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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聆音察理 鑑貌辨色(영음찰리 감모변색 ) ② (백운)
【本文】 聆音察理 鑑貌辨色 영음찰리 감모변색
남의 말을 듣고서 이치를 살펴보고
용모를 비춰보아 기색을 분변한다.
【解說】
지난 시간에는 영음찰리(聆音察理)에 대하여 살펴보았는데 이번 시간에는 감모변색(鑑貌辨色)에 대하여 공부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생활함에는 관계와 관계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어떤 소리를 듣고 이치를 살필 줄도 알아야 하지만 상대방의 얼굴에 나타난 모양이나 안색을 보고도 그 기색을 살필 줄도 알아야 인간관계를 원만히 할 수 있음을 천자문은 넌지시 가르치고 있습니다.
감모변색(鑑貌辨色) 용모(容貌)를 비춰 보아 기색(氣色)을 분변(分辨)한다.
우선 글자의 자원(字源)부터 알아보고 그 뜻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감(鑑)은 금(金) + 감(監)의 형성자(形聲字)로, '감(監)'은 '비추어 보다'을 뜻입니다. 여기에 금(金)을 덧붙여 '구리거울'의 뜻을 나타냅니다.
모(貌)는 전문(篆文) 모()는 상형자(象形字)로, '백(白)'은 사람의 두부(頭部), '인(儿)'은 사람의 모양을 본떠, 이미 정신적 활동이 없는 사람의 곁모양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주문(籒文) 모()는 치(豸) + 모(皃)의 형성자(形聲字)로, '치(豸)'는 또렷한 무늬가 있는 표범의 상형(象形)으로, 모양의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따라서 모(貌)는 '사람의 얼굴'을 나타냅니다.
변(辨)은 도(刀) + 변()의 회의자(會意字)로, 두 개의 바늘과 칼로 나누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파생하여, '처리하다, 분별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색(色)은 인(人) + 절()의 회의자(會意字)로, '절()'은 무릎 꿇은 사람의 상형(象形)입니다. 무릎 꿇은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는 모양에서, 남녀의 정애(情愛)의 뜻을 나타냅니다. 파생하여 아름다운 낯빛, 채색의 뜻을 나타냅니다. 음형상(音形上)으로는 '색(嗇)ㆍ측(畟)'과 통하여, 이성(異性)을 구슬리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절()'은 '절(節)'의 본자(本字)입니다. 사람의 심정이 얼굴빛에 나타남이 부절(符節)을 맞춤과 같이 맞으므로, '인(人)'과 '절()'을 합하여 '안색(顔色)'이라는 뜻을 나타내며, 나아가서는 널리 '빛깔, 모양, 색정(色情)'의 뜻을 나타냅니다.
감모변색(鑑貌辨色)은 '용모(容貌)를 비춰 보아 기색(氣色)을 분변(分辨)한다.'는뜻입니다.
감모(鑑貌)에서 감(鑑)은 '거울 감, 거울에 비춰 볼 감, 살필 감'이고, 감자관야(鑑者觀也)라 했으니 '본다'는 뜻입니다. 모(貌)는 '모양 모, 얼굴 모, 안색(顔色) 모'이니, 감모(鑑貌)는 용모(容貌)를 비추어 본다는 뜻입니다.
변색(辨色)에서 변(辨)은 '변판야(辨判也)'라 했으니 '구별한다, 판별한다, 분별(分別)한다, 분변(分辨)한다'는 뜻입니다. 색(色)은 '빛깔'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색안색야(色顔色也)'라 했으니 안색(顔色)을 말합니다. 따라서 변색(辨色)은 안색(顔色)을 분변(分辨)한다는 뜻이니 이는 곧 기색(氣色)을 분변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감모변색(鑑貌辨色)은 '용모(容貌) 즉 안색(顔色)을 비춰보아 기색(氣色)을 분변한다'는 뜻입니다. 기색(氣色)이란 얼굴에 나타난 마음속의 생각이나 감정 따위를 말합니다. 또는 '용모와 안색을 거울삼아 상대의 심중(心中)을 살핀다'는 뜻입니다.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 그의 표정에서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상태인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얼굴에 그 표정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표정 뿐만 아니라 행동거지에도 나타납니다. 그래서 풍모(風貌)에 그 사람의 인품이 묻어나는 것입니다.
링컨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의 친구가 재주 있는 어떤 사람 하나를 소개하며 능력이 있으니 기용해 보라고 추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만나 보았는데 그의 얼굴을 보고는 한마디로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의 얼굴에 진실성이 없어 보였다는 것입니다. 얼굴에 진실성이 없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생활이 진실하지 않다는 것을 대변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링컨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나이 40세가 되면 자기 얼굴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얼굴은 그 사람의 인생과 마음가짐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불혹(不惑)의 나이가 되면 자기 확신이 서는 나이라 모든 행위에 대하여 자기관리가 철저해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가짐 행동은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게 되지요. 그러니 척 보면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링컨의 안목이 바로 감모변색(鑑貌辨色)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임금이 신하를 보면 간신(奸臣)인지 충신(忠臣)인지 볼 줄 알아야 하고 신하가 임금의 얼굴을 보면 어심(御心)이 어디로 향하는지 간파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사회생활에서도 가정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에서는 남편이든 아내이든 아니면 부모이든 자식이든, 직장에서는 상사이든 부하이든 친구이든 그들의 얼굴을 살피면 거기에 희노애락(喜怒哀樂) 뿐만 아니라 심신의 성쇠(盛衰)나 기분의 명암(明暗)까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얼굴만 잘 보아도 심기(心氣)를 파악할 수 있으니 이에 잘 대처한다면 생활에 어려움이 덜할 것입니다. 상대의 기분이 지금 어떤지도 모르고 들이대거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자칫 심기를 건드려 분난(紛亂)을 자초할 수도 있을 것이니 기색을 분변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옛날 제환공(齊桓公 BC 685~643)이 제후들을 회합하니 모두 도착했으나 위후(衛侯)만이 오지 않았습니다. 제환공(齊桓公)은 법에 의거하여 그를 죽일 것일 생각하며 궁(宮)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문득 위비(衛妃)가 비녀를 풀고 앞에 와 절을 하며 말했습니다.
"대왕이여, 청컨대 위후(衛后)의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제환공(齊桓公)이 말했습니다.
"내가 아무에게도 말한 바가 없는데 부인께서는 어떻게 나의 마음을 아십니까?" 위비(衛妃)가 말했습니다.
"첩은 세 가지 남편의 안색(顔色)을 살핍니다.
기쁘고 즐거운 안색은 만족하고 온화하며,
술과 고기를 즐기는 기운의 안색은 일없이 즐거워하고,
군사(軍事)의 기색은 얼굴 색이 장열(壯熱)하므로 그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에 위후(衛侯)를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그 뜻을 말하지 않았는데, 다음 날 관중(管中)이 조회(朝會)에 들어와서 위후(衛侯)의 죄를 사(舍)하여 주는 은혜에 감사한다 하니 제환공(齊桓公)이 말했습니다.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그것을 아는가?"
관중이 말했습니다.
"대왕의 말과 안색(顔色)의 기미(機微)로써 그것을 알았습니다."
제환공(齊桓公)이 말했습니다.
"안에는 부인(衛妃)이 있고 밖에는 관중(管中)이 있으니 무슨 근심을 하겠는가?"
이와 같이 안색을 잘 살피면 죽을 사람도 살리는 수가 있는 것이니 안색을 살피고 기색(氣色)을 분변하여 상대방의 의중을 헤아려 아는 지혜를 함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낯빛을 교묘히 꾸미는 교언영색(巧言令色)도 잘 분변할 줄 알아야 합니다.
《논어(論語)》『학이편(學而篇)』에서 공자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번지르르하게 발라맞추는 말과 알랑거리는 낯빛을 꾸미는 사람은 어진 사람이 드물다.(巧言令色 鮮矣仁)"
남의 환심을 사고자 하는 사람은 겉모습을 그럴 듯하게 꾸미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이 진실할 리가 없습니다. 진실하지 못하면 시기심과 속임수가 많게 마련이어서 배신과 모략이 나무하게 되는 것이니 교언영색(巧言令色)을 감모변색(鑑貌辨色)하는 안목(眼目)을 갖추어야 이 사회가 진실이 통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교묘한 말[巧言]과 환심을 사기 위해 꾸며진 낯빛[令色]에 속아 넘어가는 수가 많습니다. 자기의 표정을 감추고 칼을 품는 경우도 있지요. 구밀복검(口蜜腹劍)과 소리장도(笑裏藏刀)가 그것입니다.
구밀복검(口蜜腹劍)이란 '말은 달콤하나 속은 악랄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소리장도(笑裏藏刀)는 웃음 속에 칼을 숨었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웃는 낯으로 유화하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음흉한 흉계가 있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안색을 살필 때는 그것까지 알아야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구밀복검(口蜜腹劍)은 영음찰리(聆音察理)와 관계 지어 생각해 본다면 소리장도(笑裏藏刀)는 감모변색(感貌辨色)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감추어진 그 너머 진실까지 알 수 있는 혜안(慧眼)이 열린다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천자문에서 영음찰리(聆音察理)와 감모변색(鑑貌辨色)에 나타난 속뜻은 무엇일까요? 다음의 글에서 그 뜻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논어(論語)》『안연편(顔淵篇)』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장(子張)이 물었습니다.
"선비는 어떻게 하면 통달(通達)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말하는 통달이란 무슨 뜻이냐?"
이에 자장이 대답하였습니다.
"나랏일을 하게 되어도 이름이 나고, 집안에 있어도 이름이 나는 것을 말합니다."
공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명성(名聲)이지 통달(通達)한 것은 아니다.(是聞也 非達也)
진실로 통달한 이는 소박ㆍ정직하고, 의로움을 좋아하며,(夫達也者 質直而好義)
남의 말과 안색을 헤아리고 살피며,(察言而觀色)
생각은 깊고 몸가짐은 겸손하다.(慮以下人)
그러므로 나랏일을 하거나 집안에 있어도 반드시 통달하게 되는 것이다.(在邦必達 在家必達)
그러나 명성을 바라는 사람은(夫聞也者)
겉으로는 인도(仁道)를 행하는 척하면서도 행동은 어긋나며,(色取仁而行違)
그렇게 살면서도 아무런 의혹도 없는 것이다.(居之不疑)
따라서 이런 사람은 나랏일을 하거나 집안에 있으나 겉으로만 헛된 명성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在邦必聞 在家必聞)"
여기에서 통달한 사람이란 헛된 명성을 추구하지 않는 성품이 질박하고 정직하며 의로움을 사랑하며 남의 말과 안색을 헤아리고 살펴서 그들을 잘 이해하며 사려가 깊고 겸손한 이를 말합니다. 즉 인의(仁義)를 갖춘 군자(君子)를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통달(通達)이란 말은 불교에서 말하는 분별이 없는 지혜가 열려서 마음의 실성(實性)인 진여(眞如)의 이치를 훤히 아는 지혜의 완성인 해탈ㆍ열반(解脫涅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대인관계에서 사람구실을 할 수 있는 인격과 도덕성을 완벽히 갖추는 것을 말합니다.
공자님의 말씀 중에 '찰언이관색(察言而觀色)'은 바로 '영음찰리(聆音察理)'와 '감모변색(鑑貌辨色)'과 통하는 말이니, 이는 바로 인의(仁義)를 갖춘 군자가 취하는 마음의 자세라 할 것입니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면 그의 말을 바르게 헤아리고 잘 이해하며 남의 얼굴빛을 보고 그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도량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영음찰리(聆音察理)'와 '감모변색(鑑貌辨色)'을 통해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남이 무슨 말을 할 때는 잘 경청하여 그 뜻을 헤아리고 그 사람의 안색을 잘 살펴서, 그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넉넉하고 지혜로운 성품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가정에선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일가친척, 사회에 나가면 친구와 동료, 상사와 부하 등 얽히고 설킨 관계 속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관계를 상호 신뢰 속에서 도탑고 원만하게 생활하기 위해서는 남이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을 경청하여 그 뜻을 헤아리고 용모와 기색을 잘 살펴서 그 의중을 파악하고 헤아릴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은 언제나 진실하여 나를 보는 이들로 하여금 믿음직하게 보이도록 정심정행(正心正行)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바른 마음, 바른 행위로 늘 얼굴빛이 환하게 빛나기를 바랍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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