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태어날 《문장》의 동력을 느끼며
장호병(문장 발행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전국 각지에서 오신 문학인 여러분!
먼 길 와주신 귀한 걸음, 감사 인사 올립니다.
지난 9월 10일 대전 유성에서의 제1회 문장인문학 심포지엄과 문학기행의 감격이 아직 생생합니다. 오늘 이렇게 제2차 문장인문학 심포지엄과 문학상 시상식을 거행하게 되어 문장 발행인이자, 문장 가족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크게 느낍니다. 또 이 자리에 함께 하시지는 않지만 선배 문인들께도 어느 정도 체면이 서는 행사입니다.
제2회 문장인문학심포지엄은 검솔 여영택 시인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여 선생님의 문학세계를 조명하는 뜻깊은 행사입니다. 검솔 선생께서는 1956년 시 「담향淡香」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하여 화려하게 문단 활동을 여셨습니다.
등단작인 「담향淡香」에서 우리는 여영택의 시를 우리 시사에서 청록파와 문장지의 시인의 세계에 그 맥을 닿고 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은 멀리는 정지용의 <깊은 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데 눈과 밤이 조희보다 희고녀!>의 세계에 나오는 고요의 깊이와도 상통하며, 청록파, 그중에서 박두진의 「묘지송」, 「해」의 세계와도 긴밀히 연관되고 있다. 이 시의 기본적인 모티프는 인간과 자연의 일치를 통해 자아를 새롭게 형성하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폭력과 폐허화된 현실을 이겨내는 힘이 된다. 시인은 전쟁 후의 <파편 쌓인 거리/ 피 묻은 기와쪽> 속에서도 생명을 틔워내는 (만지대는) 자연의 몸짓을 발견한다. 자연의 내면적 현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극심한 역사적 변화에도 끊임없이 신생과 부활을 거듭하는 생명의 호흡이 아니던가. 그럼으로써 자연은 유한한 존재이며 변화를 겪는 인간에게 안정과 치유, 그리고 갱신의 에너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 발제문 「여영택 시에 나타난 자연과 시간의 의미」(손진은) 중에서
손진은 평론가의 언급에서처럼 검솔 선생님의 시는 문장의 주축이었던 청록파나 정지용 선생의 시 세계에 맥이 닿아 있다는 점에서도 오늘 심포지엄에서의 의미가 크게 다가옵니다.
검솔 선생님은 우리 말과 우리 글을 특히 사랑하셨습니다. 대구문인협회장 재임시를 돌이켜봅니다. 시낭송과 동화구연, 외국인근로자들의 생활수기 공모 등 도입하여 시대를 앞서가셨습니다. 백일장에서는 이전까지 시행해오던 장원 차상 차하를 어금상 버금상 지금상 등으로 바꾸어 시상했습니다. 어금버금 어금지금 버금지금 지금버금이라는 말이 있고 보면 그 경계는 모호할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은 디지털보다는 함께 어우러지는 정의 아날로그적인 삶을 사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검솔 선생님은 이 땅에 시의 저변을 두텁게 하셨습니다. 고교 문예 써클 ‘회귀선’과 ‘돌탑’의 지도교사로 그때의 젊은 문사들이 오늘날 한국 문단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 1996년부터 매월 시사랑 낭송회를 개최하여 또 6월이면 육순3사관학교에서 생도들을 대상으로 호국보훈시사랑낭송회를 개최하였습니다. 100회로 정기 시낭송회를 끝으로, 그때의 월간 시사랑은 계간 문장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오늘 심포지엄의 좌장을 맡은 김수복 교수는 검솔 선생님께서 지도하신 고교문학 써클 중 하나인 ‘회귀선’의 회장을 맡은 바 있습니다. 검솔 선생님과 동인 활동을 오래 해오신 최춘해 시인의 발제 원고는 체감지수가 한결 높습니다. 그리고 후학인 손진은 시인이자 평론가의 발제 원고는 냉철한 이성과 학문으로 검솔 선생님의 문학세계를 조명하였습니다.
문장이 주최하고 문장인문학회가 주관하는 제1회 박양균문학상과 제1회 김용준문학상의 시상, 그리고 문장신인작가상의 시상 또한 의의가 큽니다.
이성里城 박양균朴暘均 선생은 1950년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교편생활을 하던 중, 1952년 《文藝》에 「창」, 「계절」, 「꽃」 등으로 추천을 받아 문단에 나오셨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치과에서」, 「낙과」 등의 문제작을 발표, 문단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대구여상 원화여고 경북대학 효성여대 등에서 후진을 양성하였으며 한국시인협회 심사위원,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영남일보 전무 겸 논설주간, 한국문협 경북지부장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었던 선생님은 작고 뒤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근원近園 김용준金瑢俊 선생은 1904년 경북 선산에서 태어난 화가이자 미술사학자이며 미술평론가로, 『근원수필近園隨筆』과 함께 수필가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1926년 동경미술학교 유학 중 소설가 이태준을 만나 교우하였습니다. 그 인연으로 《문장》의 표지화와 삽화를 그렸다. ‘내가 수필을 쓰는 것은 어릿광대가 춤을 추는 격’이라던 근원은 ‘수필이란 글 중에서도 제일 까다로운 글인 성싶다’고 하였습니다. 근원의 글에는 현실을 꿰뚫어 보면서도 옛것에 대한 애정이 녹아 있다는 평을 받습니다. 『근원수필』은 향토색 짙은 우리 말을 담백하고 격조 있게 표현하여 문장의 맛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글쓰기의 전범이라 할 만합니다.
문장이 현창하고자 하는 박양균 시인은 지역 현대문학을 이끈 분으로, 근원 김용준 수필가는 한국 수필 문학의 백미 『근원수필』의 저자입니다. 선생이 문장에 쏟은 그 체온을 느끼면서 날로 문장이 새로 태어나는 동력을 얻고자 합니다.
두 분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박양균문학상 수상자 김민정 시조시인과 김용준문학상 수상자 노정희 수필가의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제66회 문장신인작가상으로 문단에 첫발을 딛는 신경룡, 박귀순, 김영순, 이희순, 정재희 작가에게 창대한 문학세계 펼쳐나가길 주문합니다.
참석해주신 문학인 여러분!
매듭달 남은 날들 잘 마무리하시고 갑진년 새해 맞아 값진 문학활동에서 큰 보람 얻으시길 마음 모아 기도드립니다.
2023. 1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