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殆辱近恥 林皐行卽 (태욕근치 임고행즉) ① (백운 )
【本文】 殆辱近恥 林皐幸卽 태욕근치 임고행즉
욕됨에 이르면 수치(羞恥)가 눈앞이니
산수간(山水間)에 나아감이 바람직한 일이로다.
【訓音】
殆 위태할 태 辱 욕될 욕 近 가까울 근 恥 부끄러울 치
林 수풀 림 皐 언덕 고 幸 다행 행 卽 곧 즉
【解說】
지난 시간에는 성궁기계(省躬譏誡) 총증항극(寵增抗極)에 대하여 공부하였습니다.늘 자신의 몸을 살펴서 남의 비방을 경계하라 하였습니다. 또한 총애가 날로 더하면 교만해지기 쉬우니 몸가짐을 조심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태욕근치(殆辱近恥) 임고행즉(林皐幸卽)에 대하여 공부해 보고자 합니다. 살짝 훑어봐도 요즘의 국정농단(國政壟斷) 탄핵정국(彈劾政局)의 주인공들의 처신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무슨 뜻일까 글자부터 하나하나 알아보겠습니다.
태욕근치(殆辱近恥) 욕됨에 이르면 수치(羞恥)가 눈앞이니
우선 글자의 자원(字源)부터 알아보고 그 뜻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태(殆)는 알(歹) + 태(台)의 형성자(形聲字)입니다. '알(歹)'은 '사체(死體)'의 뜻이고 '태(殆)'는 '시(始)'와 '태(胎)'와 통하여, '조짐'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조짐의 뜻에서, '위태롭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욕(辱)은 촌(寸) + 진(辰)의 회의자(會意字)입니다. '촌(寸)'은 '손'의 뜻이고, '진(辰)'은 돌 또는 조개껍데기로 만든 풀 베는 농구(農具)를 본뜬 것입니다. 제초구(除草具)로 풀을 베어 널어 놓다의 뜻에서 패생하여, '싹을 따다, 욕보이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는 '진(辰)'은 '별. 때'를 뜻하고, '촌(寸)'은 법(法)을 뜻합니다. 옛날 농사하는 데, 별로써 때를 알았습니다. 그 때를 잃는 자는 죽이어 욕을 보였으므로 진(辰)과 촌(寸)을 합하여 '욕보이다'의 뜻을 나타내며, 받은 것이 과분하여 송구스럽다는 뜻도 나타냅니다.
근(近)은 착(辵) + 근(近)의 형성자(形聲字)입니다. '근(近)'은 물건을 작게 만들기 위한 칼의 뜻입니다. 거리나 시간을 '작게 하다, 가까이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치(恥)는 심(心) + 이(耳)의 형성자(形聲字)입니다. '이(耳)'는 '귀'의 상형으로, 부끄러워서 귀가 빨개지다의 뜻인데 여기에 '심(心)'을 붙여서, '부끄러워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태욕근치(殆辱近恥)에서 태(殆)는 '위태할 태, 가까울 태, 거의 태, 다가설 태'로 새겨집니다. 욕(辱)은 '욕될 욕, 욕보일 욕, 욕할 욕, 욕 욕' 등으로 새겨지고, 근(近)은 '가까울 근', 치(恥)는 '부끄러울 치'입니다.
태욕(殆辱)은 '위태로움과 수치스러움'으로 새기기도 하지만, '수치스러움에 다가서다, 수치스러움에 이르다' 즉 '욕됨에 이르다'로 새겨 볼 수 있습니다. 근치(近恥)는 '치욕(恥辱)에 가깝다, 수치(羞恥)에 가깝다' 즉 수치가 눈앞이다 이런 뜻입니다.
따라서 태욕근치(殆辱近恥)는 '욕됨에 이르면 수치가 눈앞이다.' 라는 뜻입니다.
《노자(老子)》『제44장 입계(立戒)』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명성과 목숨 중 어느 것이 소중한가?
목숨과 돈 중에서 어느 것이 귀중한가?
얻는 것과 잃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괴로운가?
그런고로 너무 소중히 하고 아끼면 반드시 크나큰 손해를 보며
많이 감추어 두면 반드시 크게 잃어버린다.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을 것이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고.
언제까지나 장구할 수가 있다.
名與身孰親 身與貨孰多 得與亡孰病 명여신숙친 신여화숙다 득여망숙병
是故甚愛必大費 多藏必厚亡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시고심애필대비 다장필후망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
명성과 목숨 중 어느 것이 소중한가 물으면 목숨이 소중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명성을 구하려고 애를 씁니다.
또 목숨과 돈 중에 어느 것이 귀한가 물으면 누구나 목숨이 중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목숨을 내놓고 악착같이 돈을 벌고자 합니다. 정당하게 노력하여 버는 돈을 누가 뭐라 할까마는 문제는 돈이라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부당한 방법으로 벌려고 하는 데 있습니다. 뻔히 걸리면 형벌을 받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남의 돈을 내손에 넣으려고 도둑질을 하고 사기치거나 횡령을 하고 심지어는 인명을 해치는 일도 서슴치 않습니다.
아무리 소중한 명예와 재물이라도 자신의 목숨과 바꿀 수는 없습니다. 무릇 지나치면 욕이 돌아오고 겸손하면 칭찬을 받는 법입니다. 높은 지위를 얻었다 해서 많은 재물이 있다고 해서, 지나친 욕심을 부리면 자리는 위태롭게 되고 욕됨이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를 알면 욕됨이 이르지 않고, 멈춤을 알면 위태롭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어리석고 용렬한 자가 많아서 분수를 알지 못해 욕을 당하고 멈춤을 알지 못해 구렁텅이에 빠지는 자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런데 어리석고 용렬한 자는 교만한 법이어서 자신의 지위나 재력을 믿고 권력을 휘두르고 남용하여 세상사람들의 지탄을 받아 욕됨에 이르렀는데도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오히려 뻔뻔하게 반격하곤 합니다.
《맹자(孟子)》『진심장구 상(盡心章句上)』에서 맹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는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된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부끄러워할 것이 없다."
[人不可以無恥 無恥之心 無恥矣(인불가이무치 무치지심 무치의)]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수오지심(羞惡之心)합니다. 이를 맹자께서는 사단(四端)의 하나로 세우면서 이는 의(義)의 근본이라 했습니다. 맹자께서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이 네 가지 마음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무릇 사람이란 자기가 잘못을 했다면 마땅히 부끄러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른다면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얼마나 구차한 삶을 사는 것인가?
다음은 《법구경(法句經)》『진구품(塵口品)』의 부처님 게송입니다.
「구차한 삶 살면서도 염치 모름이
긴 부리를 갖고 있는 까마귀 같아
뻔뻔하여 욕을 참고 허세부리는
이런 삶을 더러운 삶이라 한다.
苟生無恥 如鳥長喙 强顔耐辱 名曰穢生
구생무치 여조장훼 강안내욕 명왈예생」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구차한 삶을 살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긴 부리를 교만하게 놀리는 까마귀처럼... 누가 뭐래도 얼굴에 두껍게 철판을 깐 듯 뻔뻔스러운 사람, 이미 부끄러움을 모르기 때문에 누가 욕을 해도 괜찮은 듯 참아 내며 허세를 부립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와 같은 삶을 '더러운 삶[穢生]이라고 부릅니다. 후안무치(厚顔無恥). 뻔뻔스러워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더러운 삶은 청산해야 할 대상입니다.
작년 가을에 터진 소위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朴槿惠 崔順實 國政壟斷)사태'로 현재 탄핵정국(彈劾政局)인데, 당사자인 대통령이나 비선실세, 관련자들의 행태를 보면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구차한 모습이라 후안무치(厚顔無恥)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이런 삶은 '더러운 삶[穢生]'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욕심을 멈추지 않는 한 욕심을 채우기도 전에 욕된 꼴을 당하여 추락하고 말 것이니, 과욕(過慾)은 화(禍)를 부르고[過慾招禍] 욕됨에 이르면 수치가 눈 앞에 있음[殆辱近恥]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만족을 알면 욕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습니다.
욕됨에 이르면 수치가 눈 앞에 가까이 있음을 안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처세는 임고행즉(林皐幸卽)인데 다음 시간에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