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 생각: 불쑥불쑥, 불끈불끈! ◈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만델링’ 커피 씨앗을 구해 약 두 달 전에 상토를 담은 포트에 수 백 개를 심었다. 물에 열흘 정도 담가 두고 부풀린 후, 이른 발아를 기대하는 마음을 전하고는 매일매일 물을 주는 수고도 잊지 않았다.
한 달여 후면 싹이 돋아날 것이라는 말과는 달리 두 달이 다 되어감에도 모종 포트는 꿈쩍을 하지 않았다. 조급함은 씨앗을 헤집어보는 무지로 이어지고, 포트 속 씨앗은 눈곱만큼, 아니 깨알만 한 싹(싹이랄 것도 없이 그저 약간 푸른 빛)을 간직한 채 나의 인내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얼굴을 쳐들고 꼿꼿이 서 있었다. 그러고도 열흘쯤 지났을 때, 난 또 한 번의 폭력을 행사하며 포틀 헤집어 팠다. 역시나 같은 얼굴...
비가 한바탕 훑고 간 이른 아침, 포트에 물을 주려는데 상토가 솟아 있었다. 마치 개선장군의 어깨처럼 부풀려진 상토 안에는 콩나물 대가리 같은 머리와 구부정한 등을 보이며 커피 싹이 하나둘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불쑥불쑥, 불끈불끈! 그렇게 커피 싹들은 두 달을 훨씬 넘긴 이른 여름 어느 날, 내게 신비감과 더불어 생명의 함성으로 다가왔다. 물론 아직도 대부분의 포트는 산사의 아침처럼 고요하다. 하지만 나는 조급함을 가지고 바라보던 때와는 다른 시선으로 그들을 보고 있다. “60이 넘으니 기다림도 사랑이더라!”며 설교를 한 내가 아니었던가!
불쑥불쑥 돋아난 커피 싹에서 불끈불끈 힘을 얻는 내 모습을 화장실 앞에 놓인 전신거울을 통해 바라보며 이마를 ‘탁’ 쳤다.
사람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 것들 앞에서 조바심을 낸다. 게다가 자기가 한 일이 보이지 않으면 더욱 치열하다. 내가 심었으니 꼭 생명이 되어야 하고 좋은 결과를 보여야 한다는 조급함이 불러온 여유 없음의 결과로 드러난 나의 민낯이다.
준공과 영업허가와 대출이라는 일직선상에 놓인 일들로 하루하루가 버겁다. 그러다 보게 된 커피 싹의 불쑥불쑥과 불끈불끈은 나를 일반적으로 돌려놓기에 충분했다. 아니, 마음은 아직도 갈라져 있지만, 사람은 미워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부터는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커피체리 하나를 입에 물었다. 달큰하다. 두 알의 씨앗이 입안에서 돈다. 하나와 하나를 포개면 원이 되는 씨앗을 느끼며 반으로 갈라진 몸과 마음을 붙이고 풀칠을 했다.
물 호스를 집어 들었다. 약한 물줄기 너머로 무지개가 떴다. 무지개 사이에서 만델링의 다크 초콜렛 향이 났다.
불쑥불쑥, 불끈불끈! 불끈불끈, 불쑥불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