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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1 ○子曰關雎樂而不淫哀而不傷(樂音洛)
子曰: 關雎는 樂而不淫하고 哀而不傷이도다!
關雎周南國風詩之首篇也淫者樂之過而失其正者也傷者哀之過而害於和者也關雎之詩言后妃之德宜配君子求之未得則不能無寤寐反側之憂求而得之則宜其有琴瑟鐘鼓之樂盖其憂雖深而不害於和其樂雖盛而不失其正故夫子稱之如此欲學者玩其辭審其音而有以識其性情之正也
關雎는 周南 國風詩의 首篇이다. 淫者는 樂之過하여 그 正을 失한 것이다. 傷者는 哀之過하여 和에 害인 것이다. 關雎之詩는 ‘后妃之德은 君子와 配함이 宜함이니, 求之에 未得이면 則 能히 寤寐와 反側의 憂가 없을 수 없고, 求而得之일지면 則 그 琴瑟과 鐘鼓의 樂으로 有함이 宜함이로다.’라 言한 것이다. 대개 그 憂함이 비록 深일지라도 和에 害하지 않고, 그 樂함이 비록 盛일지라도 그 正을 失하지 않기 때문에, 故로 夫子께서 그것을 稱之하시기를 如此와 같이하신 것이다. 欲學者가 그 辭에 玩하고 그 音에 審일지면, 그 性情之正을 識함이 有일 것이다.
*참고: 關雎(周南)
國風一
國者 諸侯所封之域 而風者 民俗歌謠之詩也. 謂之風者 以其被上之化 以有言而其言又足以感人 如物因風之動以有聲 而其聲又足以動物也. 是以諸侯采之 以貢於天子 天子受之 而列於樂官 於以考其俗尙之美惡 而知其政治之得失焉. 舊說二南爲正風 所以用之閨門鄕黨邦國 而化天下也. 十三國爲變風 則亦領在樂官以時存肄 備觀省而垂監戒耳. 合之凡十五國云.國이라는 것은 제후가 천자로부터 봉해 받은 지역이고, 風이라는 것은 민속 가요의 시이다. 風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윗사람의 교화를 입었기 때문이며, 有言함에 그 言이 또한 족히 사람들을 감화시키기 때문이니, 마치 사물이 바람의 움직임으로 인하여 소리를 내고, 그 소리가 또한 족히 사물을 감동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러므로 제후가 그것을 채집하여 천자에게 바치면 천자는 그것을 받아 악관에게 列케 하고, 그 시속(時俗)에서 숭상하는 바의 美惡을 고찰로서 하는 데에서 그 정치의 득실(得失)을 알 수 있었다. 구설(舊說)에 二南(주남, 소남)은 정풍(正風)이 되니, 집안의 규방(閨房)이나 동네의 향당(鄕黨) 또는 나라 안에서 쓰여졌기에 천하를 교화시킬 수 있었던 까닭인 것이다. 나머지 13국은 변풍(變風)이 되니, 즉 또한 악관으로 하여금(領) 時로서 연주(肄:익힐이)를 存하도록 在하게 하여, 살핌과 성찰을 갖추어서 감독과 경계를 드리우게 하였을 뿐이었다라 하였다.
周南 一之一
周 國名 南 南方諸侯之國也. 周國 本在禹貢雍州境內岐山之陽 后稷十三世孫 古公亶父 始居其地 傳子王季歷至孫文王昌 辟國寖廣. 於是徙都于豐 而分岐周故地 以爲周公旦召公奭之采邑. 且使周公 爲政於國中 而召公 宣布於諸侯. 於是德化大成於內 而南方諸侯之國 江沱汝漢之間 莫不從化 蓋三分天下而有其二焉. 至子武王發 又遷于鎬 遂克商而有天下. 武王崩 子成王誦立 周公相之 制作禮樂 乃采文王之世 風化所及民俗之詩 被之筦弦 以爲房中之樂 而又推之以及於鄕黨邦國 所以著名先王風俗之盛 而使天下後世之修身齊家治國平天下者 皆得以取法焉. 蓋其得之國中者 雜以南國之詩 而謂之周南 言自天子之國 而被於諸侯 不但國中而已也. 其得之南國者 則直謂之召南 言自方伯之國 被於南方 而不敢以繫于天子也. 岐周 在今鳳翔府岐山縣. 豐 在今京兆府鄠縣終南山北. 南方之國 卽今興元府京西湖北等路諸州. 鎬 在豐東二十五里. 小序曰 關雎麟趾之化 王者之風 故繫之周公. 南 言化自北而南也. 鵲巢騶虞之德 諸侯之風也. 先王之所以敎 故繫之召公 斯言得之矣.周는 나라 이름이고, 南은 남쪽의 제후의 나라이다. 주나라는 본래 우임금이 구주(九州)로 나눈(禹貢) 옹주(雍州)의 경내 기산의 남쪽(陽)에 在하였으니, 후직(后稷:성은 姬, 이름은 棄)의 13대손 고공단보(후에 太王으로 불림)가 처음으로 그 지역에 거쳐하였고, 3남인 王季 歷(장자太白, 차남虞仲)에게 왕위를 전해주어 손자인 문왕 昌에 이르러서 나라를 개간하여 점차로 넓혀 나아갔다. 이때에 수도를 풍땅으로 옮겨서, 기주의 옛땅과 분리하여 주공 단과 소공 석의 채읍으로 삼았다. 또 주공으로 하여금 주나라 안의 정치를 담당하게 하고, 소공으로 하여금 제후들에게 宣布케 하였다. 이때에 덕(德)의 교화가 나라 안에 크게 이루어졌으며, 남쪽의 제후의 나라인 양자강, 타수, 여수, 한수의 사이에는 아무도 교화를 따르지 않음이 없게 되었으니, 대개 천하를 3등분으로 나누어 그곳에서 그 둘을 차지하였다. 자식 무왕 發에 이르러 또 호경으로 천도하여, 드디어 상나라를 이기고 천하를 차지하였다. 무왕이 돌아가시자 자식인 성왕 송(誦)을 세우니, 주공이 그를 도와 예(禮)와 악(樂)을 제정하였다. 이내 문왕 당세의 풍화(風化)가 민속에 미친 바의 시를 채집하여, 筦(피리관)과 弦에 연주해보게 하여 방중(房中)의 음악으로 삼고 또 미루어나가 향당(鄕黨)과 邦國에까지 及하였으니, 선왕(先王)의 풍속이 성대하였음을 저명하게 하여 천하 후세의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하려는 자들로 하여금 모두 그것에서 법으로 취할 수 있게 하고자한 까닭이었던 것이다. 대개 그 나라 안에서 채집한 것을 남쪽나라의 시와 섞어서 주남이라고 불렀으니, 천자의 나라로부터 하여 제후의 나라에까지 교화를 입어 다만 國中일뿐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 남쪽의 나라에서만 채집한 것을 즉 곧바로 소남이라 불렀으니, 방백(方伯)의 나라로부터 하여 남쪽의 나라에까지 교화를 입었으나 감히 천자와 연계할 수 없었음을 말한 것이다. 岐周는 지금(남송 주자의 시대) 봉상부 기산현에 在하고, 豐은 지금 경조부 호현 종남산의 북쪽에 在한다. 남방의 나라는 즉 지금의 흥원부 경서호북등로(京西湖北等路)의 諸州이다. 호경(鎬)은 풍 땅 동쪽 25리(里)에 在한다. 毛氏傳의 편마다 있는 서문(小序)에 왈: 관저와 인지까지(주남편)의 교화는 천자의 풍이기 때문에 고로 주공과 연계하였다. 南은 교화가 북으로부터 남으로 이루어졌음을 말한다. 작소와 추우까지(소남)의 덕은 제후의 풍으로, 선왕들이 가르쳤던 바이기 때문에 고로 소공과 연계하였다라 하니, 이 言이 得之로다.
1.關雎
○關關雎(저)鳩 在河之洲로다. 窈窕淑女 君子好逑로다. (關雎-01)關關히 우는 저구새여! 黃河의 모래톱위에 노니는도다. 얌전하고 조용한 아가씨는 君子의 좋은 배필이로다.
興也. 關關 雌雄相應之和聲也. 雎鳩 水鳥 一名王雎 狀類鳧鷖 今江淮間有之. 生有定偶 而不相亂 偶常並遊 而不相狎 故毛傳以爲摯而有別. 列女傳以爲人未嘗見其乘居而匹處者 蓋其性然也. 河 北方流水之通名. 洲 水中可居之地也. 窈窕 幽閑之意. 淑 善也. 女者 未嫁之稱 蓋指文王之妃大姒 爲處子時而言也. 君子則指文王也. 好 亦善也. 逑 匹也. 毛傳之摯字 與至通 言其情意深至也. ○興者 先言他物 以引起所詠之詞也. 周之文王 生有聖德 又得聖女姒氏 以爲之配. 宮中之人 於其始至 見其有幽閑貞靜之德 故作是詩. 言 彼關關然之雎鳩 則相與和鳴於河洲之上矣. 此窈窕之淑女 則豈非君子之善匹乎. 言其相與和樂而恭敬 亦若雎鳩之情摯 而有別也. 後凡言興者 其文意 皆放此云. 漢匡衡 曰窈窕淑女 君子好逑 言能致其貞淑 不貳其操 情欲之感 無介乎容儀 宴私之意 不形乎動靜 夫然後 可以配至尊而爲宗廟主 此綱紀之首 王敎之端也 可謂善說詩矣.흥체이다. 關關은 암수가 상응하여 화평하게 우는 소리이다. 雎鳩는 물에 사는 새로 일명 王雎라고도 하며, 狀이 鳧鷖(오리부,갈매기예)와 類이며, 지금 양자강과 회수 사이에 산다. 태어나서 정해진 짝이 있으면 서로 문란하지 않으며, 짝이 항상 나란히 노닐어도 서로 친압(親狎)하지 않는다. 故로 毛傳에서는 摯를 삼아서 有別로서 여겼고, 列女傳에서는 人이 일찍이 그 乘居(날아오르고 땅에 머무름)함에 匹로 處함을 見하지 못한 것으로 여긴 것은 대개 그 性이 然이기 때문인 것이다. 河는 북방에서 흐르는 물줄기의 통칭의 이름이다. 洲는 물속에 가히 거쳐할 만한 땅이다. 窈窕는 (여자의 인품이)그윽하고 한가한 의미이다. 淑은 착함이다. 女라는 것은 아직 시집가지 않은 것을 칭한 것으로 대개 문왕의 비 태사(大姒)를 가리키며, 처녀 때를 위하여 말한 것이다. 君子는 즉 문왕을 가리킨다. 好는 또한 좋음이다. 逑(구)는 짝이다. 毛傳의 摯字는 至의 의미와 더불어 통용되니, 그 성정의 의도가 깊고도 지극함을 말한다. ○興이라는 것은 먼저 다른 사물에 말한 것을 인용함으로서, 읊조리고자 하는 바의 시상(詞)을 일으키는 것이다. 주의 문왕은 나면서부터 성인(聖人)의 덕(德)을 지니셨고, 또 성인 성품의 여자 태사를 얻음으로서 짝으로 삼으셨다. 궁중의 사람들이 그 처음 궁에 이르름에, 그 유한(幽閑)하고 정정(貞靜)의 덕(德)이 있음을 보았기 때문에 이 시를 지었다. <저 관관히 우는 물수리는 즉 서로 더불어 황하가의 모래톱 위에서 화평하니, 이 요조숙녀는 즉 어찌 군자의 좋은 배필이 아니겠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그 서로 더불어 화락하고 공경함이 또한 마치 저구새의 성정이 지극하여 有別이 있는 듯함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뒤에도 무릇 흥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시문(詩文)의 의미가 모두 이와 같음을 말하는 것이다. 한나라 광형 왈: <窈窕淑女 君子好逑라는 것은 능히 그 정숙함을 이루어 나가 그 지조를 두 갈래로 하지 않고, 성정과 욕구의 감정이 예의(禮儀)의 몸가짐에 끼임이 없게 하고, 편안히 여기고 사사로운 감정을 동정(動靜)지간에 나타나지 않게 하여야 함을 言한 것이니, 무릇 그런 연후에라야 가히 지극히 높은 사람의 배필이 될 수 있고 종묘의 주인이 될 수 있다.>라 하니, 이것은 삼강오륜의 머리이며 천자가 행하는 교화(敎化)의 단서이니, 가히 시를 잘 설명하였다라 할 수 있다.
*참고: 漢匡衡
전한 동해(東海) 승(承) 사람. 자는 치규(稚圭)다. 집안은 가난했지만 공부하기를 좋아했고, 고용살이를 하면서 생계를 꾸렸다. 후창(後蒼)을 좇아 『제시(齊詩)』를 배웠고, 문학에 능했으며 『시(詩)』에 정통했다. 선재(宣帝) 때 사책갑과(射策甲科)에 합격하여 태상장고(太常掌故)에 제수되고, 평원문학(平原文學)에 올랐다. 원제(元帝) 초에 낭중(郎中)이 되었고, 박사(博士)와 급사중(給事中)으로 옮겼다. 글을 올려 시정(時政)을 논했는데, 경의(經義)와 잘 상부했다.
광록훈(光祿勳)과 어사대부(御史大夫)를 역임했다. 원제 건소(建昭) 3년(기원전 36) 승상(丞相)이 되어 낙안후(樂安侯)에 봉해졌다. 성제(成帝)가 즉위하자 왕존(王尊)에게 탄핵을 당했다. 성제 건시(建始) 3년(기원전 30) 봉국(封國)의 전조(田租)를 과다하게 거둔 죄로 면직되어 서인(庶人)이 되었다. 육경(六經) 외에도 『논어』와 『효경』을 숭상했다. 특히 『시경』을 잘 해설했다. 사단(師丹)과 복리(伏理), 만창(滿昌) 등에게 학문을 전수하여 광씨제시학(匡氏齊詩學)을 개창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광형 [匡衡] (중국역대인명사전, 2010.1.20, 이회문화사)
○參差(치)荇菜를 左右流之로다. 窈窕淑女를 寤寐求之로다. 求之不得이라 寤寐思服하야 悠哉悠哉라 輾轉反側하소서. (關雎-02)
올망졸망한 행채(荇菜)를, 左右로 흔드는도다. 얌전하고 조용한 아가씨를, 자나 깨나 구하는도다. 구하여도 얻지 못한지라, 자나 깨나 그리워하고 쫓고자한지가, 오래토록 오래토록인지라, 이리뒤척 저리뒤척 애닳기만 하도다.
興也. 參差 長短不齊之貌. 荇 接余也 根生水底 莖如釵股 上靑下白 葉紫赤 圓徑寸餘 浮在水面 或左或右 言無方也. 流 順水之流而取之也. 或寤或寐 言無時也. 服 猶懷也. 悠 長也. 輾者 轉之半. 轉者 輾之周. 反者 輾之過. 側者 轉之留. 皆臥不安席之意. ○此章 本其未得而言 彼參差之荇菜則當左右無方以流之矣. 此窈窕之淑女則當寤寐不忘以求之矣. 蓋此人此德 世不常有 求之不得 則無以配君子而成其內治之美 故其憂思之深 不能自已 至於如此也.興체이다. 參差(차별치)는 장단(長短)이 가지런하지 않는 모양이다. 荇은 接余라는 식물이니, 뿌리는 물 바닥에서 자라고 줄기는 마치 비녀(釵:채)의 다리와 같으며, 위는 푸르고 아래는 하얗다. 잎은 자적색이고 둘레 지름이 한 치 남짓이며 수면 위에 떠있다. 혹은 오른 쪽으로 하고 혹은 왼쪽으로 한다는 것은 일정한 방향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流는 물의 흐름에 順하여 그것을 취하는 것이다. 혹은 자고 혹은 깸은 정해진 때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服(쫓을복)은 품을 懷와 같다. 悠는 길게 함이다. 輾者는 轉之半인 것이고 轉者는 輾之周인 것이며, 反者는 輾之過이고 側者는 轉之留이니, 모두 누워도 자리가 편안치 않다는 뜻이다. ○ 이장은 그 아직 얻지 못함에 근본하여, 저 參差之荇菜는 즉 좌우로 일정한 방향이 없이 흐름에 해당하고, 이 窈窕之淑女는 즉 자나 깨나 잊지 못하고 구함에 해당함을 말한 것이다. 대개 이와 같은 사람과 이와 같은 덕은 세상에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니, 구해도 얻지 못하면 군자의 짝이 되어 그 내치(內治)의 아름다움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근심하고 그리워하기를 깊게 하여, 능히 스스로 그치지 못하고 이와 같음에 이른 것이다.
○參差(치)荇菜를 左右采之로다. 窈窕淑女를 琴瑟友之로다. 參差荇菜를 左右芼之로다. 窈窕淑女를 鐘鼓樂之로다. (關雎-03)올망졸망한 행채를, 左右로 뜯음이로다. 얌전하고 조용한 아가씨를, 금슬(琴瑟)로서 맞이함(友之)이로다. 올망졸망한 행채를, 左右로 삶음이로다. 얌전하고 조용한 아가씨를, 종고(鐘鼓)로서 즐김(樂之)이로다.
興也. 采 取而擇之也. 芼 熟而薦之也. 琴 五弦 或七弦. 瑟 二十五弦. 皆絲屬 樂之小者也. 友者 親愛之意也. 鐘 金屬. 鼓 革屬 樂之大者也. 樂則和平之極也. ○此章 据今始得而言 彼參差之荇菜 旣得之則當采擇而亨芼之矣. 此窈窕之淑女 旣得之則當親愛而娛樂之矣. 蓋此人此德 世不常有 幸而得之則有以配君子而成內治 故其喜樂尊奉之意 不能自已 又如此云.
關雎 三章 一章四句, 二章 章八句.興체이다. 采는 취해서 택하는 것이다. 芼는 삶아서 薦享하는 것이다. 琴은 五絃인데 혹은 七絃이라고도 하며, 瑟은 二十五絃으로, 모두 현악기의 등속이니 악기중의 작은 것이다. 友라는 것은 親愛한다는 뜻이다. 鐘은 금속 악기의 종류이고, 鼓는 가죽 악기의 종류이니, 악기중의 큰 것이다. 樂은 즉 화평함의 지극한 것이다. ○ 이장은 지금에야 비로소 얻었음을 근거하여, 저 參差之荇菜를 이윽고 얻었다면 즉 마땅히 采擇하여 삶아서(亨:삶을팽) 올릴 것이요, 이 窈窕之淑女를 이윽고 얻었다면 마땅히 친애하여 기쁘고 즐겁게 하여야 함을 말한 것이다. 대개 이러한 사람과 이러한 덕(德)은 세상에 항시 있는 것이 아니니, 다행으로 얻게되면 군자의 배필로 삼아서 내치(內治)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희락(喜樂)하며 존봉(尊奉)하는 뜻을 능히 스스로 그칠 수 없음이 또한 이와 같다고 말한 것이다.
關雎는 三章이니, 一章은 四句이고, 나머지 二章은 章마다 八句로 되어있다.
孔子曰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 愚謂此言爲此詩者 得其性情之正 聲氣之和也. 蓋德如雎鳩 摯而有別 則后妃性情之正 固可以見其一端矣. 至於寤寐反側 琴瑟鐘鼓 極其哀樂 而皆不過其則焉 則詩人性情之正 又可以見其全體也. 獨其聲氣之和 有不可得而聞者 雖若可恨 然學者 姑卽其詞而玩其理 以養心焉 則亦可以得學詩之本矣. ○匡衡曰 妃匹之際 生民之始 萬福之原 婚姻之禮正然後 品物遂而天命全 孔子論詩 以關雎爲始 言大上者 民之父母 后夫人之行 不侔乎天地 則無以奉神靈之統 而理萬物之宜 自上世以來 三大興廢 未有不由此者也.공자왈: <關雎는 즐거우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슬프되 상해하지 않는다.>라 하시니, 내가 살펴 말하건대, 이것은 이 시를 지은 자가 그 성정(性情)의 바름과 성기(聲氣)의 和를 얻었음에 말씀하신 것이다. 대개 덕(德)이 마치 저구(雎鳩)새와 같이 지극하면서도 분별이 있으니, 즉 후비(后妃)의 성정(性情)의 바름을 진실로 가히 그 일단(一端)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전전반측(輾轉反側)하고 금슬(琴瑟)과 종고(鐘鼓)를 연주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그 애락(哀樂)함을 극진히 하여도 모두 그것의 그 법칙에 넘지 않았으니, 즉 시인의 성정의 바름을 또한 가히 그 전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유독 그 성기(聲氣)의 화함을 들을 수 없음이 있는 것이 비록 한탄스러운 것 같으나, 배우는 자가 우선 그 노랫말에 나아가 그 이치를 자세히 살펴 그것에서 선한 마음을 기른다면, 또한 가히 시(詩)를 배우는 근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광형왈: 배필을 정할 때는 생민(生民)의 처음이요 만복의 근원이니, 혼인의 예가 바른 연후에 사물의 품격을 이루어 천명(天命)을 온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공자께서 시를 논하심에 관저로서 시작을 삼으신 것은, 태상(太上)者는 백성의 부모이니, 후부인(后夫人)의 행실이 천지에 가지런(侔:모)할 수 없다면 신령의 통솔을 받들어 만물의 마땅함을 다스릴 수가 없는 것이다. 上世 이래로부터 三代까지의 흥폐(興廢)가 이것에 말미암지 않은 것이 없었다.
朱子曰此詩看來是宫中人作所以形容到寤寐反側外人做不到此樂止於琴瑟鐘鼓是不淫也若沈湎淫泆則淫矣憂止於展轉反側是不傷也若憂愁哭泣則傷矣此是得性情之正○問關睢樂而不淫哀而不傷是詩人性情如此抑詩之詞意如此曰是有那情性方有那詞氣聲音○關雎是樂之卒章故曰關雎之亂亂者樂之卒章也故楚辭有亂曰是也前靣須更有但今不可考耳○南軒張氏曰哀樂情之為也而其理具於性哀而至於傷樂而至於淫是則情之流而性之汨矣樂而不淫哀而不傷發不踰則性情之正也非飬之有素者其能然乎○胡氏曰觀詩之法原其性情玩其辭語審其聲音而已今性情難知聲音不傳惟辭語可玩味爾然因其辭語可以知其性情至於播之長言被之管絃則聲音亦畧可見矣○慶源輔氏曰哀樂情也未發則性也由性之正故發乎情亦正○雙峯饒氏曰自他詩觀之言憂者常易至於悲傷如澤陂之詩曰有美一人傷如之何寤寐無為涕泗滂沱是也言樂者常易至於淫泆如溱洧之詩曰洧之外洵訏且樂惟士與女伊其相謔贈之以芍藥是也惟關雎之詩最得性情之正○雲峯胡氏曰集註於詩無邪曰使人得其性情之正指凡詩之用而言此則曰有以識性情之正獨指關雎之詩而言盖樂不淫哀不傷是詩人性情之正也如鄭衛之詩樂過而淫哀過而傷則亦有非性情之正者矣然讀者於此有所懲創則亦可以得其性情之正集註前後可以參看○勉齋黄氏曰先生晚年再改削集註止於此章
朱子曰: 此詩를 看來(보아)하건대, 是는 宫中의 人이 寤寐와 反側에 到함을 形容하게 된 所以를 作한 것이니, (宫中의) 外人은 此에 到할 수 없는 못하는 것이다. 樂이 琴瑟鐘鼓에 止하였으니 是는 不淫인 것이나, 만일 沈湎淫泆(빠질면,넘쳐흐를일)일지면 則 淫인 것이다. 憂가 展轉反側에 止하였으니 是는 不傷인 것이나, 만일 憂愁哭泣일지면 則 傷인 것이다. 此가 이렇게 性情之正을 得한 것이다. ○問컨대, 關睢의 樂而不淫과 哀而不傷은 이렇게 詩人의 性情이 如此한 것입니까? 抑이면 詩之詞意가 如此한 것입니까? 曰: 이렇게 那의 情性이 有일지면 바야흐로 那의 詞氣와 聲音이 有인 것이다. ○關雎 是는 樂之卒章인 것이니, 故로 曰하기를 關雎之亂이라고 하였습니다. 亂(詩歌의 全篇의 大指를 要約한 卒章)者는 樂之卒章인 것이기에, 故로 楚辭에도 有亂인 것입니다. 曰: 是이다. 또한 前靣에 반드시 다시 (初中의 樂節이) 有이었을 것이나, 다만 今에 可히 考할 수 없을 뿐이로다. ○南軒張氏曰: 哀樂은 情이 為하는 것이나 또한 그 理가 性에 具하여져 있는 것이다. 哀而至於傷하고 樂而至於淫일지면, 是는 則 情之流이여서 性之汨(빠질멱)인 것이다. 樂而不淫하고 哀而不傷함은 發함마다 不踰則으로 性情之正인 것이니, 飬함의 有素者가 아닐지면 그 能히 그러할 수가 있겠는가? ○胡氏曰: 觀詩之法은 그 性情에 原하고, 그 辭語에 玩하며, 그 聲音에 審할 뿐인 것이다. 今에 性情엔 難知하고 聲音은 不傳이나, 오직 辭語에만 可히 玩味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辭語에 因일지면 可히 그 性情을 知할 수 있으니, 長言(길게 늘어놓음)에 播之(뿌릴파)하고 管絃에 被之하는데에 至일지면 則 聲音도 또한 畧으로 可히 見할 수 있는 것이다. ○慶源輔氏曰: 哀樂은 情인 것이나, 未發일지면 則 性인 것이다. 性之正으로 由하기 때문에, 故로 情으로 發함마다 또한 正인 것이다. ○雙峯饒氏曰: 他詩로부터 觀之일지면, 言憂者엔 常으로 悲傷에 易至하니, 마치 澤陂之詩에서 曰한 ‘有美一人이여 傷如之何오. 寤寐無爲하야 涕泗滂沱호라.’와 같은 것이 是이다. 言樂者엔 常으로 淫泆에 易至하니, 마치 溱洧之詩에서 曰한 ‘洧之外는 洵訏且樂이라 하야 維士與女 伊其相謔하야 贈之以勺藥이로다.’과 같은 것이 是이다. 오직 關雎之詩만이 最로 性情之正을 得인 것이다. ○雲峯胡氏曰: 集註의 ‘詩無邪’에 曰하기를 ‘使人得其性情之正’이라 하였으니, 凡詩之用에 指하여 言한 것이다. 此에서는 則 ‘有以識性情之正’이라 曰하였으니, 關雎之詩만을 獨指하여 言한 것이다. 대개 樂不淫과 哀不傷은 이렇게 詩人의 性情이 正인 것이나, 마치 鄭衛之詩의 樂過而淫과 哀過而傷과 같은 것은 則 또한 非性情之正이 有인 것이지만, 그러나 讀者가 此에서 懲創하는 바를 有일지면 則 또한 可히 그 性情之正을 得할 수 있는 것이다. 集註의 前後를 可히 參看하여야 할 것이다. ○勉齋黄氏曰: 先生께서 晚年에 集註의 削을 再改하심은 此章에서 止하였다.
*楚辭:
한(漢)나라 때에 유향(劉向)이 굴원(屈原)·송옥(宋玉) 및 가의(賈誼)·회남소산(淮南小山) 등이 지은 사부(辭賦)를 모아서 ‘초사’라고 부름. 이는 남방(南方) 문학(文學)의 대표(代表)로서 왕일(王逸)이래로 여기에 주(注)를 단 사람이 아주 많음(출처:다음사전)
*참고: 關雎之亂(태백15)子曰 師摯之始 關雎之亂 洋洋乎盈耳哉자왈: 악사 지가 처음 연주할 적에, 관저의 종장(終章)이 양양히 귀에 가득하구나!==>孔子自衛反魯而正樂 適師摯在官之初 故 樂之美盛 如此공자께서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오심에 음악을 바로잡으셨는데, 마침 악사 지가 관직의 초기였다. 고로 음악의 아름답고 성대함이 이와 같았다는 것이다.
*師摯 魯樂師 名摯也 *亂 樂之卒章也 史記曰 關雎之亂 以爲風始 *洋洋 美盛意
*참고: 亂者樂之卒章也故楚辭有亂
楚辭註(前漢의 劉向이 편집)에 曰‘亂者는 樂節之名이다.’라 하였고, 國語에 云하기를 ‘那(商頌 제1편)로서 首를 삼고 그 輯之亂에 曰하기를 <自古在昔>이라하니 輯成也라.’고 하였으니, 凡 篇章에 旣成이면 撮其大要(취할촬)하여 以爲亂辭하니라. 樂記에 曰하기를 ‘이윽고 奏하기를 文으로서 하고, 또 亂을 武로서 하나니’라 하니, 古賦의 亂은 모두 ‘卒章’이라 曰하는 것이다.
*참고: 如澤陂之詩曰有美一人傷如之何寤寐無為涕泗滂沱(澤陂)
彼澤之陂에 有蒲與荷로다. 有美一人이여 傷如之何오. 寤寐無爲하야 涕泗滂沱호라. (澤陂-01)
저 연못가의 제방에, 부들과 연잎이 있음이로다. 저 아름다운 이여!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들 어찌할 수 있으오? 자나 깨나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눈물 콧물만 흘러내리노라.
興也. 陂 澤障也. 蒲 水草 可爲席者. 荷 芙蕖也. 自目曰涕 自鼻曰泗. ○此詩之旨 與月出相類 言彼澤之陂 則有蒲與荷矣 有美一人而不可見 則雖憂傷而如之何哉. 寤寐無爲 涕泗滂沱而已矣.
興이다. 陂(피)는 澤의 제방(障)이다. 蒲는 水草이니, 가히 자리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荷는 연꽃(芙蕖)이다. 눈으로부터 내리는 것을 涕라 하고, 코로부터 내리는 것을 泗라 한다. ○ 이 詩의 뜻은 月出장과 같은 類이다. 저 연못의 제방에는 부들과 연(荷)이 있거늘, 저 아름다운 이를 가히 볼 수도 없으니, 즉 비록 憂傷해 한들 어찌할 수 있겠는가? 자나 깨나 어떤 것도 할 수가 없고 눈물 콧물만 줄줄 흐를 뿐임을 말하는 것이다. *滂沱(줄줄 흘러내는 모양)
*참고: 如溱洧之詩曰洧之外洵訏且樂惟士與女伊其相謔贈之以芍藥(溱洧)
溱與洧 方渙渙兮어늘 士與女 方秉蕑兮로다 女曰觀乎인댄 士曰旣且(저)로다. 且往觀乎인저 洧之外는 洵訏且樂이라 하야 維士與女 伊其相謔하야 贈之以勺藥이로다. (溱洧-01)
진수와 유수 넘실거리거늘, 남자와 여자 난초를 잡는도다. 여자 가서 구경하자라 말할진대, 남자 이미 가서 보았노라 하도다. 또 가서 보십시다! 유수 밖은 진실로 넓고 즐길만 하다라 하야, 오직 남자와 여자 이렇게 그 서로 희학하며, 작약으로서 선사하도다.
賦而興也. 渙渙 春水盛貌 蓋氷解而水散之時也. 蕑 蘭也 其莖葉 似澤蘭 廣而長節 節中赤 高四五尺. 且 語辭. 洵 信. 訏 大也. 勺藥 亦香草也 三月開花 芳色可愛. ○鄭國之俗 三月上巳之辰 采蘭水上 以祓除不祥 故其女問於士曰 盍往觀乎 士曰吾旣往矣 女復要之曰 且往觀乎 蓋洧水之外 其地信寬大而可樂也. 於是士女相與戱謔 且以勺藥爲贈 而結恩情之厚也. 此詩淫奔者 自叙之詞.
賦而興이다. 渙渙(흩어질환)은 봄에 물이 盛한 모양이니, 대개 얼음이 풀려서 물이 흩어지는 때일 것이다. 蕑은 蘭이니, 그 줄기와 잎이 윤택한 난초와 같고, 넓고 마디가 길며 마디 가운데에는 붉고, 높이는 4.5尺이다. 且는 語辭이다. 洵(눈물흘릴순)은 미더움이요, 訏(클우)은 大인 것이다. 勺藥은 또한 香草이니, 三月에 開花하며 꽃의 빛깔이 가히 사랑스럽다. ○ 鄭國의 風俗 중에 三月 上巳(上旬의 巳日을 일컫던 말. 뒤에는 음력 3월 3일을 말했음)의 辰에 난초를 캐어 물에 띄어보내 不祥한 것을 祓除한다. 고로 그 여자가 남자에게 물어 말하길: 어찌 가서 보지 않는가? 남자가 말하길: 내 이미 가 보았도다. 여자 다시 요구하며 왈: 또 가서 구경하자. 아마도 洧水의 밖에는 그 땅이 실로 넓고 커서 가히 즐길만 하다라 하였으니, 이때에 士女가 서로 함께 戱謔하고 또 勺藥으로서 서로 주어서 恩情의 두터움을 맺은 것이다. 이 詩는 淫奔者가 自叙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