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동갑인 순이네는 우리집 건너편에 살았다.
무서운 과부아주머니) 밭 너머로 보이는...
(과부 아주머니는 밭에 농사를 지으시고는, 눈에 불으켜고 지키셨다.
혹시 누가 농사 심어놓은 밭을 밟기라도 하면
아주 혼을 내 주셨다.)
순이 어머니는 키가 크시고 체구가 크신 시골 아주머니 셨다.
시골에서 교육을 받으신 아주 곱상한 미남이신 순이아버지와 결혼을 하셨는데
순이 아버지가 서울에 혼자와서 은행에 취직을 하시고는
시골에 아내와 아들을 서울로 데려올 생각을 안하셨다 한다.
그래서 순이 어머니는 큰아들 환이를 업고
무조건 남편있는 서울로 오셨다 한다.
순이어머니는 처음에는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교회에 다니셨는데
어느때 부터인지 교회를 다니시지 않으셨다.
동네에 마실도 다니시지 않고
동네아줌마들 모여 수다도 떨고 하는데 끼시는것 본 적은 없는데
부침성 있는 엄마가 순이네 가끔씩 찾아 가시곤 했는데
순이엄마가 시원시원하게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시곤 하셨던것 같다.
순이 어머니는 힘이 세시고 부지런 하셔서
집안은 언제나 반들 반들 깨끗했고..
음식솜씨도 뛰어나셔서
훗날 맏아들이 결혼한 후에도
"엄마 음식좀 해 주세요"
부탁을 하면
빠른 솜씨로 척척 음식을 만드셔
깨를 위에 훌훌 뿌려내 놓으시는데
우리엄마 말씀에 의하면
너무나 맛갈스러워 보이고 참 맛있었다 합니다.
순이도 엄마를 닮아서 키가 크고 손이 빨라
그 옛날 순이랑 나물을 뜯으러 들에 나가면
순이는 싱싱하고 탐스러운 나물을 한 바구니 가득 뜯은사이
나는 시들어 빠지고 비실 비실한 나물을 조금 뜯곤 했었다.
동네 여자애들과 편먹고 고무줄 놀이를 해도
순이는 누구보다 몸이 빠르고 높이 뛰곤해서
애들이 모두 순이와 한편이 되기를 원했는대
키작고 운동신경이 둔한 나는 아무도 자기편에 끼어주기를 원하지 않고
"효숙이는 깍두기 시키자"
그래서 나는 깍두기로 이편 저편에서 조금 뛰다가.. 애들 고무줄 하는것 보기만 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시절(1956?), 순이가 운동을 했으면 크게 성공했을것 같다.
순이 어머니는 평생 꽁생원 은행원이신 남편에 기대지 않고
열심히 주위에서 돈벌이 길을 찾으셨다.
뻐스정류장근처 동네 입구 큰 밭에 운전면허 시험장이 생겼을때
순이엄마는 근처에 집을 짓고 운전면허 시험장 직원들, 손님들등을 상대로
밥장사를 하셨었다.
순이엄마는 또 중량교에서 시골길로 내려오는 허허벌판 도로 중간에 헌병초소가 생겼을때
옆에 초소헌병들 상대로 가게를 내셨었다.
헌병들이 가게에서 필수품, 군것질등을 사가는데,
밤중에는 손님이 많지 않아서 그랬는지, 순이가 가게를 봤다.
그 때 풍문여고 1학년(16살)이던 순이가 밤중에 가게를 볼때
한 헌병이 순이를 임신을 시켰다.
요즈음 같애서는 헌병(30살?)이 16살 학생을 임신시키면
미성년자 강간(?)으로 감옥에 보내졌을 건데
1958년 그 때는 인권이니.. 그런게 허술했던것 같다.
순이 아버지는 하나밖에 없는 딸을 이화여대에 보내시는게 꿈이셨는데...
할 수 없이 노총각(?)인 산골사람 헌병과 결혼을 시키셨던것 같다.
그래서 순이는 아이 키우랴...더이상 학교는 못 다닌것 같다
우리가 중화동에서 이사를 나오고
나는 미국에 와서 사느라 순이 소식은 잘 몰랐는데
후에 들으니
순이는 남편과 사이에 딸 하나를 더 낳고
남편은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몇년전 순이와 연락이 닿아, 순이한테 미국 우리집에 놀러 오랬더니
처음에는 손자 데리고 온다더니
얼마 있다가 허리가 아파서 못 온다고 연락이 왔다.
의사한테 여러번 갔었는데(동네의사?)
왜 허리가 아픈지 모르겠다고
그냥 아픈대로 살라고 했다는데...
몇년후 순이가 췌장암이라는게 밝혀졌을때는
이미 암이 너무 많이 퍼져서 손을 쓸 수가 없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순이 생전 사진을 봤는데
아주 곱게 나이가 들어 참 아름다운 중년이었다.
딸들도 참 예뻣다.
순이어머니는 5남매를 잘 키우신 장한 어머니 셨는데
순이도 딸들을 잘 키운 좋은 엄마였다.
순이 올캐말에 의하면
뭐든지.. 헌집이라도 순이가 손을 대면
반들 반들 깨끗하고 좋은 집이 된다고...
순이는 어머니닮아서 부지런하고, 솜씨좋았던것 같다.
순이가 옛날 우리 동네 세집매 (우리집, 순이네, 혁이네 세집이 삼각형으로 마주보고 있었다)에 살던
동갑인 혁이를 우연히 만났는데
"내가 너를 좋아 했었는데 너는 왜 그남자 하고 결혼을 했니?" 했다고...
얘기를 듣고, 순이가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었던것 같다.
요즈음 생각하면 순이엄마는 화통하고 시원시원하시고 경우가 밝은
존경스러운 분이셨다.
어머니를 닮은 순이도 정말 좋은 아내감이 였다.
첫댓글 순이님의 얘기가 참 속상하네요.
어찌 16살 어린 딸에게 헌병들이 드나드는 곳에
있는 가게를 어머니께서 맡기셨는지...
순이님이 이대나오고,혁이님과 결혼을 했더라면 하는 ....
그런 아쉬운 맘이 듭니다.
한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주위 환경도 좋아야 잘 살수 있는것 같아요.
순이님의 오늘 얘기도 단편소설같아요.
청이님 어린시절 친구들을 잘기억하시는군요.
그런대로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개척해 나가시는 순이님 어머님은 존경스럽지만
어린 딸을 헌병들이 드나드는 곳에서 일하게
한것이 안좋았네요.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순이님의 명복을 빕니다.
순이님 이야기 너무 슬프네요
헌병이면 아마 20대 초중반이였을껀데
어찌되었던 16살에 임신을 하게 되면서 원치않은 결혼생활이 시작되서 넘 안타깝네요
순이님 어머니도
순이님도 힘도 좋고 재주도 좋아서 요즘 세상이면 돈도 잘 벌고 잘 살수 있었을텐데
세월이 넘 아쉽고 재주가 넘 아깝고
허리아픈게 췌장암때문에 그랬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