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많이도 사랑하나봅니다 - 최은수 2007년 12월20일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들 들어야 했다. 술 한 모금 입에 대지 않고, 담배도 몇 년 전에 끊었고, 항상 차를 끓여 마시는 남자, 건강만큼은 그 누구보다 자신했던 내 남편인데 친구 따라 강남을 간다고 했던가. 친한 친구의 권유에 따라 남편은 친구와 함께 전주의 병원으로 대장 내시경을 받으러 갔었다. 결과가 나왔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남편에게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열두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전화 통화도 되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나는 수소문하여 같이 간 남편의 지인에게 전화를 하였다. 지인은 “형님이 대학병원으로 옮겨서 다른 검사를 받고 계신다.”고 했다. “끝나는대로 곧바로 연락을 드리겠다.”며 끊긴 전화. 두렵고 무섭고 초조했다. 분명 무언가 불길한 일이라는 느낌이 왔다. 그러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작은 용종을 재거하는 수술을 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들어온 남편의 전혀 다른 목소리였다. 목소리만 듣고도 나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난 바보가 아닌데, 난 너무나도 남편을 잘 아는데....... 순간적으로 ‘당황하지 말자’고 ‘침착하고 차분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편의 수술을 준비했다. 남편은 수술하기 며칠 전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다행히 다른 장기에는 아무 이상이 없고 ‘대장암’이라고 했다. 그 때부터 남편이 견뎌야 하는 수술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인터넷 속에 있는 많고 많은 정보들 속에서 때로 희망을 읽고, 수 없이 절망을 읽어야만 했다. 그래도 난 강한 척 했다. 그리고 곧바로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했고 다음날 수술실로 향했다. 애써 담담한 척 하는 남편 앞에서 나 역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서로를 의지한 채 두 손 꼭 잡고 수술실로 향했다. 그리고 남편은 수술실로 밀려들어갔다. 나는 울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서러움, 그 서러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나는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렸다. 사랑이라는 미명아래 내가 그 사람과 함께 살아온 시간들, 그렇게 많은 시간을 같이 했음에도 못해본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제는 아이들도 잘 자라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이제부터는 참으로 사랑만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데, 나는 그 사람을 보낼 수 없는데....... 그냥 그렇게 한없이 울고 또 울었다. 차갑고 어두운 수술실에서 홀로 무서움과 두려움에 맞서 싸우고 있을 남편에게 내가 힘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가슴이 아파 울고 또 울었다. 많은 시간을 사랑과 미움도 함께 나누고, 아픔과 기쁨도 함께하고, 희망과 절망도 함께하며 살아온 그 사람을 홀로 수술실로 실려 보내고 그냥 주저앉아버렸다. 그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남편과 보냈던 수많은 시간들이 내 곁을 맴돌았다. 철없이 만나 멋모르고 사랑을 했고, 어린 탓에 세상을 몰라서 두려움 없이 살았고, 내 삶이려니 여기며 30여년 한길만을 바라보며 걸어왔었다. 그런데 수술하는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 그이와 살아온 많은 시간들의 아픔과 그리움과 사랑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예정되었던 수술 시간이 초과되어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도 수술시간이 끝났다는 안내 표지판에 남편의 이름은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OOO 수술중- ‘왜인가?’ 싶어 초초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젠 두려움에 눈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누구인지도 모르는 신들에게 나는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남편을 살려주세요! 남편을 살려주세요! 우리는 너무나도 많이 죄를 지었고,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다 함께 하지 못했는데, 남편을 살려주세요! 남편을 살려주세요!” 빌고 또 빌었다. 수술실 문이 열렸다 “000 보호자분~” 하는 소리에 후들거리는 몸으로 수술실로 달렸다. 남편을 그 동안 아프게 했을 종양덩어리를 나와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우선 수술한 환자의 상태가 궁금해서 회복실에 있는 남편을 향해 뛰었다. 마취가 깨면서 통증에 소리쳐서인지 남편의 목소리는 쉬어있었고, 남편의 눈가에 흐르던 눈물, 그렇게도 강건했던 사람이 어린애마냥 아파하며 울부짖던 그 모습. 지금 이 순간에도 내 가슴이 저리는 것을 보면 나는 아마도 남편을 참 많이도 사랑했었나보다. 그리고 2년여라는 시간이 흘러간 지금 내가 병실에 누워있다. 남편의 무거운 어깨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파 일을 시작했다. 그리곤 진짜로 열심히 앞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왔었다. 그래서 지쳤는지 대상포진이란다. 별로 큰 병은 아니지만 조금은 쉬어야한다는 병원의 권유로 병실에 누워 글을 쓰며 조금씩 잊혀져가던 남편의 수술실 앞에서의 내 모습을 떠올려봤다. 얼마나 간절히 원했던가? ‘남편이 살아만 준다면, 남편이 살아만 있어 준다면 내 모든 걸 다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건만 생활이라는 변명 아닌 변명으로 남편에게 소홀했고 일을 한다는 핑계로 너무나도 무심했다는 생각이 나를 쓸쓸하게 한다. 이제 남편은 항암치료도 무사히 마치고 3개월에 한 번씩 정밀검사만 받는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러나 뒤돌아보면 남편을 위해 내가 무엇 하나 잘한 것이 없는 것 같아 못내 아쉽고 미안하다. 지금 내 병실엔 남편이 잠들어있다. 힘든 수술을 잘 견디고 여기까지 온 남편, 보잘것없고 초라하게 늙어가는 나를 지켜주겠다고 불편한 잠을 마다하지 않는 남편, 그 사람이 있어서 그냥 좋고, 잠든 모습이나마 바라볼 수 있어서 행복한 걸 보면 난 아마도 남편을 참 많이도 사랑하고 있나보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 남편과 예쁜 여행이라도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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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5.28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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