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여러분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올 한해도 저물어 갑니다. 세월이 화살같이 빠르게 느껴지니 아무래도 나이 탓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가끔 선릉에 산책하면서 보면, 낙엽이 지는 모양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나무는 나목이 될 준비를 합니다. 여름과 가을의 흐름을 자꾸 돌아보아야 비로소 자신의 가을을 생각하니 사람은 자연과는 한참이나 먼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다음은 지난 10월 23일 을지로 따비의 일지입니다.
오늘 보시한 음식은 청도 홍시 240개, 백설기 250쪽, 커피와 둥굴레차 각각 100여잔입니다. 홍시는 낮에 제영법사와 운경행님이 두 개씩 포장을 했습니다. 오늘 봉사하신 분은 거사봉사대의 해룡님, 병순님, 종문님입니다. 비가 오고 굴다리 안으로 싸늘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긴 줄을 선 거사님들은 묵묵히 한 분씩 보시를 받았습니다. 얼굴이 익은 분들은 서로 안부를 전했습니다. 떡과 과일을 받으면 거사님들은 대부분 어둠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굴다리 한 쪽에는 대 여섯 거사님들이 남아 떡과 홍시를 다 먹고, 다시 우리에게 와서 둥굴레차를 한 잔 더 마신 뒤에 자리를 떴습니다.
오늘도 조용히 그리고 평화롭게 따비를 회향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보시가 늘 이렇게 평상하니 참 고마운 일입니다. 무주상보시의 뜻이 다만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며, 문득 '다만 이렇고, 이렇다'는 임종게를 남긴 대혜종고 선사가 생각났습니다. 대혜종고(1089 - 1163)스님은 남송시대 선의 거장입니다. 대혜선사가 세상을 떠날 때, 제자들이 임종게를 청했습니다. 당시에는 고승들이 임종에 즈음해서 게송을 남기는 일이 관례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대혜스님은 임종게를 독촉하는 제자들에게 "임종게가 없으면 죽지도 못하느냐?"고 큰 소리로 꾸짖었습니다. 대중이 다시 간곡히 청을 하자, 선사는 이렇게 글을 남겼습니다.
"태어나는 것도 다만 이렇고, 죽는 것도 다만 이러할 뿐이다.
임종게가 있느니 없느니 시끄러우니, 이 무슨 열탕 대지옥이냐!"
(생야지임마 生也只恁麽 사야지임마 死也只恁麽 유게여무게 有偈與無偈 시심마열대 是甚麽熱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