데, 이것은 모두 정신적 원인으로 생긴 심인반응(心因反應)인 것이다. 즉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 하려는 목적으로 일으키는 연극 비슷한 것인데, 이런 사람도 일단 구금이 풀려서 자유로운 몸이 되면 병은 깨끗이 나아 버린다.
회사나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을 때 '감기에 걸리면 쉴 수 있다'는 무의식적인 소망이 작용하여 실제로 두통을 느끼게 된다. 또 때로는 눈이 보이지 않게 되고 팔다리가 마비되는 등의 극적인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불안이 신체적인 증상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20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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