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선운사 웅장한 만세루속으로 들어가보면 못난놈들로만 짜여져 만세를 이루고 있다)
만세만세 만만세/최길하
시시한 말만 엮어달아도 맛있는 시가 되겠네 부스럭부스럭 낙엽 밟으며 가는 산짐승 소리나 씨레기 말리는 바람소리나 소소하고 시시한 것들도 도레미파솔라시도 결 맞춰 엮어달면 세상 다독이는 자장가가 되겠네
말(言)로 짓는 절(寺)을 詩라 한다하여 대웅전 법당 같은 기둥이나 대들보만 생각했지 한겨울 눈 속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선운사 동백을 보고 나오다 갑자기 만세소리가 들려 돌아보는데 만세루가 내 이마에 벼락을 치네
숯불 위에 법당을 짓고 좌탈한 부처님 다비장 준비하듯 앉혀놓고 부스러기 토막으로 군불이나 떼다가 문득 궁리해 낸 생각 자투리 토막들을 이어붙여 지은 집 백 조각 천 조각 이어붙인 조각보 같은 만세루 굽은 놈은 굽은대로 세상 맞는 아귀가 있고 모난 놈은 모난대로 맞는 틈이 있는 세상 퍼즐 마추듯 기워 만세가 된 마룻방 그 만세루가 만세만세 만만세 절문 밖을 쫓아나오며 만세를 쏟아붓네
반죽이 잘 될라는지 몰라 나 이제 유식한 말 버리고 냄새나던 인분통 내던 시골 농사꾼이나 어물전 조기비늘 긄던 충주댁 이리저리 튄 비린내 나는 비늘 같은 말이나 주워모아 만세루 같은 시를 짓겠네.
2025.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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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 맛깔진 시에 푹 빠져 봅니다.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