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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따라서
안유환
부-웅, 덜컹 덜컹, 부-웅 부-웅, 덜컹 덜컹…….
오늘도 은정골에서 들려오는 포클레인 소리가 고요하던 마을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리며 골짜기에 공명되고 있다.
“은을 캐는지 금을 캐는지, 골짜기를 다 망가뜨리겠다.”
철구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학교를 세운다던데, 인근에 학교에 다닐 아이들이 있어야제.”
영미 할머니가 말을 받으며 손주 이야기를 꺼낸다.
“대체, 공부가 무언지. 그 애를 몇 년 만에 보는지 모르겠다.”
“누구? 서울서 공부한다는 손녀 말인가?”
“그래, 다음 달에 미야가 날 보러 온단다. 우리교회에서 추수감사절 예배도 드리고.”
“언젠가 미국에 간다더니만, 대학은 졸업을 했나?”
“졸업한지 3년이나 되는데 무슨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하는지. 즈그 아부지가 의사에게 시집보내려 해도 결혼 생각은 없는가바.”
툇마루에 마주앉아 마늘을 까며 나누는 두 노파의 얘기를 철구는 낫을 갈며 귀넘어듣고 있다. 얼마 전에도 할머니들이 영미의 혼담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철구는 며칠 동안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소꿉친구로 한마을에서 자라났지만 영미와 철구의 처지는 지금 하늘과 땅 차이만큼 멀게 느껴질 뿐이다. 철구는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않기로 다짐하면서도 영미의 결혼이야기만 들으면 마음이 달아오른다. 철구는 내일 벼베기를 위한 낫을 몇 자루 갈아놓고 지개를 지고 채마밭으로 나갔다. 한창 속통이 차오르고 있는 김장배추의 벌레를 잡아주기 위해서이다.
“올해는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벌레가 많은 것 같네.”
이웃집 김천 댁이 벌레를 잡아주다 철구를 보고 말했다.
“메뚜기도 많이 날아들지요.”
철구는 노랗게 알이 차오르는 배추를 짚으로 하나하나 묶어주고 있다. 요즘은 농약을 뿌리지 않기 때문인지 메뚜기들도 배추벌레 못지않게 배추를 뜯어 먹는다. 그러나 사라져가던 메뚜기들이 돌아온다는 것이 한편 반갑기도 했다.
“중호는 잘 있습니까?”
철구는 고등학교를 마치면서 직장을 얻어 부산으로 간 중호의 소식을 물었다.
“편지는 한차례 씩 보내오지만 늘 바쁜 모양이더라. 지난 추석에도 오지 못하고 설에나 볼 수 있겠지. 그런데 다음 달에는 영미네 식구들이 고향에 온다던데-.”
마을 사람들은 영미네 식구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만큼 영미 아버지도 고향마을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었다. 초등학교 까지만 해도 철구와 영미는 둘도 없는 친구로 지냈다. 마을 친구들로부터는 일학년 국어책에 나오는 ‘철수와 영희’로 놀림을 받았다. 영미 아버지는 수원에서 건축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철구 아버지는 마을에서 면서기로 근무했다. 철구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의 아버지는 온몸에 황달이 들어 고생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때부터 가세는 기울기 시작했다. 철구가 중학교를 마쳤을 때는 어느 날 철구 어머니마저 집을 나가고 말았다. 들리는 소문에는 철구 아버지와 함께 면사무소에 근무한 적이 있는 사람과 어디서 살림을 차렸다는 것이었다. 철구는 뜻밖에 고아가 되어 고등학교를 다 마치지도 못하고 이순을 넘긴 할머니와 함께 농사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영미와의 만남도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삼촌 집에서 할머니와 함께 지내던 영미는 대학교로 진학하면서 아버지가 있는 수원으로 합류했다. 어릴 적 영미는 자녀가 없는 삼촌 집에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때 철구는 영미를 따라 읍내교회에 자주 갔었다. 영미는 철구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일요일엔 교회로 데리고 갔다. 놀기 좋아하는 시골 아이들에게 십리길은 그렇게 먼 길이 아니었고 어떤 때는 영미 삼촌이 경운기로 교회에까지 태워다주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우면 영미는 교회에 가는 일이 많아졌다. 크리스마스이브 행사를 위해 연극과 노래와 율동을 연습하기 위함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크리스마스 이브 연극에서 영미의 역은 마리아였다.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어머니 모습으로 분장한 영미는 예수탄생을 알려주는 가브리엘 천사 역을 맡은 아이보다도 더욱 천사 같았다.
철구는 교회학교에서 성경이야기를 들으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골리앗과 싸워 이긴 다윗의 모습에서 믿음을 가지면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길에서 전쟁도 할 줄 모르고 무기도 부족했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을 이기게 만들어주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나 철구는 영미처럼 열심히 교회에 다닐 수 없었다. 철구는 1년에 두세 번은 절에 가서 제사를 지내야했다. 특별히 아들을 선호하던 옛날에 철구할머니는 딸 형제 다섯의 맏이였다. 동생들이 출가하고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할머니는 친정 부모님 위패를 장성마을의 절에 모셨다. 며느리가 집을 나간 뒤 철구할머니는 아들의 제사까지 절에서 지내야 했다. 사월초파일이나 동지에도 철구는 할머니를 따라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철구야, 절을 많이 해야 복도 받고 네 아버지도 좋아할 것이다.”
철구는 언제나 할머니 보다 절을 많이 했다. 그 복이란 것을 마음껏 받아보고 싶었다. 공부도 많이 하고 좋은 옷도 입어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할머니 친구들은 철구를 볼 때마다 ‘요즘 아이들 같지 않다’며 칭찬했다. 언제나 할머니를 잘 모시고 말씀도 잘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물려준 밭이나 논을 한 자락 씩 팔아야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철구가 장성하여 점점 농사일에 익숙해지면서 마을 사람들과 품앗이도 하며 가정을 꾸려갈 수 있었다. 철구네 집의 어렵던 가정형편도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철구와 영미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던 봄, 동구 밖 영미네 밭에서 집터를 닦는 것을 보고 마을에서는 말이 많았다.
“영미네 밭에 교회가 들어선다고 하네.”
“해봐야 헛고생이지. 이 마을에 영미 삼촌네 말고 교회에 나갈 사람이 누가 있다고.”
철구할머니를 비롯한 몇몇 마을사람들은 까닭 없이 교회를 비방하고 ‘예수쟁이’들을 마치 장터의 약장사처럼 생각했다. 살기 바쁜 마을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나 두어달 만에 슬레이트 지붕 교회는 완성되고 종소리가 마을에 울려 퍼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목사인 영미 이모부가 영미 아버지와 힘을 모아 장성마을 전도를 위해 교회를 세웠다는 것이었다.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은 영미 삼촌식구를 제외하면 모두가 어린 아이들 뿐이었다. 차츰 초등학생들이 주축을 이루고 마을에 열 명도 되지 않은 중고등학생들도 틈만 나면 교회로 몰려들었다. 교회는 마을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여름성경학교가 시작되면 교회당에서는 영화상영도 했다. 교회를 비방하던 사람들도 영화구경을 하러 발걸음을 하면서 차츰 교회를 이해하게 되었다. 어른들은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서도 자녀들은 보고 듣고 배울 것이 많다면서 주일학교로 보냈다. 한때는 할머니와 함께 절에 열심하던 철구는 영미와 가까이 지내면서 교회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철구는 늘 토요일이 기다려졌다. 토요일 오후엔 영미와 함께 예배당 안팎을 말끔히 청소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청소가 끝나면 영미에게 풍금 타는 법을 배웠다. 생각보다 풍금은 어렵지 않았다. 영희와 함께 찬송을 부르고 때로는 우리 가곡을 노래했다. 철구가 교회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는 반사가 되고나서는 12월만 되면 바빠지기 시작했다. 성탄절 준비는 교회의 큰 행사였다. 영미와 함께 서너 명의 반사들이 아이들을 불러 연극 연습을 시키고 노래를 가르치느라 예배당에서 풍금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소품준비를 하다 밤이 깊어지면 반사들은 사택 방에서 함께 잠을 잤고,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도 있었다. 크리스마스에는 이웃 마을의 아가씨들이 구경하러 교회로 몰려들면서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도 한두 명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철구할머니도 영미 할머니를 따라 차츰 교회에 발걸음을 하기 시작했다. 먼저 믿은 손자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학생인 총각 전도사는 월요일 새벽이면 일찍 D시에 있는 신학교로 출발했다. 새벽기도회와 수요예배는 영미 삼촌이 인도했지만 어떤 때는 철구가 하루씩 맡아 대신할 때도 있었다.
“배 선생은 흡사 전도사님 같아.”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고 나면 여집사들은 은혜 받았다면서 철구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미 삼촌과 숙모는 더욱 그랬다. 영미가 교회를 떠난 뒤에는 철구가 풍금반주를 하며 예배를 드렸다. 철구는 믿음이 자라나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싶었고 방언이란 것도 체험해보고 싶었다. 성령이 충만하면 전도사님처럼 말씀도 잘 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는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사람들이 많았다. 철구는 교회에 출석하고 6개월이 지나 학습을 받았고 다시 6개월이 지나면 세례를 받도록 되어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아 철구는 세례 받는 것을 미루어 왔었다. 전도사의 권유로 이듬해 부활절에 철구는 세례를 받기로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세례를 받을 때는 꼭 성령 충만함을 받고 싶었다. 철구는 종려주일이 지난 월요일 읍내로 나가 이발을 하고 깨끗이 목욕을 했다. 다음 주일 당회장 목사가 순방할 때 세례를 받도록 준비를 한 것이다. 철구는 하루 일을 마치고 밤이 되면 어김없이 교회당에서 하루 한 두 시간씩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봄철 농번기가 시작되고 못자리 준비도 하며 논을 갈고 밭을 갈며 바쁜 때가 되었기에 평소 몇 사람씩 기도하던 교회당은 비어있을 때가 많았다. 철구는 꼭 성령 충만함을 받고 마음속의 ‘음욕’도 말끔히 청산하고 싶었다. 영미 생각을 하다 몽정으로 잠자리가 축축하게 되던 일에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수요예배를 마치고 사람들이 돌아가고 나서 철구는 혼자서 철야기도를 시작했다. 사흘 밤을 자정을 넘기기 까지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 제목은 오직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이었다.
첫날에는 세리와 죄인의 기도를 생각하며 맨 뒷자리에 엎드려 기도했다. 그 다음날은 가운데 자리에서 밤이 맞도록 기도했다. 찬송을 부르기도 하며 지난날의 온갖 죄들을 고백했다. 친구들을 욕하며 싸웠던 일도 모두 죄로 보였다. 셋째 날은 강대상 앞에 다가가서 기도했다. 철구는 전도사가 기도하던 모습을 따라 해보고 싶었다. 그래도 마음은 뜨거워지지 않았다. 철구는 강대상 의자에 엎디어 기도하면 마음이 뜨거워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가운데 의자에 꿇어 엎드려 눈물을 짜내며 기도하고 고개를 들어 두 손을 펴고 외쳤다. 간구하는 자에게, 찾는 자에게 응답하신다는 말씀을 기억하며-. 세례를 받는 날 집례목사의 손이 머리에 얹힐 때는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호흡을 멈추기까지 하면서 은혜를 사모했지만 특별한 경험은 하지 못했다. 세례 받을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을 금치 못하는 일이 있다. 그해 가을 세례식 때는 이웃 마을 아가씨들이 세례문답을 했다. 철구와 영미는 사택 방 문밖에서 당회장 목사가 어떤 질문을 하는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목사는 먼저 아가씨들의 인적사항을 확인했다. 그리고 몇 가지 질문과 함께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예수를 믿겠느냐’고 물었다. 모두가 ‘예’라고 대답하자 한 가지 더 질문을 했다.
“지옥이 어떤 곳입니까?”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목사는 누구라도 대답해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아가씨가 대답했다.
“지옥은 뜨뜨 미지근한 곳입니다.”
아마 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차지도 더웁지도 않은 모습’ 때문에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다는 말씀이 생각났던 것 같다.
“그렇다면 지옥이 참으로 지내기 좋을 만한 곳이겠네요. 하하하.”
목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며 지옥은 구더기도 죽지 않는 불구덩이라는 것을 설명해주었다. 철구는 바르고 정직하게 사는 것을 신앙생활로 보았지만 예수 믿는 것은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 가장 큰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구는 채마밭에서 돌아오는 길에 4~5년 전의 일을 생각하며 잠시 팽나무 그늘에 앉았다. 장성마을에는 지난해 가을부터 포클레인 소리가 은정골 둔덕에서 들려오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어떤 집을 짓는지 확실히 모르고 있었다. 이른 아침 트럭을 타고 온 낯선 장정들 몇 사람이 종일 일하다가 저녁때가 되면 타고 왔던 차로 돌아갔다. 얼굴이 익은 사람이라면 어쩌다 영미 삼촌이 한 번씩 눈에 띄는 것이었다. 10년 전 교회당이 세워질 때와는 사정이 달랐다. 처음 공사가 시작될 때 둔덕을 지나던 사람들은 철근이 가득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얼마 후에는 레미콘 트럭이 분주히 왕래했다. 누가 그 건물을 짓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을에는 학교를 짓는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인근 마을 아이들까지 다 합해도 한 학급도 되지 않을 텐데 학교를 짓는 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공사는 금년 말을 준공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미가 대학입시 발표를 보고 마을에 들렸던 날 밤에도 철구와 영미는 팽나무 아래 나란히 앉아 밝은 달을 쳐다보며 얘기를 나누었다. 영미는 그가 읽었던 책들을 철구에게 전해줄 때가 많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제롬을 사랑하고 있는 알리사는 그의 일기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주여, 당신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둘이서 나란히 걸어가기에는 너무도 좁은 길입니다.” 두 주인공의 모습에서 철구는 자기를 보는 것 같았다. 영미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은 영미와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결혼은 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철구는 영미와 같은 하늘아래서 함께 호흡하며 살고 싶었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따로 떨어져 살던 남녀가 손잡고 나란히 한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마치 결혼식 때 주례자 앞에 나란히 선 신랑신부처럼. 그러나 철구는 멀리서 영미를 바라볼 수 있으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때 철구가 영미네 집에 가서 함께 공부할 때는 영미는 크레파스로 그림을 잘 그렸다. 배경은 오래전 은을 캔 적이 있다는 은정골 둔덕이 등장할 때가 많았다. 은정골은 초중등학교의 봄 가을 소풍장소로도 자주 이용되었다. 영미는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것처럼 삼각 지붕에 빨간 색을 칠하고 마당 한쪽엔 하얀 오리가 놀고 있는 둥그런 연못을 그렸다. 그 옆으로는 비단옷에 박힌 무늬처럼 화단을 만들고 예쁜 꽃을 피웠다. 나무에는 새들이 앉아있고 집 앞 언덕에는 노란 개나리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떤 때는 하얀 집 담장에 빨갛게 어우러진 줄장미를 그리기도 했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둥실 떠있는 그림 같은 집을 보며 철구는 에덴동산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림 속엔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늘 새로운 그림을 그려내는 영미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재미있을 것 같은 생각을 하며 철구는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영미가 떠나던 날 전해준 편지에는 ‘네 할머니를 우리 할머니로 모시고 싶다’는 말도 들어 있었다. 철구는 처음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으나 그 후 몇 차례 영미의 편지를 받으면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경험했다. 그럴수록 철구는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철구는 좋은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성자처럼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구는 오랫동안 자기를 괴롭히는 육신의 정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철구는 하나님이 자기를 선택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나님이 그를 선택하셨다면 성자처럼 정결하게 살게 해달라는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몽정으로 인해 죄책감에 시달릴 때가 많았다. 철구는 오래도록 망설이다 어느 주일 오후 전도사의 방문을 노크했다. 개켜놓은 이불에 기대어 쉬고 있던 전도사는 일어나 앉으며 철구를 반갑게 맞았다.
“배 선생님, 웬 일이세요?”
“전도사님, 하나님의 선택이란 어떤 것인가요?”
철구는 단도직입적으로 궁금한 점을 털어놓았다.
“저는 예수를 믿으면 마음은 선해지고 아름다운 생각이 가득하며 성도, 그야말로 거룩한 무리가운데 한사람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그렇지요.”
전도사는 철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런데 저의 경우는 다른 것 같아요. 갈수록 마음은 더욱 추해지고 악한 생각이 나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교인들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을 때가 많지만 그럴수록 저의 마음은 더욱 부끄러워집니다. 마치 저는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모습입니다.”
철구는 오랜 고민의 보따리를 풀었다.
“전도사인 저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한때는 지금의 배 선생님처럼 그렇게 마음이 답답하고 낙심이 되었지요. 저는 성경말씀에서 자유와 평안을 얻었습니다.”
전도사는 로마서7장을 펴고 15절부터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의 행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전도사는 여기에서 일단 멈추었다. 사람들이 들으면 얼핏 궤변처럼 들릴 것이지만 철구는 내가 원하는 것은 하지 아니하고 원치 않는 것, 내가 미워하는 그것을 한다는 말씀이 귀에 들어왔다. 철구는 그런 말씀을 하는 바울이 자기와 꼭 같은 생각을 하며 고민한 것으로 보였다. 전도사는 바울의 고백을 차근차근 풀어서 설명해주었다.
“우리 속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악하고 추한 생각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지요.”
철구는 읍내교회에서 처음 받았던 빨간 전도지 ‘박 군의 심정’을 떠올렸다. 보통사람을 상징하는 박 군의 가슴 속에는 여우, 뱀, 돼지, 호랑이, 공작 등 교활하고 더럽고 사나울 뿐만 아니라 공작새처럼 자기를 뽐내는 마음들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이런 추한 것들은 다 쫓겨나고 구원받은 기쁨이 넘쳐난다고 하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전도사는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죄가 하는 짓’이라고 설명했다.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악이 함께 있으며 그럼에도 우리마음은 선을 행하면서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 그것이 ‘선한 싸움’이라고 말했다. 철구는 사람이 천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예쁜 여자를 볼 때마다 아랫도리가 뻣뻣해지고 잠자리에서는 꿈을 꾸다 팬티가 젖는 것도 혈기가 왕성한 젊은이에게 나타나는 건강의 증좌이며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철구는 마을의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다는 어릴 적부터 교회를 중심으로 생활하면서 ‘거룩한 것’만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바울은 고백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온 것은 인간이 죄를 지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란 것을 철구는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죄악에서 자유로워지려는 선과 악의 갈등은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철구는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평안을 맛보았다. 어깨는 가벼워지고 자유로운 마음에는 한없는 기쁨과 감사로 채워졌다. 철구는 집에 돌아와서도 그 말씀을 여러 번 읽어보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설명이 필요 없고 그대로 이해되었다. 철구는 대사도인 바울도 그와 같은 마음의 갈등을 겪으면서 예수의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다. 암을 두려워하거나 싫어하면 더욱 악화되지만 암을 친구처럼 생각하면 오히려 암의 고통에서 해방을 받게 된다고 투병 자들은 말한다. 철구는 죄에 대한 갈등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자 악하고 추한 생각은 더 이상 그를 괴롭히지 못했다. 철구는 이 모든 것을 성령의 깨우침으로 받아들였다.
철구는 미워지고 싫어지는 사람에게도 이와 같은 자세로 대하면서 이웃을 사랑하는 자리에 까지 나아가게 된 것이다. 철구는 낮에 고된 농사일을 하고 나서도 교회의 새벽종을 치며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젊은이가 힘이 빠지고 지친다는 것은 육체적인 노동보다는 정신적 갈등 때문이었다. 철구는 정신적 갈등에서 자유로워지자 더 너그러워질 수 있었고 더 오래 참을 수도 있었다. 실수하고 잘못된 일도 그것이 연약한 인간의 모습이라 생각하면 자책보다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기도하면 더 큰 꿈이 생겼다. 뭔가 더 배워보고 싶은 욕망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것이 방송통신대학 공부를 시작하게 만들었다. 더욱 많이 배워서 대처로 나가 영미가 호흡하는 하늘의 공기를 마음껏 호흡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여름 영미가 선물한 포레의 ‘꿈을 따라서’ 클래식 테이프를 들으며 꿈을 키워갔다. 철구는 그 음악의 노랫말인 로멘 뷔시느의 시를 때때로 암송하곤 했다.
“그리워 어여쁜 그님의 자태/ 나 홀로 꿈속에서 만나보니/ 정이 피어나는 빛나는 그 눈동자/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과 같구나/ 아, 정다운 그님의 목소리 날 오라 부르네/ 신비를 머금은 그 밤은 벌써 지나고 동녘은 훤히 밝아 온다/ 아, 애달픈 꿈이여 깨지 말고 다시 한 번/ 깨지 말고 그 꿈속을 다시 걷고 싶어라”
들판의 벼 베기는 거의 끝났고 일찍 추수를 한 집은 짚으로 이엉을 이어 마을의 지붕들은 온통 노랗게 크레용을 칠한 것 같았다. 잎이진 감나무에 달린 붉은 감은 흡사 달력에 나오는 사진처럼 아름다웠다. 철구는 토요일 오후에 교회당 청소를 하러나왔다. 영미숙모는 내일 추수감사절 강대상 장식을 위해 쑥부쟁이, 구절초, 억새꽃과 목피를 오브제로 꽃꽂이를 하고 있었다. 교회화단에는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고 과꽃과 채송화도 가득피어 있었다. 종탑 아래 담벼락에는 수국이 영미의 얼굴처럼 달아오르고 있었다. 철구는 농번기로 인해 손질하지 못했던 교회 마당을 구석구석 정돈했다. 빗물이 흘러내린 예배당 내벽은 긁어내고 흰 페인트칠을 했다. 40평의 교회가 들어선 500여 평의 부지에 재작년에는 사택도 따로 지었지만 마당은 아직 넓은 편이다.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여자아이들은 줄넘기를 하거나 땅따먹기 놀이를 하기에는 충분하다. 울타리 아래 잡초들을 뽑고 마당에 물을 뿌렸다.
영미 숙모는 저녁을 지으러 돌아갔지만 철구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강대상 벽면의 검은 휘장에 추수 감사절 글자를 붙여야 했다. 습기 찬 벽장에서 꺼낸 상자에는 해마다 쓰던 여름성경학교 글자판이 성탄절 트리 장식과 함께 엉겨있었다. 추수감사절 글자판은 영미와 함께 오려붙인 것이었기에 이제는 마치 헌옷처럼 낡았다. 흰색의 부활절 글자판은 곰팡이가 슬어있다. 철구는 저녁식사 시간도 잊고 혼자서 글자를 오렸다. 마을 사람들은 손재주가 많은 철구에게 늘 고마워했다. 전기가 고장 나거나 보일러 작동이 잘 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읍내 수리공을 부르기 전에 철구에게 말했고 그는 한걸음에 달려가 고장 난 것을 고쳐주었던 것이다. 철구는 ‘추수감사절’ 글자를 새롭게 오리고 빨강, 주황, 노랑, 초록, 그리고 파란색 크레파스로 글자마다 색깔을 달리하고 진한 남색으로 글자 테두리를 했다. 흰색 마분지로는 ‘1982년 11월 21일’을 새겨 붙였다. 전등불빛 아래 강대상에는 마치 무지개가 떠오른 것 같았다. 내일 모레가 소설이지만 날씨는 봄 날씨처럼 포근하다.
저녁이 되자 성도들이 모여들었다. 내일 주일에 아이들에게 나눠줄 고구마를 삶고 올해는 특별히 읍내에서 떡을 주문했다고 한다. 영미 삼촌은 교회에서 사용할 밀감과 사과를 사왔고 떡은 내일 아침에 배달된다고 했다. 이 모든 특별한 준비는 영미네 식구들을 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교인들은 영미 아버지가 때때로 고향교회에 특별헌금을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오래도록 마룻바닥에 앉아 불편하게 예배했는데 어느 해 영미 아버지가 예배용 의자를 넣어 주었다. 처음 생각은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를 생각한 것이었지만 그것은 온 교인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 일이 되었다. 영미 할머니는 아들자랑을 할만도 하지만 교회에서는 기도의 어머니로 통했고 마을 사람들을 온유하고 겸손하게 대함으로 칭송을 받고 있었다.
지난해 새로 부임한 황전도사의 꿈은 교육관을 세우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예배를 드리고 나면 교회당에서 바로 쫓겨나는 것이 안타까웠다. 성경공부도하고 다른 놀이도 하며 아이들이 교회에 재미 붙일 곳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멀리 떨어진 마을의 아이들도 교회로 찾아올 것이었다. 황전도사가 부임하여 처음으로 맞은 여름성경학교를 개최할 때는 그를 파송한 교회의 청년들 7~8명이 이웃마을에 까지 포스터를 그려 붙이고 핸드마이크를 들고 동네를 돌면서 아이들을 모았다. 푸짐한 선물을 준비하고 교회의 이름이 새겨진 러닝셔츠도 하나씩 나누어 입혔다. 황전도사의 기도제목은 어린 아이들뿐만 아니라 마을 어른들까지 모두 교회에 출석 하도록, 장성마을 영혼들을 다 구원하려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영미는 이러한 교회의 동정을 삼촌과 숙모를 통해 하나하나 다 알고 있었고 교회의 기도제목을 기억하며 함께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영미는 철구의 교회생활에도 관심을 떼지 않았고 철구는 그야말로 교회와 마을의 기둥이 될 재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까지 철구는 한눈팔지 않고 교회와 가정을 지켜왔다. 영미는 어린 시절을 삼촌 집에서 살았기 때문인지 할머니 성품을 많이 닮았다. 서울에서 공부하는 부잣집 딸이지만 마을 친구들에게는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주일학교 아침 예배를 마친 아이들이 마당으로 몰려나왔다. 아이들 손에는 밀감과 층층이 색깔이 들어간 고운 떡이 한 개씩 쥐어져 있었다. 영미 할머니와 철구 할머니는 일찍이 교회로 나와 부엌에서 일하는 여집사들을 보며 그 수고를 치하했다. 영미 삼촌은 경운기로 마을 노인들을 모시고 왔다. 이제 마을 사람들에게는 교회가 낯선 곳이 아니었다. 해마다 성탄절에는 어김없이 교회로 몰려와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연극과 노래를 보고 들었다. 부활절에는 예쁘게 포장한 달걀을 온 마을에 나누었다. 집집마다 있는 달걀이지만 색깔을 칠한 부활절 달걀을 받는 것은 새로운 선물을 받는 기분이었고 교회와 점점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영미네 식구는 고향을 떠나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장성마을에 있었다. 박 사장으로 통하는 영미 아버지는 봄철과 가을에 한차례 씩 마을 어른들을 대접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추수를 끝낸 집이 많았으므로 한가한 마을 사람들은 교회로 몰려들었다. 영미 삼촌과 숙모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오늘 추수감사절에는 박 사장이 온다는 소식을 알렸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은 영미네 식구들을 위해 특별히 해주는 것 없이 늘 빚진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예배당에 한번 자리를 같이 해주는 것으로 마음의 빚을 갚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철구와 다른 반사들은 아이들이 어지른 교회당을 쓸고 놀이를 하느라 밀쳐놓았던 의자를 제자리로 정돈했다. 그리고 철구는 풍금을 타기 시작했다. 추수감사절의 찬송가는 대체로 우리가락을 닮아 찬송가를 잘 모르는 마을 사람들에게도 흥겹게 들렸다.
교회 마당에는 검은색 승용차가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마당에서 뛰놀던 아이들이 신기하다는 듯 환호하며 승용차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영미는 차창을 내리고 아이들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와-, 영미 누나다!”
영미는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몇 차례 여름성경학교를 도우러 왔기 때문에 중학생들은 물론 초등학생들까지 영미를 모르는 아이들은 없었다. 영미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를 듣고 황전도사가 사택에서 나와 영미네 식구들을 맞이했다. 비포장도로를 달려온 승용차에는 뽀얀 먼지가 쌓여 있었다.
“박 장로님, 반갑습니다.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전도사님, 수고 많으시지요.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잠시 사택으로 드시지요.”
영미 어머니는 갖고 온 선물 꾸러미를 전도사에게 건네주고 영미네 식구들은 바로 교회당으로 들어갔다. 마을 사람들이 의자에서 일어나 박 사장과 인사를 나누었다. 철구도 현관으로 나와 정중히 인사를 했고 환한 웃음으로 영미를 맞았다.
“영철이는 왜 안보입니까?”
철구가 영미어머니께 물었다.
“이번 가을학기부터 미국에 갔어.”
영미가 대답을 대신했다. 지난해 여름방학 때 영미와 영철이는 어학연수를 위해 함께 미국에 다녀왔다. 그때부터 영철이는 미국에서 공부할 마음을 굳혔으나 영미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농촌에 더욱 관심이 많았다. 교회당 안은 부흥회를 개최할 때처럼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의자에는 대부분 마을 사람들이 앉게 하고 교인들은 강대상 앞과 통로에 방석을 깔고 앉아 예배를 드렸다. 전도사님은 청교도의 추수감사절을 쉽게 설명하며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린 그들의 신앙과 하나님의 축복을 설교했다. 설교다음에 영미네 가족의 특송이 있었다. 그리고 영미의 독창으로 이어졌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1.2절후에 간주에 이어 3절이 이어졌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영광나라 계신 임금 우리구주 예수라’
끊어질 듯 높은 음이 가늘고 곱게 이어질 때는 사람들은 침을 삼키며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마을 어른들은 잘 알아듣지는 못하면서도 숙연해지고 가슴엔 무엇이 꿈틀거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예배 후에는 의자를 벽 쪽으로 밀어붙이고 식탁이 차려졌다. 올해 추수감사절은 그야말로 온 마을의 축제 같았다. 처음으로 교회에 발걸음을 한 이들은 교회가 이처럼 흥겨운 자리인줄은 미처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철구와 영미는 그날 저녁 팽나무 아래 나란히 앉았다. 영미의 꿈은 항상 고향마을에 있었고 그 중심에는 철구가 있었다. 유학을 떠나면 철구와는 영원히 멀어질 것 같았기에 영미는 미국행을 포기하고 대학원에서 한국농촌의 미래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영미는 마음에 품고 있던 얘기를 속 시원히 철구 앞에 다 꺼내놓고 싶었으나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다. 평소에는 영미가 많은 말을 했고 철구는 조용히 듣는 편이었다. 철구는 자기의 꿈을 얘기할 처지가 못 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철구가 말을 계속했다. 그동안영미의 형편을 자세히 묻기도 하고 영철이의 미래에 대해서도 관심을 나타냈다. 영미는 요즘 도회인들이 차츰 농촌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철구 얘기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어쩌다 시골을 여행하거나 잠시 방문하는 사람들은 김매고 농사짓는 모습, 땀을 닦으며 먼 하늘을 바라보는 농부들의 모습을 하나의 낭만으로 생각한다. 그러한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 시골 사람들에게 얼마나 모멸감을 주고, 고통을 더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영미는 알고 있었다. 오랜만에 철구를 만난 영미는 그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는 것이 더 좋았다.
“방송통신대학이라는 거 있잖아.”
철구는 새벽종을 치고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방송통신대학과정을 공부해왔다는 것을 마침내 영미에게 털어놓았다. 철구의 배움에 대한 불타는 마음은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고 있었다.
“그럼, 교수진이 대부분 S대 교수들로 구성되어 있지, 유익한 과목도 많고.”
“난 그중에서 행정학을 공부하고 있어. 좀 까다로운 면도 있지만 조금씩 배워보니 참 재미가 있더라고.”
철구에게 가장 목마른 것은 영미처럼 마음껏 배우는 것 이었다. 지긋지긋한 농사일에서 벗어나 아버지처럼 면서기를 하든 지 공무원이 되었으면 싶었다. 친구들 중 어떤 이는 대학에 들어가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형편이면 도회에 직장을 얻어 마을을 떠났기 때문에 철구는 스스로 보기에도 늘 낙오자처럼 생각되었던 것이다. 철구가 방송통신대학 공부를 시작한 것은 영미가 이 마을을 떠난 이듬해부터였다.
“영미야, 나는 이 마을을 벗어나고 싶어.”
영미는 가슴이 철렁했다. 철구의 한마디는 어디선가 갑자기 큰 벼락이 울리는 것 같았다.그의 말은 너무도 뜻밖이었다. 사랑이 깨어지는 소리가 있다면 그런 소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고향마을로 향하던 영미의 마음은 길을 더듬고 있었다. 영미는 어둠 속에서도 철구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녀는 세상 끝날 까지 함께 걸어갈 영원한 친구를 떠나보내는 플랫폼에 서있는 것 같았다.
“············.”
철구의 말을 듣고 영미는 중심을 잃을 만큼 놀랐지만 마음을 진정시켰다. 왜냐하면 철구는 오늘까지 농촌을 지켜왔고 이 마을, 이 교회의 기둥으로 생각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래의 동반자! 영미는 그런 내색은 않고 달빛그늘아래 어슴푸레한 철구의 얼굴을 응시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영미의 가슴은 둑이 터진 댐의 물이 빠져나가듯 허전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철구를 생각하며 유학의 꿈도 접었다. 영미는 둔덕에 건축되고 있는 학교가 금년 말로 완공되면 자기가 대안학교 책임자로 오도록 되어 있다는 말을 차마 꺼낼 수 없었다.
“영미가 숨 쉬고 있는 도회의 공기를 나도 함께 마음껏 호흡하고 싶어.”
이것은 오래도록 철구의 가슴에 담아온 고백이었다. 그는 도회로 나가는 것이, 생활형편이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지는 것이 영미에게로 한걸음 더 다가서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꿈을 갖는 것은 귀한 일이야.”
영미는 철구의 꿈을 차마 꺾을 수 없었다. 모처럼 그의 용기를 북돋아주고 싶을 뿐이었다. 높이 날아오르던 아름답고 짙푸른 영미의 꿈들은 비누방울처럼 하나하나 꺼져갔다. 철구는 다음 말을 기다렸으나 영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사이를 비집고 귀뚜라미 소리가 밀물처럼 흘러들었다. 영미는 수년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고향마을에 청소년들의 꿈을 키우는 학교를 세우고 싶었다. 재작년에는 오래전 대안학교의 본산인 영국에 유학하고 돌아온 아버지 친구와 연결이 되면서 영미의 뜻은 현실로 나타나게 되었다. 영미는 어릴 적 은정골 둔덕을 즐겨 그리던 그림을 떠올렸으나 끝내 대안학교에 대한 꿈은 털어놓지 못했다. 영미의 침묵에 철구도 말없이 차가운 달빛만을 헤아리고 있다.
“영미야-, 영미야-”
늦은 밤 딸을 찾아 나선 어머니의 목소리가 마을 쪽에서부터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