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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분량으로 원문과 함께 번역을 시도한 <자치통감>의 3권을 흥미롭게 읽어냈다. 3권에서는 한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한무제 이후 원제와 성제 등의 치세로 시작되고 있다. 흉노에게 시집을 가야만 했던 왕소군의 일화가 각종 야사에서는 안타까운 사연으로 치장되어 잇지만, 이 책에서는 그저 담담하게 다양한 사건 가운데 하나로 취급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성제의 후궁으로 황후에 오르기까지 했던 조비연 자매에 대한 내용도 야사에서는 흥미 위주의 내용들로 채워져 있으나, 사마광은 당시의 기록을 토대로 객관적인 내용으로 기술하고 있다. 때로는 사마광 자신이나 반고 등의 평을 덧붙이고 있기는 하지만, 특정 인물의 행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제왕과 그들을 보좌하는 신하들의 권력에 대한 관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한나라를 전한과 후한으로 구분하는 기점으로 잡고 있는 왕망의 치세가 3권에서는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권력 기반이 약했던 한평제의 외척으로 다양한 수법으로 민심을 얻고자 했지만, 마침내 신나라를 내세우며 황제로 등극하며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했던 면모를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인심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각지에서 반기를 들고 군사를 일으키자, 끝내 반군에 의해 살해당하는 처지에 놓였던 것이다. 권력을 잡기 이전에는 온갖 언사로주변 사람들을 현혹시켰다가, 정작 권력에 오른 후에는 자의적으로 농단하는 현대 정치인들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왕망의 사례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권력을 농단한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된다는 역사의 교훈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겠다.
그동안 중국사에서는 왕망의 존재를 단순하게 기술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권력을 잡는 모습과 패망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잇다는 점도 특징이라고 이해된다. 아마도 권력의 본질은 그것을 휘두르는 것에 있지 않고, 민심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는 관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 해석된다. 또한 왕망을 대신하여 다양한 인물들이 한나라의 후예를 자처하며 황제를 칭했지만, 사마광은 그 정통을 후한의 광무제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게 여겨졌다. 수많은 군웅들이 할거하는 가운데 천하의 민심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광무제의 등극 과정이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으며, 결국 정통성을 인정받은 그의 치세는 4권의 내용으로 이어질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역사의 기록은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거울이라는 점에서 <자치통감>이 지니는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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