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64)
◇ 눈에는 눈
외삼촌 부고 받고 삼십리길 나섰다가 나루터에서 발 묶인 박서방
발길 돌려 집으로 돌아왔는데…안방에서 마누라와 이진사가…
박 서방은 외삼촌 부고를 받고 헐레벌떡 삼십리 길을 나섰다가 나루터에서 발이 묶였다. 도선이 끊긴 것이다. 나루터 주막에서 대포 한잔 마시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마누라가 깰세라 살며시 삽짝을 열고 마당을 가로지르는데, 이게 무슨 소린가. 천둥소리보다 더 놀라운 소리! 마누라의 자지러지는 교성 사이사이 철퍼덕철퍼덕 진흙탕 바닥 지나가는 황소 발자국 소리!
박 서방은 낫을 찾아 들고 콰당 안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연놈이 혼비백산 이불을 뒤집어썼다. 박 서방은 호롱불을 켜고 이불을 낚아챘다.
“이 진사, 네놈이구나! 야밤에 남의 여편네와 분탕질을 하는 게 양반이 할 짓인가!”
어깨가 떡 벌어진 박 서방 목소리가 산천을 울린다. 비쩍 마른 이 진사는 꿇어앉아 싹싹 빈다.
“한번만 살려주시구려. 내 문전옥답 두마지기를 드릴 테니….”
박 서방은 이 진사 목에 낫을 걸고 물었다.
“바른 대로 말하지 않으면 피바다가 될 것이야. 이게 몇번째냐?”
“이, 이, 일곱번째….”
“처음으로 붙은 때는?”
“오년 전인가 육년 전인가….”
바로 그때, 이불 속에서 바들바들 떨던 박 서방 마누라가 얼굴을 쏙 내밀더니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하고 싶어 했나. 강제로 당했지.”
그때 박 서방 마누라는 이 진사 댁 몸종이고 이 진사는 도련님이었다. 박 서방은 이 진사의 상투를 싹둑 잘라 한손에 쥐었다.
“내일 밤 네놈 사랑방에서 만나자.”
이 진사는 바지춤을 잡고 줄행랑을 쳤다.
이튿날 밤, 이 진사와 마주앉은 박 서방이 말문을 열었다.
“나는 보릿고개에도 아쉬운 소리 않는 중농이다. 당신한테 논 두마지기 받아봐야 내 허리만 휠 뿐.”
고개를 푹 숙인 이 진사가 모깃소리만하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눈에는 눈, 코에는 코. 당신 부인과 일곱번 잠자리를 하겠소.”
박 서방이 문을 박차고 나간 후부터 이 진사는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웠다. 조신한 안방마님은 하인을 시켜 천수당 홍 의원을 불렀다. 이 진사는 부인이 잠시 나간 틈을 타 홍 의원 두 손을 잡곤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그놈이 동네방네 나발 불고 다니면, 사또에게 고발이라도 하는 날이면…. 아이고, 나는 죽습니다요.”
이튿날 홍 의원이 다시 찾아와 이 진사에게 몰래 주머니를 건네며 말했다.
“당분간 죽 한술도 입에 대지 말게. 대신 이걸 감춰두고 배고플 때 세알씩 먹어.”
아흐레가 흘렀다. 홍 의원은 고개를 흔들며 “이 진사의 목숨은 부인 손에 달렸소” 한마디를 남기고 가버렸다. 부인이 눈물을 글썽이며 이 진사에게 물었다.
“서방님 목숨이 내 손에 달렸다니요?”
이 진사는 “안 돼, 내가 죽으면 그만이지” 하다가 부인의 통사정에 못 이기는 척 모든 걸 털어놓았다.
그날 밤, 이 진사 부인은 이를 꽉 물고 박 서방 집으로 갔다. 박 서방 마누라는 친정에 가고 없었다.
이 진사 부인은 이튿날 밤에도, 그 이튿날 밤에도 박 서방 집을 찾아갔다. 그날 밤도 이 진사 부인은 눈을 감고 반듯이 누운 채 꼼짝도 않고 박 서방 혼자 씩씩거리다 내려왔다. 이 진사 부인이 가고 난 후 박 서방 혼자 중얼거렸다.
“귀부인은 원래 저 모양인가. 요분질 한번 하지 않고 교성 한번 지르지 않고….”
이튿날 낮, 박 서방은 이 진사를 찾아갔다.
“원래 논 두마지기를 준다 했지요. 한마지기만 주시오. 세번으로 끝낼 테니.”
이 진사는 고개를 짤래짤래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