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를 보고
이연신, 충남가정위탁지원센터 팀장
영화의 첫 시작은 키라가 지하철에서 핑크 캐리어를 쓰다듬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처음에는 왜 캐리어를 쓰다듬고 있을까 생각했는데 영화의 마지막에 되어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는 큰 아이인 열두 살 키라, 둘째 교코, 셋째 시게루, 막내 유키가 주인공이다.
키라를 제외하고 세 아이 모두 출생신고조차 되어 있지 않다.
엄마는 키라와 함께 새집에 이사를 왔다. 집주인에게도 아들 하나라며 소개시켰다.
그리고 이삿짐 속에 있던 두 캐리어에서 시게루와 유키가 나오고 교코는 밤에 다른 사람 몰래 데려왔다.
전에 살던 집에서 아이들이 시끄럽다며 쫓겨났고 아이들이 많으면 집도 구하기 어려워 이렇게 속여 왔다.
그리고 아이들은 학교도 가지 않고 밖에는 쳐다볼 수 없게 집안에서만 보내야 한다. 아무도 모르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엄마가 일을 한다며 첫째인 키라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떠났다.
한 달 뒤 엄마가 돌아오고 다시 크리스마스에는 오겠다며 조금의 돈과 함께 또 떠났다.
엄마와 헤어지는 마지막 장면에 엄마는 키라에게 얘기한다. 엄마는 행복하면 안 되냐고…
그 이야기를 듣는 키라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자신도 행복해지고 싶다고 소리쳐보지…
키라는 자신보다 엄마를 더 사랑했던 거 같다.
그 뒤 키라는 혼자 동생들을 돌본다. 장을 봐서 동생들의 식사를 챙겨주고, 집세와 각종 공과금을 밀리지 않게 낸다.
학교를 못 가는 대신 집에서 공부도 하고, 부러운 마음에 학교 주위를 배회한다. 그러다 친구를 사귀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둘째 교코는 피아노를 치고 싶다. 장난감 피아노가 전부이고 학교가고 싶다고 엄마에게 말하지만 무시당하기 일쑤다.
동생들을 살피고 빨래도 하고 종일 집안에서만 보낸다. 셋째 시게루도 TV를 보고 장난감을 갖고 놀지만
사람 소리 들리는 밖에 나가지 못하니 보기만 해도 좋겠다.
막내는 언니 오빠들보다 더 많이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
네 남매가 엄마 없이 서로 의지하며 열심히 살아본다. 그렇지만 돈은 점점 떨어지고 전기도 수도도 차단된다.
이젠 밖에 나갈 수밖에 없다. 놀이터에서 물을 길어 오고, 놀이터 화장실을 써야 한다.
처음에는 이웃들이 보지 않게 나가지만 점점 대담해진다. 그렇더라도 누구 하나 관심 없다.
먹을 게 없어 시게루는 종이를 씹어 먹고 키라는 구걸하며 음식을 구해오지만 사는 게 쉽지 않다.
경찰에게라도 신고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키라는 동생들과 뿔뿔이 흩어질 수 없다.
그러니 경찰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다. 경찰에 신고하더라도 아이들이 헤어지지 않고 같이 살 방법은 없었을까?
학교에 가지 않고 배회하는 또는 밖에서 어른 없이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아이들의 존재조차 의심하지 않았다.
방세를 밀린 엄마를 찾아온 집주인에게 키라의 동생들이 발각되지만 친척이라는 말에 아이들만 있는 집을 의심 없이 떠난다.
의심했겠지만 책임지지 않게, 관심 두지 않는다. 아파트를 들락거리는 아이들을 이웃들은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지나친다.
아이들의 더러운 모습과 허름한 옷들은 누가 보아도 이상하지 않았을까.
몇 달째 방세가 밀린 집에 사는 아이를 왜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을까.
영화의 제목 <아무도 모른다>처럼 영화 속에서는 아무도 아이들의 존재를 모른다.
모르는 것일까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어떻게 동네에 아이들을 알고 챙기는 한 사람이 없을까.
첫째 키라는 열두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동생들을 챙기는 모습, 엄마를 걱정하는 모습이 이미 아이의 티를 벗었다.
엄마 없이 혼자 동생들을 돌보는 것에 얼마나 벅찼을지 영화를 보며 내내 가슴이 아팠다.
엄마가 돌아오겠다는 말에, 동생들과 떨어지지 않겠다는 마음에 그 모든 짐을 짊어졌다.
자신 또한 어른에게 보호를 받아야 함에도 동생들을 돌본다. 온 힘을 다해 돌본다.
엄마가 떠나며 했던 “엄마는 행복하면 안 돼?”라는 말에 영화를 보는 내가 화가 났는데 키라는 오히려 엄마를 이해해준다.
엄마의 눈물이 아이에게 또 상처와 부담을 주었다. 엄마가 짊어져야 할 몫을 아이가 짊어진 것이다.
영화 속에 들어가 키라를 안아주고 싶었다. 혼자 짊어진 짐을 내려주고 싶었다.
이 영화는 2005년도 작품이다. 아마도 그 시대상을 반영했을 것이다.
그리고 15년 이상 흐른 지금도 이런 아이들은 존재한다.
부모의 방임으로 집 속에 꽁꽁 숨어 지내는 아이들, 집안에서는 아이들을 학대하지만 밖에서는 잘해주는 척하는 부모,
아무런 보호자 없이 아이들끼리만 지내는 가정, 옆집에서 우리 동네에서 버젓이 아동학대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쉽사리 발견하지 못한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모를 수 있다고 한다.
그보다는 우리가 그런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적어서는 아닐까.
주위를 둘러보자. 보호자 없이 혼자 배회하고 있는 아이는 없는가, 허름한 옷이나 때 지난 옷을 입고 있는 아이는 없는가,
배고파 먹을 것에 정신을 빼앗긴 아이는 없는가.
아이들의 몸에 난 상처 하나 허투루 보지 말자. 아이들이 보내는 신호에 민감해져야 한다.
어떤 아이더라도 아이가 성장하고 발달하기 위한 의식주는 주어져야 하며, 학교에 가야하고,
가정 안에서 보호자의 사랑을 받으면 자라야 할 권리가 있다.
키라의 엄마가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나기 전에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책임과 역할이 먼저였음을 알았더라면,
엄마 말을 잘 듣고 집안일 척척 잘하는 아이들이 아직은 부모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엄마의 행복은 스스로 지킬 수 있지만 아이들의 행복은 누가 지켜주지 않으면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어떻게든 네 남매가 벅찬 시간을 함께 의지하며 보내지만 결국 영화 끝에 사고로 유키가 죽었다.
경찰에 신고도 못하고 병원 한번 데려가 보지 못했다.
약을 살 돈이 없어 훔쳐야만 했던 키라는 얼마나 엄마가, 어른들이 원망스러웠을지…
죽은 유키를 핑크 캐리어에 넣어 비행기가 잘 보이는 곳에 갔다. 그리고 그곳에 유키를 고이 묻어주었다.
죽어서라도 유키가 비행기를 타고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다시 키라는 두 동생들과 살아간다.
그 뒤에도 아무도 몰랐을까. 아이들이 그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척했을까.
첫 장면의 핑크 캐리어를 쓰다듬고 있는 키라의 모습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미안하다 키라야. 우리가 미안하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책자기 (책방에서 자기 책 만들기)에서 글 쓰는 이연신 선생님 기록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