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이름들, 여성 독립운동가 2백여 명 있었다
MBC | 오유림 yroh@mbc.co.kr | 입력 2015.08.10. 21:17 | 수정 2015.08.10. 21:49
[
뉴스데스크]
◀ 앵커 ▶
조국의 광복을 위해서 젊음과 목숨을 기꺼이 바친 독립운동가 중에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광복 70주년을 계기로 잊혀졌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오유림 기자입니다.
◀ 리포트 ▶
한발에 한 명씩 일본군을 저격하는 명사수,
영화 '암살'의 전지현은 독립군 저격수로 등장합니다.
여성은 단순히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게 고작이었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무장 투장에 참여한 여성도 적지 않았습니다.
실제 '여자 안중근'으로 불리는 남자현 여사는 주 만주국 일본 전권대사를 암살하려다 붙잡히기도 했습니다.
[김희곤 교수]
"독립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손가락 두 마디 자른 것을 (혈서와) 함께 넣어서 조사 단장에게 보냈지만.."
1만 3천여 명의 독립 유공자 가운데 여성은 2백여 명, 이들의 삶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는 연락책으로 10여 년간 활동했던 정정화 여사는 무대 위에서 되살아났고,
서대문 형무소에는 여성독립운동가 266명의 이름을 내건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엄의식/서울시 복지정책과장]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발굴작업이 더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서울 탑골공원에서는 여고생들이 중심이 돼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플래시몹이 펼쳐졌고, 여성독립운동가 260여 명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인명사전이 발간도 준비되고 있습니다.
남자들 못지 않게 치열했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독립운동가의 투쟁사가 새로 조명되고 있습니다.
MBC뉴스 오유림입니다.
(오유림 yroh@mbc.co.kr)
-----------------------------------------------------------------------
남자현 : 만주국 일본 전권대사를 암살하려다 체포되었는데 독립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손가락 두 마디 자른 것을 (혈서와) 함께 넣어서 조사 단장에게 보냈다.
정경화 :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는 연락책으로 10여 년간 활동
남자현(南慈賢, 1872~1933)
독립운동가
1. 개설
본관은 영양(英陽). 경상북도 영양 출신. 통정대부 정한(廷漢)의 딸이다. 만주에서 독립운동과 여성계몽운동에 주력했다.
19세에 1890년(고종 27) 김영주(金永周)와 결혼했다. 1896년 남편이 의병에 가담하여 일본군과 싸우다 죽자, 유복자를 기르면서 시부모를 모셨다. 1905년(광무 9) 을사조약 이후에는 의병으로 활동한 아버지 정한을 도와 장정을 모으고 정보를 수집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주로 망명하여,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부상을 입은 투사들을 간호하는 한편 독립군의 간부를 추천했다. 1921년 지린성(吉林省) 어무현(額穆縣)으로 가서 12군데에 교회를 건립하고 10개의 여성교육회를 조직해, 독립운동과 여성계몽에 주력했다.
2, 생애 및 활동사항
1919년 만주로 망명하여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서 활약하는 한편,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각 단체와 군사기관, 농어촌을 순회하면서 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동만주 12곳에 교회와 예배당을 세워 전도하였으며, 10여 곳에 여자교육회를 설립해 여성을 계몽하는 데도 힘썼다.
또한, 남만주 각지를 순회하면서 동포간의 단합과 군자금 모집을 위하여 활약하였다. 1925년 채찬(蔡燦)·이청산(李靑山, 박청산) 등과 국내에 잠입하여 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를 암살할 것을 계획하였으나 미수에 그치고 다시 만주로 다시 만주로 돌아가 독립운동단체의 통일을 위해 노력했다.
마침 그때 길림(吉林) 주민회장 이규동(李圭東), 의성단장(義成團長) 편강렬(片康烈)·양기탁(梁起鐸)·손일민(孫一民) 등이 주동이 되어 재만독립운동단체의 통일을 발기하자 이에 적극 참가하여 크게 공헌하였다.
1928년 길림에서 김동삼(金東三)·안창호(安昌浩) 등 47명이 중국 경찰에 검거되자 지성으로 간호하며 석방운동에 온 힘을 기울였다. 1931년 김동삼이 하얼빈(哈爾濱)에서 붙잡히자 그를 탈출시키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였으나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1932년 3월 국제연맹 리튼조사단(Lytton Commission)의 Lytton(卿)이 만주철도폭파사건과 만주국에 대하여 조사하러 하얼빈(哈爾濱)에 오자 흰 수건에 ‘한국독립원(韓國獨立願)’이라는 혈서를 써서 조사단에 보내 우리의 독립을 호소하였다. 1933년 만주 괴뢰정부 건국일인 3월 1일에 이규동(李奎東) 등과 주만일본대사 부토 노부요시(武藤信義)를 죽이기로 하고, 동지와의 연락 및 무기운반 등의 임무를 띠고 걸인 노파 차림으로 하얼빈 교외 정양가(正陽街)를 지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6개월 동안 옥중에서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강인한 단식투쟁을 전개하고 병보석(病保釋)으로 석방되었으나,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라는 말을 남기고 1933년 8월 22일 하얼빈(哈爾濱) 여관에서 죽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정경화
극단 독립극장이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연극 '달의 목소리'를 오는 14일부터 무대에 올린다. 독립운동가 정경화 여사의 삶을 소재로 암울한 시기 우리의 역사를 되새긴다.
김락
경북지역의 3대 독립운동가 문중의 조부이자 스스로 치열한 독립운동가의 삶을 살았다. 일제의 극심한 고문으로 두 눈을 잃어 가면서까지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한 김락 여사의 독립운동 일대기를 다룬 작품으로 로얄오페라단이 제작에 참여했다.
창작오페라 ‘김락’은 8월15일 안동문화예술의전당에서 13시30분, 17시30분 2회공연과 8월 29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역시 13시
30분, 17시 30분 각 2회씩 총 4회 공연을 예정하고 있다.
창작오페라 ‘김락’은 로얄오페라단과 Brother Music이
주관하고 경상북도가 주최, 문화체육관광부, 국가보훈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경북독립운동기념관, 한국사회복지공제회, 심산 김창숙 기념사업회, 재경
경북시도민회, 한국명곡진흥협회 및 Chun University 등이 후원한다.
------------------------------------------------------------------
다음은 이들과는 정반대로 친일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김활란(金活蘭, 1899~1970.2.10, 한국여성박사 1호)
모윤숙(毛允淑, 1910년 3월 5일 ~ 1990년 6월 7일)
임영신(任永信, 1899년 11월 20일 ~ 1977년 2월 17일) 1946년 중앙여자대학(중앙대학교)을 설립
박인덕(1896~1980 평남 용강 출생) 인덕대학 설립자
김활란(金活蘭, 1899~ 1970. 2. 10) 1931년 10월 우리나라 여성1호박사(철학) 평생 독신
고황경(高凰京, 1909년 3월 6일 ~ 2000년 11월 2일) 1961년 서울여자대학교 설립(초대 학장과 명예총장)
송금선(宋今璇, 福澤玲子(후쿠자와 레이코, 1905년 1월 15일 ~ 1987년 2월 24일) 덕성여자대학교 초대 학장
황신덕(黃信德, 1898년 ~ 1983년 11월 22일)은 추계예술대학교 설립자
이숙종(李淑鍾) 1936년 4월 성신여학교(1965년 1월 성신여자사범대학, 1983년 성신여자대학교)
박순천 (朴順天, 본명 박명련(朴命蓮)), 1898.910~1983.1.9) 정치인 학력 : 부산진여자고등학교, 일본여자대학 사회학과
그외 서은숙(徐恩淑), 손정규(孫貞圭)김윤정·조기홍·허하백·홍승원·박마리아·유각경·차사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