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 생각: 짜글이 행복! ◈
내리는 비가 처연하다. 이 또한 하늘의 이치이니 그 안에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창밖을 내다보는 것이 지금 내가 힐 일이지 않겠는가. 차 한 대가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난 기계적으로 걸어 나가 카페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전한다.
바람님 왈(曰) “그냥 계시다가 오면 말해도 되잖아요...”
“그래 그래도 되지, 하지만 입구까지 왔다가 문을 열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떨까? 그것도 빗길에...”
“하긴 그건 그렇죠. 하지만 아빠가 피곤하시잖아요...”
피곤을 조금이나마 줄이려면 현장에 있지 않는 것, 마침 점심때여서 한창 메뉴 개발에 전력하는 아들과 메뉴에 필요한 흑설탕을 살 겸 마트 주변 식당을 찾았다.
건축 중에 수도 없이 찾은 식당, 장마통이라 그런지 두 테이블에만 손님이 있다. 아들은 ‘짜글이’(돼지고기를 냄비에 짜글짜글 끓인 것)를 주문했으나 난 된장국과 계란탕이 따라 나오는 백반에 눈이 갔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메뉴마저 양보해야 하는 나이가 된 걸^^
주문을 막 끝냈는데, 뒤 테이블에서 ‘목사님!’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건축 중 포크레인 작업을 했던 분, 환하게 악수를 하고 돌아섰는데, 짜글이를 불에 올리던 사장님이 “저분이 밥값을 내셨어요.”라는 말을 전한다. 뒤 대각선으로 앉아 식사를 하시던 손님, 의아해하는 내게 여성분이 “들꽃교회 목사님이시죠. 아까 그분이 목사님이라고 불렀을 때 목사님이신 걸 알고 깜짝 놀랐어요. 저 모르시겠죠? 한참 전에 들꽃교회에서 예배 드렸거든요. 그때는 마스크를 하고 있어서 몰라보실거예요, 맛있게 드세요...”
짜글짜글 끓는 냄비 소리와 빗소리에 더해진 목사님이라는 소리가 유독 잘 어울리는 점심이었다. 누군가가 내 밥값을 내주고, 목사님이라고 불러주는 장마철이라면, 그래도 운치 있지 않은가! 나도 이런 행복한 우연의 주인공이 될 날을 기대한다.
‘저분이 밥값을 내셨어요, 000님이어서 놀랐어요, 맛있게 드세요’라고 할 그날을 기다리는 건 세상을 다 가진 것만큼의 행복이지 않겠는가!
비가 살짝 그친 사이로 왕잠자리 한 마리가 잔디에 앉아 숨을 고른다. 아마 저놈도 장맛비를 피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나 보다. 그래~점심은 먹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