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2018년 11월 10일) 종손을 따라 시사(時祀)를 위해 봉화와 영주, 안동에 있는 옛 선조들의 묘소를 찾았다. 아침 7시 30분 경, 대구 진천역에서 효목 할배(준환씨)와 청도 아재(재식씨)를 내 차에 모시고 출발했다. 출발 직후 청도 아재가 장천 할배(경환씨)와 통화를 하더니만, 가산IC에 잠시 내렸다 가자고 한다. 가산IC에 잠시 내렸다가 장천 할배를 모시고 봉화 호애산(虎崖山)으로 출발했다. 호애산(虎崖山)은 호골산(虎骨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17대조이신 承旨公, 16대조이신 參判公, 15대조이신 臨淵公이 永眠하고 계신 곳이다.
봉화 호애산 밑에서 잠시 기다리니, 종손(宗孫)인 중명(重明)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차종손(次宗孫)을 데리고 같이 왔다. 산소에 올라가니, 봉화에 계신 여러 어른들이 시사 준비를 하고 계셨다. 산등성이에 위치한 산소는 17대조이신 승지공의 산소가 밑에 있고, 16대조인 참판공의 산소가 중간에, 15대조인 임연 할배의 산소가 맨 위에 위치하고 있다. 이것을 역장(逆葬)이라 부르는데, 性理學的 倫理가 교조화(敎條化)된 조선후기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 묘제(墓制) 형식이다.
호애산 아래에 있는 임연선조 신도비
임연선조 묘비
17대조 승지공(아래)과 16대조 참판공 묘소
나는 헌관(獻官)을 돕는 집사(執事)의 역할을 맡았는데, 작은 실수를 여러 번 했다. 어른들이 조용히 가르쳐 주시니 다행이었다. 산신축(山神祝)을 읽었는데, 막상 해보니 고저완급(高低緩急)이 어렵다. 중명(重明)은 밀폐된 방 안에서 큰 소리로 읽으면서 자기 소리를 여러 번 들으면서 익숙해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제례에 참가하는 인원이 옛날보다 많이 줄었다. 이에 따라 제수(祭羞)는 많지 않았지만, 격식은 갖춘 모습이었다. 제수(祭羞)는 호애산 밑에 사시는 족친(族親) 어른이 오랫동안 맡아서 하고 계시는데, 일도 잘하시고 말씀도 잘하신다. 나중에 들으니 술도 참 잘하신고 한다. 우사(牛舍)에는 잘 생긴 한우도 많아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신 듯하고, 자녀들도 모두 청와대와 법원 등에서 일하고 있어 모두의 부러움을 받고 계시는 분이다.
시사 지내는 모습
호애산 시사를 지내고 나니, 11시가 넘었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호애산 밑에 있는 송이버섯 전문 식당인 ‘인하원’에서 돌솥 비빔밥을 먹었다. 밥과 반찬도 맛이 있었지만, 식사 뒤에 나온 ‘송이버섯 차’는 일품(一品)이었다. 조금씩 음미하면서 마시는데, 입 안에 송이 버섯 향이 가득함을 느낀다.
'인하원'에서 마셨던 산송이버섯 차
점심 식사 후 우리는 영주 안정에 있는 19대조 소위장군 묘소로 향했다. 묘소 옆 호수가에는 고기를 낚는 강태공들이 많았다. 돌아가기 싫어서 길도 제대로 없는 가파른 길을 올랐다. 비가 온 뒤라서 많이 미끄러웠다. 올라가니 위쪽에는 선조인 소위장군의 산소가 있고, 아래에는 영양남씨 남치형 공의 묘가 있었다. 임연 선조의 처남이 되시는 남치형 공이 돌아가셨을 때, 아마 당시 임연 선조께서 처가(妻家)를 위해 배려하신 듯하다.
소위장군 시사를 지낸 우리는 안동 풍산 수곡에 있는 20대조 녹사공(錄事公)의 산소와 학봉종택 뒤편에 있는 지평공의 산소를 찾아 시사를 지냈다. 바삐 서둘렀음인지 시간은 4시를 조금 넘어서고 있었다. 비가 온 뒤라 가을 단풍의 색은 진했다. 단풍을 구경하기 위해 사람많은 곳을 찾기 보다는, 선조의 묘소를 찾아 시사를 지내면서 단풍 구경을 하는 것이 더 여유있고, 의미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