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광규 시인의 디카시 해설
일상의 배면을 발굴하는 유다른 상상력
- 공광규의 디카시
김종회(문학평론가, 한국디카시인협회 회장)
1. 시인, 또는 디카시인 공광규
공광규는 서울 돈암동에서 출생했고 충남 청양에서 성장했다. 1986년 20대 중반 약관의 나이에, 《동서문학》을 통해 「저녁 1」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시 창작과 문학 연구를 병행하여 동국대 국문과와 단국대 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3년 120명의 시인과 평론가가 추천한 ‘올해의 가장 좋은 시’에 「담장을 허물다」가 선정되었으며 제1회 신라문학대상, 제4회 윤동주상 문학대상, 제23회 동국문학상, 제1회 김만중문학상 금상, 제14회 현대불교문학상, 제1회 고양행주문학상, 제1회 디카시작품상 등의 수상자다. 그의 시는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다. 평범한 일상이나 사물 가운데서 각기 개체가 가진 웅숭깊은 가치의 숨은 면모를 발굴한다. 그러나 언제나 개체 상호 간의 조화와 어울림을 잊지 않는다.
그가 디카시를 쓰고 디카시 운동의 행렬에 동참한 것은 여러모로 뜻이 깊다. 이제 세수(歲數) 20년을 바라보는 디카시가 처음 얼굴을 드러낼 무렵, 많은 기존의 시인이 이를 무시하고 ‘그것이 무슨 시냐’고 폄하할 때에 공광규는 디카시의 의의와 가능성을 먼저 알아보고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다. 그는 직접 디카시를 쓰고 디카시 모임에 참석했으며, 좋은 디카시의 창작자로서 제1회 디카시작품상을 받기에 이르렀던 터이다. 차제에 디카시 추동자들은 이와 관련하여 하나의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었다. 굳이 디카시를 이전에 있던 문자시의 연장선상에 두지 말자는 것이다. 그 구호는 이렇다. “디카시는 시가 아니다. 디카시는 디카시다!”
2. 기 발표된 공광규의 디카시
공광규의 디카시 가운데 가장 먼저 사람들의 눈에 들어온 작품은 「몸빼바지 무늬」다. 이 작품은 디카시작품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이를 필두로 그의 기 발표작 세 편을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몸매를 잊은 지 오래된 어머니가
일바지를 입고 밭고랑 논두렁으로
일흔 해 넘게 돌아다니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벗어놓은 일바지에 꽃들이 와서
꽃무늬 물감을 들여주었습니다.
- 「몸빼바지 무늬」
시적 화자의 어머니는 일흔 해 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일바지 곧 몸빼바지를 입고 들녘에서 일하다 유명(幽明)을 달리했다. 어머니가 벗어놓은 일바지는 밭고랑이거나 논두렁이라 말해도 별반 어색하지 않다. 그 자리에 들꽃의 여러 모양이 ‘꽃무늬 물감’을 들여주었다고 본다. 지금 노년으로 넘어가는 세대는 저 옛날의 몸빼바지와 그 무늬를 기억한다. 그 바지가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소용되는지 잘 알고 있다. 화자는 어머니가 떠나고 없는 빈자리를 바라보면서 안타깝게 모정(母情)을 그리워하는 심사를 짐짓 한 쪽으로 밀쳐둔 채, 전혀 뜬금없는 몸빼바지를 들고나온 형국이다. 그런데 어찌하랴, 이 새로운 방식이 훨씬 더 어머니 생각으로 가슴 저미게 하는 것을.
화단에 몰래 묻어두었던
심장 두 개
올 여름 튤립으로 솟아났다오
세상에 숨길 수 없는 한 가지
우리 사랑
- 「세상에 숨길 수 없는 것」
튤립 두 송이가 화단 한쪽에 연접하여 피었다. 물론 멀리 작은 그림으로 다른 튤립들도 보인다. 매우 한가롭고 평범한 광경이다. 그런데 시인은 여기서 두 꽃송이의 연대와 우호와 사랑을 보았다. 한자로는 울금향(鬱金響)이라고 쓰는 이 꽃의 꽃말은 애정, 그리고 사랑의 고백이다. 깊은 사랑은 대개 그 배면에 절실한 사연을 숨기고 있다. 시인은 이를 ‘화단에 몰래 묻어두었던 심장 두 개’로 지칭한다. 그러기에 두 송이 튤립은 범상한 꽃이 아니라, 세상에 숨길 수 없는 ‘우리 사랑’으로 증폭된다. 그는 꽃송이에 인간의 사랑을 투영했다. 비록 그 사랑이 누구의 것인지 불분명하다 할지라도.
수련잎 초등학생들이
교문을 빠져나오며 하교 중입니다.
등 뒤에서 앞에서 옆에서 누가 듣든 말든
입을 벌리고 종알거립니다.
- 「수련잎 초등학생」
수련, 물 위에 뜬 연꽃잎이다. 한 쪽 방향으로 입이 터진 것이 꼭 무슨 말을 재잘거리는 것 같다. 시인은 이를 두고 초등학교 학생들이 하교할 때 교문을 빠져나오며 종알거리는 광경으로 치환했다. ‘등 뒤에서 앞에서 옆에서 누가 듣든 말든’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은 이 아이들의 영혼에 아직 세속의 먼지가 앉지 않은 까닭에서다. 그처럼 편안하고 여유로운 풍광이며, 그것은 또한 사물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평화로운 내면을 유추하게 한다. 일찍이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사무사(思無邪)’의 지경이 여기서 멀리 있을 이유가 없다. 이제껏 살펴본 공광규의 기 발표작 3편은, 모두 이렇게 평범한 일상의 기저에서 유다른 상상력으로 비범한 내재적 함의를 도출하는 데 익숙하다.
3. 미발표작과 시 세계의 함의
공광규의 미발표 신작 가운데 필자가 비평의 자료로 읽은 작품은 모두 19편이었다. 그 중 필자에게 크게 공감의 울림을 준 3편을 엄선하여 여기서 그 시 세계를 궁구(窮究)해 보려 한다. 비록 선별적인 작품 감상이긴 하나, 그로써 공광규의 문자시에서 디카시에 이르는 일관된 시 정신의 흐름과 특징적 성격을 유추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하이델베르크 강가 아름드리 미루나무 아래
청년 하나가 쪼그려 앉아 독서 중입니다
가만히 가서 말을 섞어보니
전생의 어느 날 이곳을 여행하다 만난
괴테라는 이름을 가진 시인이었습니다
- 「괴테」
유럽의 미루나무여서 저렇게 크고 풍성한 것일까. 시인은 그 그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청년을 만나고, 그의 이름이 괴테임을 확인한다. 거기다 시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부동의 모범 사례다. 젊은 시인 괴테는 저 전설의 괴테와 어떻게 같고 또 다를까.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이 상황에 근접하는 시인의 심리적 상황이다. 독일 여행 중에 하이델베르크 강가가 아니었으면, 또 그의 이름이 괴테가 아니었으면, 이 시적 감흥은 제 몫을 찾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런 여유로 전생의 어느 날 이곳을 여행하다 만났다는 수사(修辭)가 쉽사리 세력을 얻는 것이다.
인물이 수려한 큰 당숙모에게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작고 못생긴 작은 당숙모가
아이를 낳으러 집에 들어왔습니다
빨간 잎이 둘러싼 작고 못생긴 꽃을 볼 때마다
옛날 작은 당숙모가 자꾸 생각납니다
- 「작은 당숙모」
포인세티아 꽃이다. 흔히 크리스마스 꽃이라 불리지만, 화려한 붉은 색은 잎이고 그 아래 초록색 잎이 보색을 띠고 있다. 실제의 꽃은 잎 속에 숨어 그다지 볼품이 없다. 그런데 그 꽃말은 축복이다. 시인은 이 꽃의 정황을 자기 가족사에 대입한다. ‘인물이 수려한 큰 당숙모’는 아이가 없다. 마치 화려한 붉은 색의 잎새와도 같은데 이는 궁극적으로 꽃이 아니며 따라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런데 어느 날 ‘작고 못생긴 작은 당숙모가’ 아이를 낳으러 집에 들어왔다. 그 무슨 잔치 같은 붉은 잎의 위세에 둘러싸인 작고 못생긴 꽃을 작은 당숙모에 빗댄 연유다. 한 떨기의 꽃의 형용에서 어쩌면 비극적이라 할 수 있는 가족관계의 역학을 단번에 읽어내는 감각과 순발력이 이 시인의 것이다.
은행나무는 새들의 물갈퀴 양말 공장
겨울이 다가오면
새들의 발이 시릴까 봐
달빛 별빛 뜨개질하여
나무 의자 위가 넘치도록 쌓아놓습니다
- 「물갈퀴 양말」
때는 바야흐로 늦가을이다. 나무 울타리 앞 쉬는 의자와 보도에 내려앉은 은행잎들의 빛이 바랜 것을 보면, 아마도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의 영상이 아닐까 한다. 시인은 이 조락(凋落)의 그림을 바라보며, ‘은행나무는 새들의 물갈퀴 양말 공장’이라는 명호를 내건다. 그러고 보면 은행나무 잎이 새들의 물갈퀴와 닮아있고, 그래서 그 양말이며, 은행나무는 공장이라는 말이다. 여러 단계를 건너뛰는 활달한 상상력이다. 심지어 새들의 발이 시릴까 봐 달빛 별빛 뜨개질하여 의자에 넘치도록 쌓아놓았다 하지 않는가. 외양이 좋기로는 그 의자에 갈퀴 발 가진 새 두어 마리 앉아 있었으면 하지만, 그 또한 마음대로일 수 없으니 이 상상의 힘과 악수 할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 이 글에서는 시인이자 디카시인인 공광규의 세계와 그의 기 발표작 3편 및 미발표작 3편 등 모두 6편의 작품을 비교적 면밀하게 살펴보았다. 이 짧은 글을 통하여 편의하게 단언할 수는 없으나, 공광규는 시에 있어서나 디카시에 있어서나 한결같이 일상과 사물의 객관적인 면모를 포착하는 데서 출발하여 그 내포적 의미의 깊이를 도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를테면 일반적인 생활인으로서의 감각을 통해, 그리고 거기에 투여된 창의적 시각과 상상력으로, 세상사의 숨은 차원을 부각하는 새로운 차원에 이르고 있는 터이다. 그의 세계는 그 다층적 관계성을 되살려, 어울림·조화·화해의 언어 미학을 정초한다. 시와 삶이 서로를 부드럽게 포용하는 원융(圓融)의 세계, 거기가 곧 공광규의 자리다.
김종회 전 경희대 교수,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촌장, 이병주기념사업호 공동대표, 한국디카시인협회 회장, 김달진문학상, 편운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다수 저서 『문학과 에술촌』, 『디아스포라를 넘어서』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