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평화의 주님! 오늘 이렇게 주님의 전에 나와 함께 모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그저 모이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하다는 것을 이렇게 극적으로 느끼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60여 년을 살아온 제 삶 속에서 신념처럼 믿어왔던 당신의 존재에 대해 가끔, 사실 그보다는 더 자주 당신의 존재를 의심하곤 했습니다.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계신다면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 지난 열흘 동안에도 여러 번 의심했습니다. 연이은 실패 속에서 무디어진 칼날, 저들은 저리 철옹성인데 우리는 덩치가 커져도 작아진 그들을 당해낼 수가 없구나. 꼼수와 계략, 사명감 뒤에 숨은 지독한 탐욕, 대를 이은 무례를 보면서도 조용히 눈을 감을 밖에 ... 그렇게 좋은 기회가, 소중하게 만들어 온 희망이 비누거품처럼 날아가 버렸을 때, 역시 악은 철저하고 성실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린 철저하지 못했고, 깊지 못했으며, 자주 잊어버리고 핑계를 댔습니다.
트럼프가 다시 세워지고, 북과 우리의 관계가, 통일의 꿈이, 평화의 바람이 이제 내 생애 가운데선 그 달큰한 훈풍을 다시는 맛볼 수 없을 것 같아, 절망하고, 속이 쓰려, 내게 남아있는 많은 날들에 대한 무력과 지루함으로, 당신의 존재를 묻고 끊임없이 의심했습니다.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계신다면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 그러다 문득, 우리를 부르시는 이, 우리를 깨우시는 이, 잔잔히 알게 하시는 이, 늦은 깨달음으로 서로를 응시하게 하시는 이, 어? 어? 어! 발가락에 힘 모아, 끙차! 일어나게 하시는 이, 우리를 모두 손잡고 함께 일으키시는 이
당신의 깊은 뜻 몰랐습니다. 당신의 우리를 통한 계획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꿈을 묻지 않았습니다.
아우슈비츠 학살의 수용소에서, “하느님, 당신은 이 순간에 어디에 계십니까?” “하느님은 고통당하는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 고통당하신다"
다시 희망은 우리 가운데, 멋지게, 신나게, 이렇게 재미있게, 웃기게, 유쾌하게, 보수의 심장에서, 어린 여성들의 힘으로, 세대 간의 벽을 허물고, 보수와 진보의 골을 메우고, 기쁘게, 기쁘게 함께 피어올랐음을 고백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희망을 꿈꾸며 살아보겠습니다.
정의를 강물처럼, 평화의 바람으로 우리와 늘 함께하고 계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