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마지꽃 /선정수
하얀 꽃이 피었다.
저도 아직 살아있다는 반증이다. 고추장에 듬성듬성 골마지꽃이 피어났다.
날씨가 갑자기 더워졌다. 며칠 남편이 집을 비운 관계로 주방에 들어갈 일이 별로 없었다. 남편이 돌아온 날 식사를 준비하다 그제야 보았다. 며칠 전 꺼내둔 고추장 통이 그대로 나앉아 있다. 슬며시 뚜껑을 열어보았다. 벌써 하얀 꽃이 군데군데 피어났다. 부글댄 속처럼 구멍도 숭숭 나 있다. 남편이 볼세라 얼른 골마지를 거두어내고 냉장고에 도로 집어넣었다.
골마지는 곰팡이인 줄 알지만 실은 효모 덩어리란다. 이는 주로 김치와 같은 발효식품의 표면에 하얗게 피어난다. 바꿔 말하면 억눌렸던 효모가 숨구멍으로 새어든 산소와 반응하여 몰래 꽃으로 피어난 것이다. 어쨌거나 이 또한 살아있다는 표시다. 방치된 실온에서 저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친 것이다. 발버둥을 쳐대다, 쳐대다 저 혼자 삭은 것이다. 삭다, 삭다 남몰래 저도 꽃을 피운 것이다.
달빛도 하얀 꽃을 피운다. 그것도 날이면 날마다 피고 지는 불사조 같은 꽃이다. 이 꽃은 빛과 어둠의 힘 기울기에 따라 피어난다. 즉 빛만큼이나 어둠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다시 말하면 달빛은 어둠에서 피어난 꽃이다. 살아있다는 외침의 저 골마지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초승달은 갓난아기의 웃는 눈매처럼 여리게도 피어난다. 이어 잘 빚은 송편 같은 상현달이 피고 나면, 꿈속의 엄마 얼굴 같은 보름달이 피어난다. 그것도 잠시 등 굽은 아버지 같은 하현달이 지고 나면, 두 눈 가리는 어둠이 온 세상을 뒤덮는다. 그래도 우리는 두렵지가 않다. 하얀 박꽃 같은 달빛이 또다시 밝아올 것을 아는 까닭이다.
지난날 삼백 배로 백일기도를 한 적이 있었다. 절을 하고 나면 등짝은 온통 땀에 절었더랬다. 초여름에 시작한 기도가 한여름을 거의 지날 무렵이었다. 숨이 턱턱 차오르듯 무릎 관절에도 물이 차올랐다. 마지막 남은 보름을 마저 채우기 위해 병원에 다니면서도 기도를 밀어붙였다. 어찌 보면 미련하기도 했다. 땀에 푹 절어버린 옷은 매일 갈아입어야 할 지경이었다. 비가 온 그다음 날 미처 빨지 못한 옷을 그냥 입고 나갔다. 누군가 등짝을 털어주기에 그제야 등을 보았다. 그동안 애썼다는 듯 하얀 꽃이 피어 있었다.
나에게도 하얀 꽃이 피어났다. 이 꽃은 천하장사도 피해갈 수 없는 꽃이다. 누구도 피할 수는 없지만 너무나 착한 꽃이다. 시간에 순응한 꽃이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조금씩 늦출 수 있을지는 모르나 생체시계만큼은 정확하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벌써 무릎도 삐걱거리고 손목도 시큰하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만큼 탈도 빨리 나버렸다. 이제는 쉬어가라며 정수리에서부터 하얀 꽃을 사정없이 흔들어댄다.
어디 보이는 곳에만 꽃이 필까. 때로는 삶에도 골마지가 피었다. 푹푹 삭아야 하기에 삶이라 하는지도 모르겠다. 좀 더 모질게 마음먹고 ‘그까짓 것’ 하고 넘길 일도 하나하나 삭인 마음에는 구멍만 숭숭하다. 하고 싶은 말도 차라리 하고 나면 후련할 것을, 무엇 하러 차곡차곡 쌓아두었는지. 상대를 위해서 진심을 다한 일일수록 오히려 돌아오는 상처는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그렇게 참고 쌓아둔 응어리에 핀 골마지는 답조차 없었다.
마음에 핀 골마지는 거두어내도 못 한다. 그냥 두면 아마도 부글부글 고추장처럼 끓어 넘칠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길을 찾았다. 바로 글쓰기다. 누군가 그랬다. 사람은 상처를 통해서 성장한다고, 상처가 없다는 것은 이미 성장을 멈추었다는 말이라고. 그렇다면 아직도 성장 중이란 의미다. 고추장에 핀 골마지도 아직 살아있다는 반증이듯, 아픈 구석이 있기에 꺼내어 쓸 글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면서 가끔씩 나를 돌아다본다. 반성이 먼저 있은 후에 글이 나올 때도 있지만, 글을 쓰면서 생채기를 쓰다듬으며 닫힌 마음과 화해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것이 나에게는 치유다.
글도 꽃처럼 피우려면 발효가 필요한가 보다. 음식도 발효된 음식이 건강에 좋듯, 오히려 가슴속 삭힌 게 있어야 글도 피어나나 보다. 그렇게 한 줄 한 줄 되새김질하듯 뽑아낸 글들이 오늘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것일 테다. 이 밤도 고추장에 핀 골마지처럼 하얗게 새는 중이다. 부디 밤을 새워 피워낸 글꽃 향이 널리 전해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