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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셋(corset)은 일반적으로 여성들의 허리를 가늘게 조이는 몸매 보정용 속옷을 일컫는다. 서양에서는 대략 16세기 경부터 사용이 본격화되었다고 하는데, 여성들의 코르셋 착용은 당시 사회의 여성들을 바라보는 미적 인식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즉 잘룩한 허리 그리고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를 대비시켜, 그러한 조건을 갖추는 여성이야말로 바로 아름다움의 기준인듯이 통용되었던 것이 코르셋 사용을 유행시켰던 요인이라 하겠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코르셋은 여성들의 활동을 저해하는 장치로 여겨지게 되었고, 20세기 들어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면서 일각에서 탈코르셋을 주장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했다. 최근의 탈코르셋 운동은 바로 이러한 연장선에서, 여성들을 억압하는 모든 사회적 제도와 관습에 맞서는 행동을 일컫는 용어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책은 ‘탈코르셋 인문학’을 표방하면서, 방탄소년단(BTS)의 ‘페이크 러브(Fake Love)’의 가사가 수동적인 여성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비판적인 인식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페이크 러브를 거부하는 여성들의 꽃보다 불꽃 인문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여성들도 이제는 자신의 삶을 위해 수동적인 존재인 '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불태우는 ‘불꽃’처럼 살아야 한다는 저자의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그동안 적지 않은 페미니즘 서적을 읽고 많은 공부를 했다고 자부해 왔으나, 이 책을 읽는 내내 여전히 남성인 나로서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자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너무나 오랫동안 남성중심적 사고가 지배하는 사회적 규준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였던 결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여성들의 미에 대한 관점을 비교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아름다움을 ‘우월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기에, 항상 누군가와 비교를 하면서 누가 더 나은가를 따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따지고 보니 방송 프로그램 등에서 흔히 보아왔던 내용이며, 일반 대중들은 그것을 당연한 듯이 무비판적으로 접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가 자기만의 개성이 있는 법인데, 왜 누구와 비교를 하면서 자신의 우월감 혹은 열등감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일까? 방송과 인터넷에 만연해 있는 이른바 ‘K 뷰티’라는 것이 결국 획일적인 미의 기준을 강요하는 것일 터인데, 많은 이들이 왜 그렇듯 그 내용에 깊이 빠져들게 되는 것일까? 그러한 방송이 모두 다 그릇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획일적인 기준을 강요하는 듯한 방식은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모두 5장으로 이뤄진 목차에서, 저자는 그동안의 사회적 통념이 지닌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1장에서는 ‘아름다움의 반란, 탈코르셋: 새로운 사회정의를 꿈꾸며’라는 제목으로, 최근 거세게 일고 있는 탈코르셋 운동의 의미와 그 지향점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있다. ‘아름다움’ 특히 여성의 아름다움은 기존의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만들어낸 것이기에, 그에 대한 인식의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실제로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었던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의 실질 내용도 기존의 제도와 관습이 만들어낸 허상일 수밖에 없다 할 것이다.
‘아름다움의 심리학과 진화론 : 아름다움 다시 읽기’라는 제목의 2장에서, 야구장의 치어리더를 바라보는 남성들의 시각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논의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심리학이나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 얼마나 그릇된 것인가를 다양한 사례를 들어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3장에서는 ‘꽃처럼 아름다운 여성/못생긴 꼴페미의 외모정치학’이라는 제목으로, 어느 미남대회 수상자의 인터뷰를 통해서 남성과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보편적인 시각에 대한 문제 제기를 던지고 있다. ‘남성을 위한 존재로서 여성성과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어느 철학자의 관점은 그저 판타지일 뿐이라고 단언하기도 한다.
4장에서는 ‘남성의 시각 훈련 : 음란물과 몰카 속 아름다움 감각’이라는 제목으로, 음란물 혹은 몰카에 대한 집착도 역시 그릇된 남성중심 문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제는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음란물에 대한 접근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그 향유자는 남성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제는 ‘여성들이 너의 성적 대상물이 아니라’고 외쳐야 하며, 저자는 포르노에 탐닉하는 남성들의 시각을 일컬어 ‘남성적 식인(食人)의 눈’이라 명명한다. 마지막 5장에서는 ‘아름다움과 남녀 몸의 감각적 분배’라는 제목으로, 기존에 통용되었던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에 대한 인식을 분석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에는 여기에서 나아가 ‘탈코르셋’으로 상징되는 인식의 전환을 통해, ‘여성다움/남성다움의 지각구조를 뒤흔들’어야 한다고 결론을 맺고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이론을 공부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생활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따지는 것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남성들은 어린 시절부터 남성중심적 문화와 관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살아왔기에, 여성들이 경험한 바를 충분히 공감하기가 힘들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형성된 기득권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페미니즘을 통하여 새롭게 변화하는 모습에 일종의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형제 혹은 나의 자식의 삶을 결정짓는 것일 수 있다면, 여전히 남성/여성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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