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딸과 함께 읽는 소설 여행 3
5. 유자소전(兪子小傳) 줄거리
보령 출신의 유재필이라는 친구는 심성이 깔끔하고 매사에 생각이 깊고 침착하며 능력도 작지 아니한데, 남에게 기대거나 남 앞에 나서기를 꺼리며, 분수없이 남을 제끼거나 잘났다고 으스대는 자를 매우 싫어하고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지닌 사람이라 나는 그를 ‘유자’라고 부른다. 유자는 보령 지방 방언을 구사하는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난 어휘 감각을 지니고 이어 문단의 작가들과의 교유에 뒤떨어짐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나같이 재주 없는 작가에게 있어 ‘걸어다니는 사전’의 역할을 해주는 인물이었고, 걸찍한 입담과 더불어 신선한 소개가 되어주는 인물이었다.
그는 6․25 때 대천으로 이사오면서 대남 초등학교로 전학했는데, 이때 이미 그의 걸찍하고 넉살좋은 입담이 드러나기 시작하였고, 더불어 특유의 붙임성과 눈썰미가 뛰어났기 때문에 대남 초등학교의 명물로 이름을 날리기에 이른다. 6․25를 전후하여 한내에 들락거리던 서커스 곡마단이나 영화상영을 놓치지 않고 봐대던 유자를 내가 만난 것은 중학교에서였으나, 3년 내내 알며 지내지 못하였다. 유자는 중학교 졸업 후 전파사에서 확성기 배선 요령 덕에 자유당 말기 야당 위원장 밑에서 지내게 되었다. 4․19혁명 뒤 선거에 당선된 위원장을 따라 서울로 상경한 그는 위원장의 식객으로 있다가 5․16을 맞아 다시 고향으로 낙향하여 군입대를 하게 되는데, 입대하러 가던 기차 속에서 우연히 읽게 된 점술책 덕에 편안한 군생활을 했을 뿐 아니라, 운전 기술을 익혀 제대 후 고향에서 택시를 몰게 되었다.
뛰어난 직업의식과 장인 기질 덕에 서울로 상경하여 재벌 그룹 총수의 승용차 운전수가 된 유자는 무명작가가 된 나와 해후하게 된다. 남들이 다들 부러워하는 그룹 총수의 운전수를 하는 그였지만, 총수의 위선적인 모습에 실망하여 그 자리를 떠나고 싶어했으며, 결국 그룹의 노선 상무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떳떳하고 속편한 직책을 맞게 되었다고 자위하며,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분명한 사리분별력을 통해 말썽 많은 교통사고를 원만하게 해결하였고, 사비를 털어 당사자들이 고마워할 인간적인 면모를 과시하기도 하고, 주변에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살아가면서도 자신이 집안 내력과 자신의 삶에 떳떳해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말년에 종합병원 원무실장을 맡은 그는 6․29 선언이 있던 그때 시위 현장에서 중상을 입은 많은 사람들을 입원시키고 병원장과 다툰 후 사표를 쓰고 퇴사한다. 이후 몸이 쇠약해져서도 남의 궂은 일을 도맡아 가며 돕던 유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가난한 이웃들을 도우려 애쓰다가 자신의 몸이 망가지고, 망가진 몸으로도 궂은일을 도맡아 하다가 저세상으로 떠나고 만다. 요령과 불의와 사기가 판을 치는 세상에 자기가 지닌 가치관에 따라 당당하게 살다 간 ‘유자’야말로 이 시대가 기려야 할 인물이기에 ‘전’을 써 기리는 것이다.
핵심 정리
- 갈래 단편 소설
- 시점 1인칭 관찰자 시점
- 배경 6․25 전쟁~ 6․29 선언이 있었던 한국
- 특징 ① 전통적인 판소리 문체를 계승함
② 부연미가 넘치는 만연체가 드러남
③ 충청도 방언과 서민적 비속어의 사용을 통해 풍자, 해학, 골 계미를 드러냄
- 주제 유자(兪子)의 인생이 주는 교훈―인간미를 잃어가는 현대적, 도시 적인 삶 속에서의 자기희생적, 인간적인 삶의 중요성
구 성
- 발단 유자라는 인물의 소개
- 전개 유자의 독특한 성장기
- 절정 서울에서의 삶과 유자의 자기희생적이고 서민적인 삶
- 결말 유자의 최후와 그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
등장 인물
- 유자 유재필. 주인공. 사대부 집안 출신이며, 동경 유학자 출신이자 남로당
당원의 아들이라는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여기고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매사에 넉살좋고 입담 걸찍한 인물.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적인 인물
- 이문구 서술자. 유자와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창이며, 10년만에 유자와
해후하였을 때는 무명 소설가. 유자의 걸찍한 입담과 특이한 삶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으며, 유자를 곁에서 그려내는 인물
- 총수 10대 재벌기업의 그룹 총수. 유자의 운전 솜씨를 인정하여
그를 자신의 승용차 운전수로 고용했으나, 위선적인 성격으로
말미암아 결국 유자를 노선 상무로 좌천시킴
이해와 감상
1991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이문구는 이 작품으로 1998년 제8회 만해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실화적인 ‘유재필’이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허구적 인물과 구성을 통해 이뤄낸 소설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인물을 회상하여 쓴 실명 소서로 작가 특유의 걸쭉한 입담을 통해서 힘겨운 시대를 당당하게 살아간 의기로운 인물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서술자는 ‘유재필’ 씨를 평범하게 ‘유가’ 라고 부르지 않고, 마치 성인군자를 대하는 기분으로 ‘공자(孔子)’, ‘맹자(孟子)’하듯이 ‘유자(兪子)’라고 부르기로 하는데, 이렇듯 이 작품의 서술자는 ‘유자’를 단순히 한 시대의 기인으로 회상하여 그를 서술해 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 시대에는 이미 흔히 찾기 어려워진 존경할 만한 인물로서 평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유자(兪子)’라는 인물의 작은〔小〕 전기〔傳〕문 형태를 띠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그래서 이 작품은 한 인물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일대기적으로 그려내고 있음은 물론, 그 인물의 언행과 관련된 작은 이야깃거리들을 엮어내어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회상체의 수필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러한 서술 태도는 작품 속의 인물 이야기를 좀더 현실감 있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진실성도 아울러 획득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이 아무리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하더라도, ‘유자(兪子)’라는 인물의 성격에 대한 부분이나 줄거리상 진행되는 이야기들이 허구적인 구성 방식과 객관화한 서술자로 인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소설적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 ‘유자(兪子)’는 심성이 맑고 깨끗하고 매사에 생각이 깊고 침착하여 많은 문인들의 친구가 되었으며, 충청도 어휘의 보고였다고 회상되고 있다. 이러한 주인공의 특징은 작가라는 서술자의 특징으로 인해 유감없이 발휘된다. 주인공의 특징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구현되는 충청도 사투리와 서민적인 비속어는 현장감을 획득할 뿐만 아니라, 서민적인 주인공 ‘유자(兪子)’의 성격과 인물 특성까지도 암시한다.
이러한, 주인공의 걸찍한 입담은 전통 사회의 문화적 흔적이다. 판소리, 탈춤과 같은 전통적 예술 장르의 해학적 골계미와 풍자성이 짙은 문체를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은 판소리와 같은 예술을 뛰어넘어 조상들의 삶의 모습으로 확대된다.
또한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한국이 현대사로서 복잡다단하고 급박하게 변해 왔던 역사이다. 6․25 전쟁과 휴전, 자유당 정권 말기와 4․19혁명, 5․16쿠데타를 거쳐 80년대와 6․29까지……. 굵직한 한국 현대사의 길목에서, 산업화와 도시화로 급변한 우리네 삶의 가치관을, 전근대적이지만 인간적인 주인공 ‘유자(兪子)’의 삶을 통해 비판,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우리 문학의 정체성과 전통성 확보를 통해 세계문학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