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은경은 어떻게 나문희를 품었나
<꽃보다 할배>에서 칠순의 어르신들이 배낭여행을 통해 발견한 것은? ‘청춘’이다.
<응답하라 1997>에 이어 <응답하라 1994>에 수많은 대중들이 응답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90년대라는 특정 지점을 청춘으로 보냈던 세대들의 청춘에 대한 향수와,
지금의 청춘들도 똑같이 공유할 수 있는 드라마 속 청춘들의 이야기가 거기 공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 <수상한 그녀>가 꺼내고 있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청춘이라는 판타지.
놀라운 일이지만 나문희라는 어르신이 심은경이라는 젊은 육체를 갖게 되는
이 판타지적 설정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
그것은 아마도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늙어가는 우리의 육체에 대한 한없는 안타까움이
순식간의 욕망으로 영화의 판타지를 자극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신 그것은 <꽃보다 할배>에서 봤던 신구가 한 배낭여행을 하는 젊은이에게
“존경합니다”라고 말할 때 느껴졌던 그 세대를 넘어서는 공감의 지점에서 비롯된다.
젊은 몸을 가지면서 오말순 대신 오두리(오드리 햅번에서 딴 가짜 이름)가 된 이 욕쟁이 할머니는
그 한 존재 안에 모성애로 똘똘 뭉쳐진 아날로그 세대의 따스한 정과
이제 막 피어나는 젊은 육체를 동시에 갖게 된다.
오두리는 그래서 늘 옆에서 그녀를 ‘아가씨’라고 부르며 짝사랑해온 어르신 박씨(박인환)의 마음을 읽어내기도 하고,
갑자기 자신 앞에 나타난 잘생긴 PD 한승우(이진욱) 앞에서는 마치 소녀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한다.
그녀라는 존재 안에 젊은 세대와 나이든 세대의 감성이 공존하고 있는 것.
오두리가 손주인 반지하(진영)와 함께 반지하 밴드의 보컬로서 무대에 서는 장면은
우리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볼 때 느끼곤 하던 리메이크가 가진 세대 통합적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즉 젊은 반지하 밴드가 주는 젊은 감성에 오두리의 옛 감성이 만나 부르게 되는 김정호의 ‘하얀 나비’는
그 노래만으로도 세대가 공감하는 지점을 충분히 만들어낸다.
어찌 보면 이미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서, 또 <꽃보다 할배>나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서 느꼈던 그 감성들을
영화 한 편 안에 녹여낸 듯한 느낌이 들지만 그렇다고 전혀 식상한 느낌을 주지 않는 건
오로지 나문희라는 대배우와 심은경이라는 매력적인 배우의 콜라보레이션 덕분이다.
심은경이 아니었다면 이토록 천연덕스럽게 어르신의 감성을 구수한 욕에 녹여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구수한 사투리 섞인 말투로 포복절도의 웃음을 주다가도,
그녀가 부르는 ‘하얀 나비’를 듣다가 세월이 묻어난 슬픔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걸 보면
심은경이라는 배우가 가진 대단히 폭넓은 연기 감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없이 발랄해지다가 한없이 깊이를 더해주는 영화의 변신이 가능해진 것은
그래서 온전히 그녀의 몫이 아닐까 싶다.
심은경 출연작 :
수상한 그녀(2013),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써니(2011)
심은경이라는 배우 하나 속에서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세대를 뛰어넘는 소통의 유쾌함은 이 영화의 소구 포인트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설 명절을 앞두고 개봉되었다는 것은 ‘부모와 자식이 함께 보는
최고의 가족영화’라는 슬로건에 맞춘 듯한 느낌마저 준다.
아마도 부모와 자식이 진짜로 함께 이 영화를 본다면 청춘이라는 공유지점 하나로 소통되는 이야기에
양자가 모두 만족스럽게 극장 문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 영화의 말미에 최근 <별에서 온 그대>로 가장 뜨거운 배우 김수현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는 <별에서 온 그대>의 늙지 않는 불사의 존재 도민준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닌가.
물론 그 양상은 조금 다르게 나타나지만 크게 보면 <별에서 온 그대>나 <수상한 그녀>에게서 동시에 발견되는 건
젊은 육체에 대한 판타지다. 이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관리되는 육체에 의해 점점 입증되는 시대에
‘젊은 육체’는 좀 더 현실적인 판타지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들 작품 속에서 실버청춘 시대의 판타지를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별에서 온 그대>의 젊은 육체와 <수상한 그녀>의 그것이 같은 의미만을 갖지는 않는다.
이것은 아마도 두 작품의 장르와 소구점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와 멜로를 전면에 내세운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이
4백년을 살면서도 젊은 외모로 여성들의 완벽한 판타지를 충족시켜준다면,
가족영화를 전면에 내건 <수상한 그녀>의 오두리는 젊은 외모에도 불구하고
모성애를 잃지 않는 가족 판타지를 충족시켜준다.
<수상한 그녀>의 젊은 육체에 대한 판타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육체마저 뛰어넘는 모성애라는 두 지점은,
젊음과 나이 듦,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가려는 욕망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 같은, 어찌 보면 양극단으로 갈라진 것들의 균형점을 잡아주는 느낌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균형점이야말로 이 영화가 폭넓은 세대를 끌어안을 수 있는 이유다.
실로 나문희라는 원로배우를 그대로 품어내는 심은경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지는 영화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thekian1@enter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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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제 자윤샘은 SNS기자단 출범식 참석차 전남 도청에 가시고
소피아님과 나는 '수상한 그녀'를 봤다.
심은경의 물오른 능청스러운 연기에
웃다가 울다가, 울다가 웃다가..
좋은 영화 보여주신 선물로 두 분께 어울리는 음악 CD 따끈따끈하게 꾸워 드렸다.
자윤샘은 내년이 칠순이라고 하셨나.. 머리 허연 두 분, 그러나 여전히 참여와 연대로
세상에 아름다운 동참을 하고 계시는 존경스러운 두 분...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우리들 곁을 지켜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