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나를 마셔버린 날외1편
윤인자
한 여름에 서리가 내린 듯
피부에 닭살이 돋고 오한이 난다
어제는 너무 속상한 일이 있어
못 마시는 소주를 통째로 한 병을 마셨다
술을 마시는 순간 뜨거운 것이
간질간질 속을 태우며
위를 지나 내장으로 내려갈 때는
느낌이 싸하니 고추처럼 뜨겁다
발끝에서부터 다시 혈관을 타고 역류하며
나를 감전시키고 마비시킨다
얼굴까지 화끈하고 혀가 꼬부라져
방언처럼 말문이 터지고 욕이 쏟아진다
나는 술을 마시고 술은 나를 마시고
혈관이 터질 듯 숨이 목까지 차오르는데
기분이 좋았다가 우울하다가
변덕을 부린다
결국 술에게 잡혀 먹혀 버린 것이어서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는 길이 뚝 끊겨
내 삶의 길이 보이지 않고
투명한 속이 비치는 소수병만 딩군다
오늘은 길을 잃고 정신도 잃고
잠시 양 갈래 길 위에서 서성인다
국화차를 마시며
윤인자
유리 주전자 속에 마른 국화꽃,
뜨거운 물을 부어 난로에 올린다
속이 훤히 보이는 유리 주전자에서
마른 국화가 활짝 꽃을 피운다
탁자에 앉아 시집을 읽노라면
국화의 노란 꽃술은 가을을 우린다
국화차를 유리잔에 따라
코에 대고 향기를 음미하면
노란차 속에서 그리움이 피어나고
창밖의 바람소리도 재우는
국화차를 마시는 긴 겨울밤
프로필
-2011년 리토피아 등단 신인상 수상
시집 : 『에덴의꿈』『 스토리가있는섬, 신안島』 『시가열리는 과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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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시에 가을호
윤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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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6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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