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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클제1009-1010회 제7기 신곡 천국편 제12곡(33-34)2024-8-24~2024-8-31
신곡(The Divine Comedy)
천국편(Paradiso) 제12곡/제4 태양천(太陽天:The Heaven of the Sun)
성.보나벤투라가 성.도미니쿠스를 찬양함
강사: 김신숙 선생
1. 제 12 곡의 개요
1.두겹의 장미화환(1-27)
2.보나벤투라의 등장(28-45)
3.도미니쿠스의 출생지(46-72)
4.도미니쿠스의 업적(73-126)
(a)그리스도의 참된 종(73-96)
(b)도미니쿠스와 이단의 싸움(97-111)
(c)프란시스회의 분열을 개탄함(112-129)
5.둘째원의 혼들을 소개함(130-145)
6.소감과 교훈
2. 줄거리
아직도 제4 태양 천이다. 첫째 원을 에워싸고 둘째원이 돌기 시작한다. 아퀴나스가 강론을 마치자(11곡), 화환(花環)같은 넋들이 돈다. 12넋으로 구성된 화환(花環)이 첫 바퀴를 둘러싼다. 두 번째 바퀴의 대변자는 프란시스회 소속의 보나벤투라(St.Bonaventura:1221-1274)이다. 전곡(前曲)에서 하늘의 조화(調和)와 균형(均衡)속에서 도미니쿠스회 성.토마스 아퀴나스는 성.프란시스(St.Francis)의 삶과 업적(業績)을 찬양(讚揚)했다. 12곡에서는 이에 대한 화답(和答)으로 프란체스코회 소속의 성.보나벤투라(St.Bonaventura)가 도미니쿠스의 생애와 업적을 찬양한 뒤, 프란시스 수도원(St.Francis 修道院)이 회칙을 잘못 해석하고 두 쪽으로 분열 되었고, 부패한 것을 탄식한다. 이어서 그는 둘째 원의 멤버들을 단테에게 소개(紹介)한다.
3. 내용 분해
①두 겹의 장미 화환(1-27행)
12곡의 서막이다. 빛으로 구성된 두 원(20행)의 하나(안의 것)가 밖의 것에 울림(echo)과 반사를 하고, 양원의 완전한 조화 속에서 움직인다. 신학적(神學的)으로 원들의 배열(配列)이 중요하다. 바깥 원의 원천(源泉)이 되는 속의 원은 주로 도미니코회원들로 구성되어있다. 그들은 사랑의 실천보다 학문을 강조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에 의하면 이해(理解:understanding)는 사랑의 행위(the act of love)에 선행(先行)한다고 했다. 단테 역시 학문탐구자는 사랑하는 자들의 근원이 된다고 보았다. 이 두 서클 사이의 반사와 조화는 두 리더인 프란시스와 도미니크의 활동 속에 반복 된다. ‘축복받은 불꽃(1행)’ 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혼이다. ‘거룩한 맷돌(3행)’은 성스런 영혼들의 원이다. ‘두 번째 원이 그 원을 감싸서(박상진역,4행)’-첫째 원은 도미니쿠스의 원이고 둘째 원은 프란체스코의 원이다. 헤라(Juno라고도 읽음)는 제우스(Jupiter)의 아내이다. 시녀는 무지개 여신 이리스(Iris)이자 신들의 전령(messenger)이다. ’사랑 때문에 죽어간 저 뜨내기 계집(14-15행)‘ 은 <변신>에서 따온 이야기로 보인다. 님프(精靈) 에코(Echo)가 제우스의 연애행각을 돕다가 헤라의 분노를 사서 말의 마지막 음절을 반복하는 외에 말하는 기능을 박탈당했다. 나르키소스가 그녀의 사랑을 돌이키지 못하자 소리만 남긴 채 사라졌다. 나르키소스를 사랑했지만 응답을 받지 못하고, 목소리만 남긴 에코의 이야기이다. 16-18행의 무지개는 창세기(9:8-17)에서의 인용이다. 단테는 이교의 신화와 성경에서 예를 들곤 했다. 안팎의 화환들이 화답하며 돌더니 한 순간에 그쳤다(22-27행). 신학을 제대로 해야 사랑의 실천을 바로 할 수 있다.
②보나벤투라의 등장(28-45행)
‘그가 시작하되(31행)’-그는 보나벤투라(1221-1274)이다. ‘내 길잡이(32행)’는 프란체스코이다. ‘그 분’은 도미니코 이다. 11곡에서 프란체스코를 말씀했으니 여기선 도미니쿠스의 생애와 업적을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담의 죄에 대하여 비싼 값을 치른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십자가(기치,38행)의 길을 제대로 따르지 못할 때, 하나님(임금님,40행)이 제자들을 은혜로 돌보아 주셨고, 그리스도는 (천국11곡34-36행) 프란체스코와 도미니코 같은 두 용장을 보내시어 흩어진 교회(신부,44행)를 도우셨고, 모으셨다.
③도미니쿠스의 출생지(46-72행)
46-57행은 도미니쿠스의 출생지에 대한 묘사이다.‘제피로(48행)’는 서풍이다.‘싱싱한 잎새들’-유럽의 봄을 묘사하는 말이다.‘저기 저쪽’은 스페인이다. 사자와 탑이 쌍을 이루어 아래 위로 나뉘어 새겨져 있다. 위의 사자상이 탑을 지배하고, 아래 사자상이 지배를 받는 거기 칼라로가라는 작은 마을에서 도미니쿠스가 태어났다. 도미니쿠스(Dominicus,170-1120)는 스페인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났다. 도미니우스는 라틴어로 하나님(주님)이고 도미니쿠스는 하나님의 소유격이다. 이렇게 성인의 이름은 주님의 것이라는 뜻이 있다. 14세에 팔렌시아(Palencia)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후일 그는 외교사절의 임무도 수행(遂行)하였고, 알비 이단(Albigensia)과 투쟁하였다. 1215년에 호노리우스 3세로부터 도미니코 수도회 인가를 받았다. 1219년 수도회의 본부를 볼로냐로 옮겼다. 1221년 거기서 죽다. 1234년 그레고리 9세가 그를 시호(諡號)했다. 프란체스코가 청빈과 결혼함(11:61-63행) 도미니쿠스는 신앙과 결혼했다. 세례를 통하여 얻은 신앙은 그를 원죄에서 자유롭게 했고(가톨릭) 그 후 그는 이단으로부터 신앙을 변호했다(61-63행). 유아(도미니쿠스)를 대신하여 신앙을 고백한 모친(代母)은 꿈에 그와 그의 믿음의 후손들이 맺을 열매를 보았다(64-66행). 그의 이름은 도미니우스(주격)의 소유격(도미니쿠스)이다.
④도미니쿠스의 업적(73-129행)
-a.그리스도의 참된 종(73-96행)
가난에의 권유(마19:21)를 받아들였으며‘ 유아 때에 ‘이를 위하여 내가 왔노라(막1:38)는 듯이 어머니에게 보였다. 아버지 이름 펠릭스는 복되도다라는 뜻이고, 어머니 조반나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뜻이다. 오스티아(1271년사망)는 법령집의 주석가 였고, 당시 뛰어난 의사였던 타데오(1235-1295) 등과 같이 세상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영원한 만나를 사랑했기에 짧은 시간에 큰 신학자와 교회를 지키는 자가 되었다.‘자리(The See)'는 교황좌이다. 그리고 그는 성무(聖務)에서 부당한 이익을 얻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부임하기 전에 비어있던 자리에 대한 급료나 십일조를 요구하지 않았다. 교황께 그가 요청한 것은 방황하는 세상에 대항하여, 지금 단테를 둘러싸고 있는 24명(두 원)의 신앙(씨앗)을 위하여 싸울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b.도미니쿠스와 이단과의 싸움(97-111행)
1205-1214년에 도미니쿠스는 프로방스 툴루즈 지방에 일어났던 알비 이단에 대하여 급류처럼 싸웠다. 도미니쿠스의 개인 추종자들 혹은 그룹들이 많은 조직을 수도회 안에 세웠다.‘수레의 바퀴’는 도미니코 교회이다. 다른 바퀴는 프란체스코 교회이다. 바퀴(chariot)는 두 말이 이끄는 두 바퀴달린 전차를 뜻했다.
-c.프란시스회의 분열을 개탄함(112-129행)
보나벤투라는 프란시스회 출신으로 자기네 수도회의 부패를 말한다. 프란체스코가 닦은 길은 도미니쿠스 회처럼 타락하였다. 뒤축이 밟은 자국을 발끝으로 밟을 만큼 질서가 뒤집혀졌다. 프란체스코회는 규율의 엄격 준수를 고집하는 영성파와 완화를 주장하는 수도파로 쪼개졌다. ’가라지가 곳간에서 쫓겨났다(김운찬역,p480)'.영성파가 본회에서 분리되고 로마교회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118행은 가라지 비유(마태13:24-30)의 인용이다. ‘한 장 한 장’은 프란체스코 회칙이다. ‘나는 매양 그대로이다(122행)’-창시자의 정한 규율을 지키는 소수의 회원이 잇다는 뜻이다. ‘회칙에 충실한 자는 카살레(엄격파)나 아콰스파르타(완화파)에서 나오지 않았다(124-126). 보나벤투라(St.Bonaventura :1221-1274)는 프란시스파 수도사로서 1255-1256년에는 수도원 총장직을 역임했으며 추기경 및 알바노의 주교가 되었다. 어렸을 때 중병(重病)으로 시달릴 때, 프란시스가 치유(治癒)해 주었다. 치유를 받고 소년은 ‘보나벤투라! 라고 외쳤다. 보나벤투라는 이탈리어로‘다행이군!’이라는 뜻이다. 어머니가 그 소리를 듣고 이름을 보나벤투라로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보나벤투라가 쓴‘성 프란체스코의 전기’는 단테가 11곡에서 인용한 책이기도 하다. 그는 스콜라 철학계에서 플라톤의 지위를 가진다. 1274년에 리옹에서 죽었다. 그는 수도원장(1256)이 되었으며 세상일을 뒤로 미루었다.
⑤둘째 원의 혼들을 소개함(130-145행)
보나벤투라는 12명의 둘째 원을 구성하는 인물들을 소개한다. 그들의 대다수는 모두 프란체스코 회원들이다. 일루미나토는 귀족가문 출신으로 프란체스코와 함께 이집트에 동행(11곡100행)했고, 1280년에 죽었다. 아우구스틴은 아시씨 출신이며,1216년에 캄파니아 수도원장이 되었다. 프란체스코 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죽은 것으로 전해진다. 우고(1096-1141)는 수도원장, 피에트로 만자도레(1179사망)는 프랑스 신학자며 스콜라 학사를 썼다. 피에트로 이스파노는 천국에서 만난 단테 동시대의 유일한 교황이다 .나단은 다윗왕의 죄악을 꾸짖은 예언자이고, 크리소스톰(347-407), 4세기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설교자로 유명하다. 안셀무스(1033-1109)는 켄터베리 대주교이고, 도나투스는 4세기의 뛰어난 문법학자이다. 라바누스(776-856)는 아퀴나스의 제자였으며 후일 마안즈의 주교가 되었다. 보나벤투라의 옆에는 12번 째 조바키노(Joachim)가 있다(1130-1202).
그는 구약 성부시대, 신약 성자시대 그리고 평화와 완성의 성령시대를 처음으로 주창한 인물이다. 한 때 이단 처벌을 받았으나 단테는 그를 천국에 올려놓았다. 용장(144행)은 성. 도미니쿠스이다.
4. 소감과 교훈
①창시자의 순수정신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더러워지고 부패해짐을 본다. 가톨릭의 두 영성의 지도자가 세운 수도회가 설립정신에서 빗나간 모습을 보고 경각심을 얻는다. 그러므로 마치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중단 없는 정진이 필요하다. 이와 반대로 정체되어있으면 아무리 맑았던 물도, 고인물이 되고, 썩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어떤 기관과 조직도 부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배운다.
②12세기 가톨릭의 두 기둥이었던 도미니코 수도회와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그리스도를 따름에는 일치했으나 두 수도회의 강조점은 달랐다.‘지성’을 중시했던 도미니쿠스회와 ‘감성(感性;사랑)’을 중시했던 프란체스코의 관계가 주목을 끈다. 머리와 가슴은 상호 보완적이다. 단테는 12혼의 내원(도미니코회)이 외원(프란체스코회)을 반사하며, 외원은 거꾸로 화응(和應)한다고 했다. 이웃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하되, 학문과 이론이 뚜렷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한다. 이성 없는 사랑은 맹목, 맹신에 떨어질 수 있고, 사랑이 빠진 이성은 공허에 빠질 수 있다. 그러므로 신학공부를 무시하고 실천만을 강조하는 일부 목회자들에게 천국편 12곡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이와 반대로 이웃사랑의 실천 없이 신학 교리만을 강조하는 편향된 경우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교수들, 연예인들, 심지어 종교계의 인사까지 졸업하지 않은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사회에 충격을 던지고 있다.
(2005년 2월 4일, 2007.8.24,수정 2017.9.20 재 수정함. 홍응표 씀)
<참고도서>
1.단테의 신곡/차기테지음/필맥/2015/p516-519
2.최민순역/단테저/신곡(하)/을유문화사/1988/p632-640
3.Mark Musa Trans/The Divine Comedy(Paradise)/Penguine Classics/1986/p144-157
4.矢內原忠雄 土曜學校講義/天國篇/みすず書房/1976/p300-319
(참고자료)
● 교회사에 나오는 - 프란체스코 수도원 vs. 도미니쿠스 수도원
프란체스코 수도회(작은 형제들의 수도회)의 창설자이며 '아시시의 성자'로 불리는 프란체스코(Francesco, 1181?~1226)는 아버지가 프랑스와 상거래를 하였고 어머니는 프랑스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고향인 이탈리아의 아시시에서는 그를 작은 프랑스인 즉, 프란체스코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철저하고 자발적인 가난과 이를 통한 기쁨의 생활을 추구하였습니다. 프란체스코는 1209년에 뜻을 같이하는 11명의 동료들과 함께 <삶의 방식, modus vivendi>이라는 수도회칙을 정하고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에게 허락을 받아 ‘작은 형제들의 수도회’를 설립하였습니다.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의 생활은 설교하고(preaching), 찬양하고(singing), 구걸하는(begging)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께 찬양하고, 복음적인 가난의 삶을 사는 그들의 목표를 통해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13세기 교회와 수도원 개혁운동에 동력을 제공하였습니다. 보나벤투라, 둔스 스코투스, 윌리엄 오캄 등이 프란체스코 수도회 출신들입니다.
도미니쿠스 수도회(설교자들의 수도회)를 창설한 스페인 출신의 도미니쿠스(Dominicus, 1170~1221)는 프란체스코와는 달리 학문의 탐구를 강조하였습니다. 학문을 통해서만 이단을 반박하고 정통신앙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도미니쿠스회는 1216년 교황 호노리우스 3세의 정식 인가를 받은 뒤 급속히 유럽 전역으로 퍼졌으며, 프란체스코회와 더불어 중세교회와 수도원을 지탱하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이 수도회는 설교, 교훈, 교육, 신학탐구에 열중하여 많은 학자들을 배출하였는데, 토마스 아퀴나스, 알베르투스, 사보나롤라, 에크하르트, 타울러 등이 바로 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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