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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사설시조를 대상으로 논문을 작성하던 시절, 다수의 작품에 관용적으로 등장하는 '산진이, 수진이, 해동청, 보라매' 등의 단어들에 대해서 조사를 하게 되었다. 특히 남녀의 애정을 형상화한 작품들에 등장하는 이러한 대상들이 매와 관련이 잇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이후 그 용어들이 우리의 전통 매사냥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전통 매사냥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산진이’는 산에서 막 잡은 야생매를 가리키며, ‘수진이’는 매사냥에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1년 쯤 사람 손에서 길들여진 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해동청’과 ‘보라매’는 토종 매의 종류로 매우 사납고 용맹하여, 중국에서도 조선을 대표하는 매로 취급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에 대해서 기초적인 지식이 있었기에, 매 사냥꾼으로서 저자가 언급한 내용들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잇었다고 여겨진다.
이 책은 사진작가이자 매 훈련사인 저자가 매와 인연을 맺고, 그들과 교감하는 과정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내용들이 일관성이 있는 체제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매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나열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그리고 매와 관련된 내용들은 매우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었지만, 저자와 가족 혹은 주변 사람들에 관한 얘기는 비중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저자의 특징 때문이라고 이해되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겠지만, 아스퍼거 증후군의 일반적인 증상은 자폐증과 유사하며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발달장애 증후가 나타난다고 한다. 이 증상을 지닌 환자들의 경우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하고, 특정 대상에 집착하면서 사회적 교류에 지장을 받는 행동 양상을 보인다고 한다. 바로 그 때문에 특정 부문에 매우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보이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저자의 경우 매사냥이라는 분야로 표출된 것이라고 이해된다.
처음 매사냥 모임에서 매의 발에 거는 방울 사진을 발견하고, 그것을 만드는 장인과의 연락 끝에 파키스탄을 찾아가 그곳의 매 사냥 문화를 접한 것으로부터 이 책의 내용은 시작하고 있다. ‘파키스탄으로 가는 길’이라는 1장을 통해, 저자가 매사냥에 전문적으로 나서게 된 상황이 잘 그려지고 있다. 흥미로웠던 것은 매에 관한 것은 매우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저자와 그의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앞서도 지적했지만, 아마도 아스퍼거 증후군이 대인 관계와 사회화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증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1주일 예정으로 파키스탄으로 향했지만 그곳의 매사냥 문화를 접하면서 더 오래 체류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이후 저자는 매를 기르고 매와 교감하며 지냐는 생활에 접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더 먼 곳으로의 여행’이라는 제목의 2장에서는 미국과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며, 그곳의 매사냥 문화를 접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이후 ‘하강’(3장)과 ‘상승’(4장) 그리고 ‘다시 돌아온 봄의 시작’(5장)은 저자의 삶에서 겪었던 심리적 상황을 드러낸 것으로 이해된다. 이 책의 후반부에 해당되는 이 글들에서도 역시 매의 심리 상태를 묘사하고 그들과 교감하는 저자의 상황이 매우 세밀하게 서술되고 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전반부에 매사냥과 관련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거의 등장하지 않았지만, 후반부에서 결혼을 해서 아들을 낳은 후 조금씩 아들과 교감하는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아내에 대한 호칭마저 '아들의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만큼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렇지만 아들과의 교감이 증가하면서, 저자는 아마도 대인 관계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자신감을 찾아갈 수 잇을 것이라 기대된다.
이 책의 내용들은 전반적으로 일관된 스토리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매와 관련된 에피소드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그래서 매사냥에 대해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다소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관된 체제를 추구하기보다 매와 관련된 사항들을 열거하는 이 책의 서술 방식은 '의식의 흐름'에 의해 집필된 것이라고 파악될 수도 잇을 것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어린 시절 사회화에 어려움을 겪었던 저자가 자연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매사냥 문화를 접하고 그 분야의 전문가로 우뚝 서기까지의 과정이 충분히 드러나고 있다. 오히려 저자의 생각과 삶의 면모는 ‘매와 소년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라는 프롤로그의 내용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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