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살면서 그때그때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어요. 혼수상태가 되어 의식회복도 못한 때도 있었고, 그런 때는 죽더라도 한이 될 것이 없지요. 다행히도 이제 공부를 좀 더하라고 그래서 지금까지 인연이 살려주어서 인연에 대해서 감사합니다마는 사실 우리 인간의 급선무가 자기 존재를 아는 것입니다. 자기 실상을 아는 것입니다. 존재의 실상을 가장 정확히 깨달으라고 하는 가르침이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 가르침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요한한테 세례를 받고 사십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기도를 모시면서 시련을 극복했습니다.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시련을 극복할 때 자기라는 아견(我見), 아집(我執)을 다 떠나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성자가 되었지요. 마호멧도 히라산 동굴에서 삼 년 동안 명상을 했습니다. 삼 년 동안 명상할 때 번뇌가 녹아져서 그래서 하늘의 계시를 받고서 그야말로 그런 위대한 성자가 되었지요. 다만 그 시대상황따라서 그때그때 적당히 방편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후대인들이 잘못 전해서 조금 이상한 대목이 있으나 적어도 세계적인 성자들은 모두가 다 기본적인 것은 공자나 노자나 소크라테스나 다 본래면목 자리, 생명의 근본자리, 모든 존재의 실상자리를 깨달은 분들이라고 봐야 됩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부처님은 구경각(究竟覺)을 성취하신 분입니다. 구경각은 무엇인가 하면 조금도 흠절이 없이 모든 것을 다 깨달아서 아는 것이 구경각입니다. 다른 성인들도 위대하나 구경각까지는 못갔다고 생각합니다. 저쪽 사람들은 조금 다르겠지요. 그러나 어떻든 간에 성자라 하는 것은 그와같이 자기 본래면목을 깨달은 사람들이고 또 성자만이 아니라 사유 활동을 할 수 있는 정신능력이 있는 우리 인간들은 누구든지 깨닫기 위한 수행을 마다할 아무런 이유가 없고 이것이 최 급선무입니다.
한 달이고 몇 달이고 참선을 하고 또는 몇 년이고 참선을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이렇게 생각이 되시겠지요. 그러나 그렇지가 않아요, 공부하는 방법을 모르고 잘못하면 참선하는 것이 하나의 고된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나 선지식들이 말씀하신대로 여법하게 공부를 할 때는 법희선열(法喜禪悅)이라, 공부하는 환희심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르게 됩니다.
참선을 잘해서 참선 가운데 나타나 있는 여러 가지 정당하고 환희로운 경계를 맛본 사람들은 그만 둘래야 둘 수가 없어요. 그와같이 매력있고 인간의 의의를 느끼는 그런 경계는 다른 데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재산이 많고 또는 명예가 있다 하더라도 그런 것은 우리가 참선에서나 기도모실 때 느끼는 그런 행복감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일반 재가불자님이나 출가 불자님들이 한 일주일쯤 이따금 기도모시러 오는데 만나보면 일주일이라도 얼굴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습니다.
가장 독스런 것이 아견(我見)입니다. 결국은 자기라는 아상(我相)이란 말입니다. 아상이 있으면 벌써 눈도 흐리고 얼굴도 흐리단 말입니다. 그러나 기도모실 때 부처님한테 의지해서 그렇게 독실하게 지내면 얼굴이 맑아지고 눈도 맑아집니다. 사람들은 근기가 약하니까 오랫동안 지속을 못합니다. 우리 불자님들, 우리가 하는 일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내 자신을 찾는 일입니다. 내 자신은 무엇인가, 참다운 자신, 참다운 자기는 자성이고 진여불성입니다. 우리가 진여불성을 그대로 증득해야 생사를 초월합니다.
우리가 진여불성을 증득하지 못하면 번뇌의 노예가 되어서 업을 짓고, 업을 지으면 내내야 삼계 내에서 뱅뱅 돌면서 지옥으로 갔다 어디로 갔다 하지요. 부처님 법을 만나지 못할 때는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행복과 영생해탈의 길로 인도하는 가르침이 있는데도 우리가 그걸 마다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결단을 내리셔야 됩니다. 결단을 내리시고 그 다음 문제는 삼학도(三學道)라, 삼학도의 관념을 항시 마음에 두고 거기에 준해서 공부를 하셔야 됩니다. 계율과 선정과 지혜가 삼학도 아닙니까? 계율이 없이 절대로 선정에 못들어갑니다. 근세에 있어 더러는 계율이 없더라도 무애행(無碍行)도 하고 아무렇게나 먹고 막행막식(莫行莫食)해서 도인이 된다 하는데 부처님 가르침이나 정통 조사의 가르침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꼭 도덕적으로 하자가 없이 계율을 지켜야 선정에 들어갑니다.
시라불청정(尸羅不淸淨) 삼매불현전(三昧不顯前)이라, 시라는 인도말로 해서 계율입니다. 계율이 청정하지 못하면 깊은 삼매에 못 들어갑니다. 깊은 삼매에 못 들어가면 그때는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미혹이나 무명 또는 칭칭 감겨있는 그런 업장이 안 녹아지는 것입니다. 이른바 심리(心理)와 생리(生理)가 온전히 녹아져야 참다운 깨달음이 온단 말입니다. 그렁저렁 사는 사람은 절대로 삼매에 못 들어갑니다. 그러기에 우리 재가불자님들은 좀 고생스러워도 육재일(六齋日)을 지키십시오. 육재일이란 것은 하다 못해 엿새만이라도 출가한 스님네같이 생활을 좀 해보라는 것입니다. 하루에 한 끼 먹고 내외간에 잠자리 같이 않고 고기도 안 먹고 술도 안먹고 말입니다.
현대가 얼마나 무서운 때입니까? 금년만 하더라도 제가 아는 사람이 암으로 해서 네 분이나 죽었어요. 암을 퇴치하려고 얼마나 몸부림칩니까마는 아직도 결국은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암이 모두다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대체로는 우리 입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또 우리 생각이 삼독심(三毒心)을 못떠납니다. 독 가운데 제일 무서운 독이 삼독심입니다. 탐욕심을 내고 진심을 내고 또는 어리석은 마음을 내고 말입니다. 진심을 내면 그 즉시에 우리 세포를 오염시킵니다. 우리 인간 세포가 지금 육십조나 있다고 합니다. 그런 세포가 없어졌다 생겼다 합니다. 그런데 그런 세포가 우리 생각 하나하나를 다 반영합니다. 좋은 생각은 우리 세포를 정화시키는 것이고 좋지 못한 생각은 우리 세포를 중독시킵니다.
따라서 내내야 암이나 무엇이나 다 우리 스스로가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잘못 먹거나 또는 잘못 생각하기에 그렇습니다. 공부하는 방법도 역시 여러 가지가 있지 않습니까? 염불만 애써 하는 그런 공부도 있고 또는 천수다리니를 외서 하는 공부도 있고 또는 화두 공안을 참구해서 하는 공부도 있지 않습니까? 다 훌륭한 성불의 법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인가 하면 우리 마음이 반야바라밀을 떠나지 않아야 됩니다. 남한테 우리가 무엇인가 베푼다 하더라도 그냥 ‘저 사람은 나보다 못사니까 불쌍하니까 베푼다’ 이러면 이것은 단순한 선행 밖에는 안됩니다. 선행을 했으니까 그런대로 과보를 받겠지요.
그러나 이른바 도업(道業)이라, 도를 성취하는 진리를 성취하는 그런 업과는 이것은 거리가 좀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본래로 둘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떠나지 않으셔야 합니다. 도둑하고 나하고도 둘이 아니고 살인 죄인하고 나하고도 둘이 아닙니다. 성품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모두가 다 일매지게 하나입니다. 거기다가 우리 마음을 두어야 됩니다. 그것이 사실이니까요. 우리 중생은 사실을 외면하고서 허상에다 우리 마음을 집착시킵니다. 모두가 나와 둘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베풀어야 참다운 보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됩니다.
부처님을 생각해서 부처님이 되어가는, 염불 공부가 사실은 제일 쉽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본래 부처인데 부처가 부처를 생각하면서 부처가 되어가니까 그때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다른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화두공안 의심하는 것도 화두공안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우리 자성을, 우리 불성을 깨닫는 하나의 방편입니다.
따라서 어떤 공부든지 간에 반야의 지혜, 천지우주 모두가 다 진여불성 아님이 없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서 화두공안을 들거나 염불을 하셔야 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렇게 하는 것도 염불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부처님은 저 밖에 계시고 우리가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을 동경하고 그러면 우리한테 가호를 준다, 이것은 참선은 못됩니다. 단순한 타력염불(他力念佛)은 돼도 참선은 못됩니다. 참다운 염불도 못됩니다. 진여불성자리, 참다운 실상자리를 떠나지 않고 하는 염불이 이른바 실상염불인 동시에 염불참선입니다. 따라서 우주에 충만해 있는 한도 끝도 없는 무량공덕을 갖춘 진여불성자리, 자성자리, 본래 주인공 자리를 놓치지 않고서 화두를 참구해야 됩니다.
그렇게 부지런히 공부해서 내년 봄에 우리가 서로 지금의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공부가 훨씬 더 진척되고 우리 마음도 몸도 그야말로 청정한 그런 불자가 되어서 서로 상봉하도록 하십시다. 부지런히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어제 여래사에 한영민거사님과 도반님들 오시여
5시간동안
차담했어요
본연주지스님이 육지에만 있어도
늘 시간내어 찾아뵐수 있는데
하필이면 뱅기타고 가는 제주도라고요
대출받았던 이야기와
출가전 화원 물난리로 하루아침 폭망한 이야기..
연천 최전방에서 군대생활하셨던 이야기랑..
속가의 형제분들이 5분이라는것도요
상좌도 없이 점점 늙어가시니 늘 걱정되신다며
제주도에서 스님이 그리 많은 책들을 우체국에 택배 발송하는데도
승복입은 스님을 제주도에선
아직도 아저씨!라고 호칭한다는 이야기부터..^^
나이들어 절간에서 만난 도반들이라며
한거사님은 은행시절 출가전 전산부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이라
그땐 상급자셨는데
인연이 남았는지
늙어서 뵙게 되네요
제가 출가했다하시니
호기심반?
진짜로?
하고 무심정사 방문하셨는데
일산이 가까운지 자주 오십니다
다들 70을 훌쩍 넘었건만
늙어도 두분은 날마다 108배 절수행하시고
한거사는 늘 아미타정근만 하는데
다아 무주선원스님덕분이라고 하셔서
훈훈한 이야기들 5시간이
미소방 한자리에서
법담을 하는데
금방 지나갔습니다
늘 무리하시지마시고
항상 건안하시길 기원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_()_
예 참 세상 넓기도 하고 좁기도 하네요 하 하
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늘
건안하십시요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행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