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함만을 추구한다면 게으른 노인이 될뿐이고
그 안일과 게으름에 익숙해지면
힘없는 늙은이가 될 것은 뻔한 일
작은 소일꺼리라도 찾아 몸을 움직여 준다면
최소한 게으른 인생은 면할 것이라고 본다
날씨 핑계나 컨디션 탓하지 않고
꾸준히 움직여 주는게 병원에 다니지 않는
건강한 삶의 첩경이라는 걸
모두가 모르지는 않을테지만
사람들은 생각과는 달리 잘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오늘은 모처럼 자전거를 꺼내 들판길을 지나 삽교호 정류장으로 향한다
눈밭을 헤메던 철새들이 떼거리로 모여앉은 들판에는
인간이 나타나면 평화가 깨지고 만다
해꼬지를 당할까봐 그들은 바짝 긴장하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푸른 하늘로 이동을 시키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나는 그들 무리를 만나면 에둘러 가거나
멈춰 서지않고 조용히 지나가려 애쓴다
그들의 비상하는 찰나의 광경이 무척 욕심이 나기는 해도...!
강심에 얼어붙은 고깃배
할일도 잃고 갈길마저 앓었구나
새로 세운 고압선 철탑 주변에도 기러기떼가 모여
괙괙거리는 수다를 떨며 부지런히 먹이를 찾으며 겨울을 나고 있다
가로 화분의 꽃양배추에 핀 서리꽃이 곱다
새로 축조된 갑문
단순히 삽교호의 담수를 조절하기 위해 거창하게 만든 갑문이지만
제방과 연결되는 자전거길을 차단하여
라이거들에게는 불편을 초래했을 뿐이고!
근처 커피집의 마당에는 돌(수석)도 놓여있고
목각도 한두점 보이는데
커다란 개와 짱딸막한 개 두마리가 시끄럽게 짖어대어
정나미가 떨어지고!
결빙(結氷)으로 삭막해진 삽교호
미끄러운 얼음 위에서는 철새들이 쉴 수가 없어
그 넓은 호수는 늘 비어 있다
작사가 조영출(조명암)의 출생지인
영인(아산) 시내를 지나 영인산으로 무심히 향한다
영인 초등학교
영인사 골짜기의 실개천의 물소리가 맑다
너럭바위 옆에는 작은 돌탑이 외로이 쌓여 있고!
금지된 골짜기 길의 끝에 오르면 연못 쉼터가 숨을 고르게 한다
단체 산객들이 쉬어 가려는 듯 평상을 차지하는데
배낭에서 내놓는 커피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10여년전 산불이 났던 산림복원 지역을 지나
2층 정자로 직등하여
주변의 산봉우리들을 일일이 점검한다
상투봉
닫자봉
신선봉
깃대봉
연화봉과 산림박물관
노랑 말채나무가 한겨울의 추위에 달궈진 듯 더욱 샛노래졌자
흐느재를 지나
산성 계곡길로 내려섰는데
혹시나 하던 눈꽃은 모두 사그라지고
무너진 성곽의 돌들만 어지러이 널려있어 쓸쓸하다
신선봉의 산성 계단으로 접근하여 956계단을 차근차근 밟아 오른다
신선봉 정상
먼거리까지 시야가 확보되지는 않지만
호쾌한 맛을 느낄 수 있는 내포 들녁이 오늘은 다른 곳보다 더욱 침침했다
건너편의 연화봉 영광의 탑은 저렇게 새초름 한데...!
깃대봉
인주의 입암산도 대기권의 어두운 띠구름에 둘러싸여 답답하고!
미끄러운 신선봉 시멘트 계단을 내려와 깃대봉으로 건너와서는
연화봉을 일견(一見)한 후 곧장 하산을 서두른다
"귀가 버스를 타려면 어물거려서는 안돼!"
깃대봉에서 영인 시내 사진을 빼먹은게 생각이 나
중간바위에서 잠시 잡목 사이로 흐린 아랫세상을 훑어본다
밋밋하지만 가까이 땡겨 보면 역시 아름답다
연화봉 영광의 탑은 오늘도 변함없이 건재하고!
산림박물관
아직 그런일은 없었지만 추울 때는 잠시 들어가 몸을 녹이며
설치물을 구경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닫자봉
등나무 쉼터에는 어디에서 온 아낙들인지
주변이 왁자하게 떠들어 댄다
하긴 여자 셋이 모이면 구들장이 들썩거린다고 했으니
예닐곱명의 여자들이 모여 요정도 시끄러운 건 맛뵈기일 것이다
진입금지 철망을 넘어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간다
헌데 아직 얼음바닥이 곳곳에 깔려 있어
조심을 하느라고 했지만 결국 꽈당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암장에는 아직 찬바람만 감돌고!
영인시내로 내려 선 후 배밭을 지나며
짧은 산행을 마무리 한다
"그래! 혼자여도 괜찮아!"
又作半狂翁(우작반광옹)
'또다시 반쯤 미친 노인'이 되어
오늘도 산길을 혼자여도 즐겁게 걸었구나!
산행거리 8.6km에 소요 시간은 2시간 36분
사진을 정리하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 초저녁 잠이 들었는데
전화소리가 잠을 깨운다
여수의 '그리운 산'님으로 부터 새해 문안 인사를 건네 받았다
마침 교교한 열아흐레달이 창문을 비추니
지나간 세월속에 지리산을 누볐던 추억들이 떠오르고
그때 인연을 맺었던 그리운 얼굴들이 다가온다
갑자기 생각이 난 진주의 '선함'님의 근황이 궁금하여
전화를 보내니 예나 다름없는 반가운 목소리가 들리지만
무릎수술로 한동안 고생을 했고
이제는 어부인이 뇌경색으로 쓰러져
간병에 매이느라 바깥활동을 못해 산행은 꿈도 못꾼단다
무심한 세월에 밀려 이제는 모두가 흘러간 추억들이 되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자기의 길을 걷노라면
남은 생애나마 튼실한 노년들이 되지 않을까
마음을 가라앉히고 잠을 청했지만 잠은 쉬이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