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박자박 자드락길, 초록 터널이 이어진다. 양쪽에 즐비한 나무 군상은 시간을 켜켜이 담았다. 허공에 바람길이 생기니 저마다 하늘에 움직이는 녹색 자수를 놓는다. 청아한 새들 노래는 걷는 이들의 감각 촉수를 건드린다. 곳곳에 쌓인 작은 돌탑이 방문객을 먼저 반기고 앙증맞은 소품들은 바위 위에 앉아 오래된 이야기를 꺼낸다.
행인들 발자국이 녹색으로 물들 즈음, 멀리 웅장한 기운의 처마 끝이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681년 신라 시대 창건한 사찰 고운사 일주문이다. 든든하고 휘어진 고목 기둥이 사람들 발길을 붙잡는다. 마음의 중심을 살펴보라는 울림을 알아차렸는가, 행인들은 두 손을 모은다.
종각을 지나 대웅전에 닿기 전, 빛바랜 작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연수전이다. 세월의 두께를 고스란히 간직한 팔각 지붕이 살포시 옆눈으로 나를 본다.
열린 문 안으로 발을 들인다. ‘만세문’ 현판을 단 솟을삼문을 지나 한두 걸음 옮기자마자 뭔가에 홀린 듯 그대로 멈춰 섰다. 사찰 건물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작은 건축물, 전체에서 뿜어나오는 기품이 범상치 않다. 퇴색된 단청과 벽화 등이 이토록 경외감을 솟구치게 하다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고고함에 매료되어 미동도 없이 바라본다.
군데군데 보이는 태극 무늬도 예사롭지 않다. 눈길을 돌려 여기저기 둘러본다.
작은 마당은 어찌 이리도 아름다울꼬, 이름 모를 잡초와 토끼풀 무더기는 건축물 위엄에 한 발짝 물러나 마당 한 구석에 다소곳이 자리를 잡았다. 사방에 쌓은 토석담은 연수전을 감싼다. 석재 기단(基壇) 위에는 십 센티 정도 공간을 두고 그 위에 건물을 세웠다. 목재로 만든 난간도 빈틈없이 나무를 맞추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벽면과 천정 등을 가득 채운 그림도 예사롭지 않다. 모든 감각 렌즈가 초점을 모은다. 왕실 관련 건축물이다. 청룡 봉황 거북 등이 태극 문양, 단청 무늬와 함께 꽉 들어찼다. 원래 색감을 상상하며 자세히 보다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벽화 속 청룡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하고 벽체의 아랫면에 붉은 해를 바라보는 한 쌍의 거북이도 마주 보고 웃는 듯하다. 왕의 장수를 기원하는 장생도와 왕가의 권위와 안녕을 바라는 글귀들이 화려한 단청 속에서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지금이라도 돌계단을 오르는 조상들 발자욱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오래된 현재, 작은 건축물이 뿜어내는 탄탄한 에너지는 넓은 사찰 전체를 휘감고도 남는다. 당시 조정에서 불교를 억압하던 시대였음에도 왕가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연수전을 사찰 내에 둔 사실이 흥미롭다. 몇 해 전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어첩봉안각(御帖奉安閣)이다. 왕실 관련 건축물이 입구에 서 있음으로써 절집을 함부로 해하려는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었을 터이고 사찰은 왕실의 무병장수를 기원함으로써 고운사를 통해 암흑 속 불교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서로를 살리는 조상의 지혜에 가슴 한구석이 찌릿해 온다.
서로 다른 별에서 온 남녀가 인연 고리를 맺었다. 함께 하는 시간이 쌓이면 남자는 여자보다 약해진다는 말은 아마도 호사가들이 지어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비해 내 말을 경청하는 편이라는 남편 말이 아직도 가끔 부화를 불러일으킨다.
모임이 빈번한 나의 움직임에 식구는 관심을 자주 나타낸다. 미리 말했음에도 매번 또 묻는다. 어느 날은 바로 옆에서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너무 커 깜짝 놀란 가슴을 다독거려야 했다. 이 외에도 가끔 나를 불편하게 하는 그의 성정은 하얀 옷에 튄 붉은 김칫국물처럼 자꾸 마음을 쓰게 한다. 그럴 때마다 케케묵은 감정 뭉치도 머리를 내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시간 속을 달릴 때는 가치관이 다른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에 일일이 대응할 여유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정전기를 일으킬 수는 없는 터, 참을 인(忍)자를 자주 떠올렸다. 이순 고개를 넘어서도 생활 속 소소한 일을 두고 자기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는 남편을 보면 감정이 앞서고 논리에 약한 나는 숨이 막힌다. 그럴 때면 둘 사이에 먹구름이 끼었다가 번갯불이 튕기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외부의 불합리한 상황을 만나 내가 전전긍긍하고 있으면 그는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임차인들의 억지 주장, 기관 업무 담당자의 불합리한 일 처리 등, 내가 서툰 일에는 그가 앞에 나선다. 상대가 개인이든 기관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논리에 강한 남편은 자초지종 파악 후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내 접점을 찾아 해결하여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가도 사소한 일로 가끔 내 심사를 흔들어 놓는 사람,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의 생각과 행동에 물들고 있는 자신을 인지하고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많다. 마치 건물 성격이 전혀 다른 연수전이 사찰과 공존하며 은근한 넛지로 서로 도움이 되는 것처럼 한 지붕 아래에서 결이 다른 남편의 언행도 나를 살피고 보호하려는 마음이 기저에 있어서가 아닐까.
옆지기 머리에도 서리가 내렸다. 많이 유연해졌다지만 사서삼경의 미덕을 아직 유지하고 싶어하는 그의 모습이 연수전 앞에 어른거린다.
퇴직 후 바깥출입이 나보다 적은 남편, 조용히 지내는 듯하면서도 식구를 향한 더듬이는 늘 꿈틀거린다. 겉모습은 변했건만 여전히 자신만의 선을 유지하는 남편 모습은 빛바랜 연수전 솟을삼문의 당당함을 닮았다. 요즘도 자신의 신념으로 식구 개개인의 삶에 대해 은근한 넛지를 넣기도 한다. 그도 나름 다양한 기억 상자를 품고 있을 터, 식구를 향한 관심이 어떨 땐 지나치게 이성적으로 나타난다. 서로 이질적인 성향이 부딪혀 감정 너울이 일어도 서로에게 스미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고색창연한 건축물, 축적된 시간은 순간을 엮어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서로가 느끼는 다름과 같음도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인식 차이가 아닐까! 각자 다른 방향을 보는 듯하지만 결국은 같은 쪽을 바라보는 셈이니, 존재만으로도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
사찰 내 연수전, 그들의 은밀한 넛지에 고개를 끄덕인다.
돌계단 아래에 선다. 초여름 햇살이 만세문을 베고 사찰 마당에 길게 눕는다.
오늘따라 식구의 마음 씀이 커다란 품으로 다가온다.
첫댓글 퇴고 중인 글입니다 ㅎ
내 이 글을 앍고
술마시다가 생각나면
한번씩 읽어 보는데
무언가 이상하다는 내가 이러지 하다가 너무 글에 나는 항복 합니다
앞에 글 잘못 입력
죄송
자우기 안되네요
시인님 피드백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쌀쌀해지는 요즘, 주님(!! 酒님) 자주 만나지 마시길요 ㅎㅎ
@김순교 글쓰기가 숨 쉬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으니 아직 멀었다는 느낌입니다. 습관처럼 오늘도 컴 앞에 앉습니다.
걷고 또 걷고 나를 살피고 주변을 살피고 놀기도 하다 보니 한 달이 후딱입니다. 모두 편안한 하루하루 되시오소서.
남편하고 툭탁거린 얘기가 조금 구체적이었으면 합니다
너무 어려운 얘기 말고...
말씀 고맙습니다 ㅎ
샘
매달 첫째 화요일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 있는데 거기서 제가 글쓰기가 너무 어렵다 하니 단련의 시간이니 이겨내야 한다 합디다 나 요새 힘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