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만 남은 가을 옥수수밭에서
옥수수 그루터기를 캐내다보면 하루가 검고 거칠게 저물어요
그러나 나는 기억해요
수직으로 자라 내뻗던 옥수숫대 위에 서걱대던 물살을
옥수수의 익살스런 말과 바람의 웃음을
(문태준, '가을날' 전문, 시집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있나요>)
언젠가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들른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에 찐 옥수수를 조그만 그릇에 담아 내어 주었다.
그것을 먹으면서 누군가 옥수수를 키웠던 경험을 이야기하고, 또 누구는 그 말을 받아 옥수수와 관련된 추억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서울의 도심에서는 옥수수 자라는 것을 보기 힘들지만, 조그만 소도시에서는 주변에서 자라는 옥수수를 흔히 볼 수 있다.
누군가는 집에서 키워 수확을 거두기도 한다.
이 시는 이미 옥수수를 다 수확하고, 덩그러니 자리만 차지하던 옥수숫대를 뽑아내던 기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옥수수를 수확할 때에는 그것을 쪄서 먹을 때를 기대하며 노동의 고됨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말라 비틀어져 밭에 방치된 옥수숫대는 반드시 캐내야만 그곳에 다른 작물을 심을 수 있다.
옥수수를 심은 밭이 넓다면 그것을 캐내다보면 '하루가 검고 거칠게 저물'어가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볼품없지만, 그것이 여름철의 뜨거운 볕에서 자랄 때에는 옥수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아마도 기대에 찬 모습이 아니었을까?
시인은 그리하여 옥수수 열매가 열리던 과거의 기억을 통해, '수직으로 자라 내뻗던 옥수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방치된 옥수숫대를 뽑는 것이 결코 헛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할 것이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