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殆辱近恥 林皐幸卽 (태욕근치 임고행즉) ② (백운)
【本文】 殆辱近恥 林皐幸卽 태욕근치 임고행즉
욕됨에 이르면 수치(羞恥)가 눈앞이니
산수간(山水間)에 나아감이 바람직한 일이로다.
【解說】
지난 시간에는 욕됨에 이르면 수치(羞恥)가 눈 앞에 가까워진다는 태욕근치(殆辱近恥)에 대하여 공부하였는데, 이번 시간에는 그에 상응하여 취할 수 있는 처세인 임고행즉(林皐行卽)에 대하여 공부할 차례입니다. 무슨 뜻인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임고행즉(任皐行卽) 산수간(山水間)에 나아감이 바람직한 일이로다.
우선 글자의 자원(字源)부터 알아보고 그 뜻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림(林)은 목(木) + 목(木)의 회의자(會意字)로, 나무가 늘어선 모양에서, '수풀'의 뜻을 나타냅니다.
고(皐)는 상형자(象形字)로, 흰 머리뼈와 네발짐승의 주검의 희게 빛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파생하여 수면이 희게 빛나는 '늪'의 뜻을 나타냅니다.
행(幸)은 상형자(象形字)로, 쇠고랑의 상형(象形)입니다. '집(執)'이 쇠고랑을 찬 사람의 상형인데 반하여, 행(幸)은 다행이도 쇠고랑을 면하여 행복한 뜻을 나타냅니다.
즉(卽)은 비() + 절(卩. )의 회의자(會意字)로, '비()'는 먹을 것의 상형이고, '절()'은 무릎 꿇은 사람의 상형입니다. 사람이 밥 먹는 자리에 나아가다의 뜻에서, 일반적으로 '나아가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곧'의 뜻으로 쓰입니다.
임고행즉(林皐幸卽)에서 임(林)은 '수풀 림', 고(皐)는 '물가 고, 늪 고', 행(幸)은 '다행 행, 바랄 행, 기뻐할 행, 즐길 행', 즉(卽)은 '곧 즉, 나아갈 즉'입니다.
임고(林皐)에서 임(林)은 평탄한 땅에 우거진 수풀이고, 고(皐)는 '물가, 늪'이란 뜻이니, 임고(林皐)는 '숲이 있는 물가, 소택(沼澤)이 있는 숲'을 말합니다. 또, 임(林)은 산림(山林)을 말하고, 고(皐)는 물가를 뜻하니 산천(山川) 혹은 산수(山水)라고 풀이할 수도 있습니다.
행즉(幸卽)은 '즉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즐겨 나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임고행즉(林皐幸卽)은 '산수간(山水間)에 즉시 나아감이 바람직한 일이다.' 라고 새겨집니다. 또는 '산천(山川)에 나아가 즐길 일이다.' 라고 풀이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임고행즉(林皐幸卽)은 '산수간에 나아감이 바람직한 일이다.' 또는 '산천(山川)에 나아가 즐길 일이다.'라고 새겨집니다.
산수간에 사는 삶이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니 자연에 순응하는 삶에는 거짓이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거짓이 없으니 다툴 일이 없고 자신을 나타내기 위하여 권위를 세우고 세력을 도모할 일도 없습니다. 자연속에 자재로이 소요유(逍遙遊)하면 도인이 따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산수간(山水間)에 즉시 나아감이 바람직한 일이고, 산천(山川)에 나아가 즐길 일인가 하면, 앞 절의 태욕근치(殆辱近恥)에 기인합니다. 욕됨에 이르렀는데도 버티기에 들어가면 수치(羞恥)스러운 치욕(恥辱)을 당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훌훌 털고 산수간에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것이 마음 편하기 때문입니다.
세속의 벼슬길에 나아가 지위가 높아지고 총애가 높아지면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가짐이 겸손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교만심이 일어나기 쉽고 권력을 행사하고 싶은 마음에 그 힘을 부당하게 행사하기 일쑤입니다. 그렇게 되면 온갖 비리(非理)가 그로부터 생기게 되고, 그 힘에 의해 압제(壓制)되는 사람은 항거심(抗拒心)이 들어 부당한 압제에 항거하게 되고 그 비리를 고발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영화는 다시 욕됨에 이르게 되는데 그 이전에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물러나면 다행이려니와 한번 잡은 권력을 놓기 싫어하면 치욕을 당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작년 가을에 터진 소위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朴槿惠 崔順實 國政壟斷)사태'로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彈劾)이 발의되기까지 국민들은 대통령의 혼용무도(昏庸無道)에 대한 분노로 들끌어 촛불을 들고 대통령의 하야(下野)를 외쳤습니다. 여기서 하야(下野)는 관직에서 물러나 야인(野人)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인데, 천자문의 임고행즉(林皐幸卽)과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헌법을 유린(蹂躪)하여 국정(國政)을 수행(遂行)할 수 없게 되었으니 욕됨에 이른 것입니다[태욕근치(殆辱近恥)]. 열화와 같은 하야 요구에도 불구하고 요지부동(搖之不動)하다가 급기야 탄핵이 발의되어 탄핵 결정을 앞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을 사랑으로 포용할 수 있는 지혜와 아량이 있었더라면 욕됨에 이르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대개 욕됨에 이르는 것은 남의 충언(忠言)을 듣지 않는데 있습니다. 충언을 하고 직간(直諫)하는 것은 그 사람뿐만 아니라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기 때문인데 어리석고 용렬한 자는 이를 내치니 이러고도 직위를 보전하거나 보신을 한 자는 고금에 없습니다.
욕됨에 이르면 참회하고 물러나야 합니다. 자신의 과오를 통렬히 반성하고 참회하면 사람들은 곧 그 마음을 받아들여 애민(哀愍)하게 여길 것이니 야인(野人)으로 돌아오면 따뜻한 정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죄도 없다 하고 모르쇠로 일관하여 갈 데까지 가보자 하면 애민의 정마저 줄어들까 염려됩니다. 그렇다면 산수간에 마음을 비우고 노닐 수 있는 임고행즉(林皐幸卽)조차 어렵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람들은 욕됨에 이르러서가 아니라 산수간에 나아가 살고 싶어 합니다. 다사다망하고 경쟁하며 사는 복잡한 도시를 떠나 공기 좋고 인심 좋은 한적한 시골에 살고 싶은 마음은 모두가 갖는 여망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
끝으로 고려의 선승이셨던 나옹선사(懶翁禪師)의 선시를 소개하고 마칠까 합니다.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聊無愛而無憎兮 요무애이무증혜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