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너는 온다 - 이성부 시인의 봄 中에서
요즘처럼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이 이토록 소중하고 간절한 적이 또 있었던가요. 어쩜 우리는 그동안 내 가까이 있는 사람들, 공기나 물처럼 넘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들의 소중함, 이미 우리 손 안에 주어진 행복을 모르고 다른 데서 엉뚱한 것을 찾아 헤매느라 인생을 낭비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암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날이야말로 모든 것이 최상으로 조율된 최고의 날임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고양시와 제주도를 오가며 어머니 간병에 치중하는 요즘, 토요일 제주서 올라와 맞이하는 첫일요일인 어제(4/19일), 3 사람의 길벗과 함께 봄바람 쏘이며 야생화를 찾아나섰습니다. 봄꽃맞이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 걱정을 했지만 웬걸요, 우리는 야생화가 지천을 이룬 천상의 화원을 거닐었네요.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차가운 흙을 힘겹게 뚫고 간신히 얼굴 내민 꽃들을 행여나 밟을까 싶어 발걸음 조심조심 옮겨가며.
그래서 오늘의 후기는 우리가 만난 야생화를 위주로 적어보는데 혹 틀린 이름이 있으면 댓글로 정답 달아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금번 산행 개요 1군단 사령부 인근 고양시 목암교수마을에서 오전 10:15 걷기 시작→개명산(두루봉, 형제봉)→양주시와 파주시의 경계인 고령산(앵무봉)→14:20 파주시 보광사로 하산하는 산길 12km의 산행
오전 9시에 덕양구청에서 만난 네 사람은 일단 차 한 대는 하산 지점인 보광사에 주차를 시키기로 하는데 보광사 벚꽃이 아직 볼만하더라구요.
또 다른 차로 네 사람 모두 오늘 산행의 출발점인 목암교수마을로 와서는 오전 10시 15분에 개명산 오르기 시작
숲은 어느새 싱그런 연녹색의 신록을 이뤄 눈이 절로 시원해집니다.
오늘 첫번째 만난 꽃은 보랏빛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붓꽃이었습니다.
산행 시작한 지 40분, 오르막길 올라 11시경 도착한 개명산의 첫번째 봉우리. 그런데 국수봉이 언제 두루봉으로 변경되었지요?
두루봉에서 개명산 정상인 형제봉까지 가는 길은 이렇게 많은 진달래가 좌우로 도열하듯 늘어서 있는 능선입니다.
그 능선을 따라 걷다 잠깐의 내리막을 지나니
한 무리의 별꽃이 우리를 반겨줍니다
비가 예보되어 있는 오늘인지라 흐린 날씨지만 오히려 산행을 하기엔 시원하니 제격인 듯. 멀리 북한산의 오봉이 한 눈에 들어오네요.
저는 제비꽃은 보랏빛꽃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노랑제비꽃이 있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별꽃과 노랑제비꽃이 사이좋게 어울려 함께 피어 있기도 합니다.
산행 시작한 지 1시간 30분, 두루봉에서 40분 지나 개명산의 정상인 해발 547m 형제봉에 도착. 우리 네 사람은 이 곳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잠시 휴식 시간을 갖습니다.
점심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형제봉에서 고령산으로 가는 길을 찾아 나서는데
이렇게 하얀 꽃이 보이네요. 바로 남산제비꽃입니다.
예전엔 군 부대가 있는 이 지점에서 갑자기 길이 끊겨 당황스러웠는데 지금은 이렇게 안내 팻말까지 세워지고 잘 정비돼 있네요.
개명산에서 고령산으로 가는 산길은 별꽃, 각종 제비꽃, 노루귀 등 갖가지 야생화가 지천을 이뤄 그야말로 야생화의 천국, 천상의 화원이었습니다. 사진 속 노란 꽃은 피나물꽃
바위 밑에서 피어난 노루귀. 꽃은 이미 지고 노루귀 닮은 귀여운 잎이 돋아있습니다.
바위에서만 자란다는 매화말발도리의 꽃
개명산 형제봉과 고령산 앵무봉을 잇는 산길은 이렇게 좁은 길로 이어집니다. 그런 탓에 사람 발길이 드물어 다행히 아직은 야생화의 천국.
절벽과 그 위에 피어난 진달래가 절묘한 풍경을 연출하네요.
한 길벗님이 자꾸 등산 스틱으로 낙엽 사이를 헤집을 때 마다 마치 마술 같이 새로운 야생화가 나옵니다. 잎을 이렇게 높이 올려놓고 그 아래 은폐 엄폐해서 은밀하게 보라색 꽃 피운 족두리풀입니다.
이번에 찾아낸 건 현호색의 한 종류인 괴불주머니. 시력이 정말로 좋으시다는.ㅎㅎ
마치 봄과 가을의 공존 같은 풍경입니다.
갑자기 멈춰선 두 사람, 뭔가 자꾸 입에 넣는데 가까이 가 보니 진달래꽃을 드시더라는. 엊그제 비가 와서 깨끗하니 먹어도 괜찮을 거 같다네요. 그야말로 오늘 걷기는 '나는 자연인이다' 편입니다.ㅎㅎ
소로길이 거의 끝나고 앵무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직전 정말 반갑게 만난 꿩의바람꽃. 아직 꽃을 활짝 못피웠네요.
고령산의 정상인 앵무봉 으로 오르기 위해선 잠시 이런 오르막도 올라야 합니다.
오후 1시 25분에 고령산의 정상인 앵무봉에 도착. 산행 시작한 지 3시간 경과
고령산은 양주시와 파주시의 경계에 있습니다.
앵무봉 정상엔 전망대가 있는데 그 곳에서는 멀리 마장저수지가 보입니다.
그 곳에서 저도 한 장.ㅎㅎ
보광사로 내려오는 길은 두 코스가 있는데 우리는 경사는 급하지만 거리가 짧은 루트로 내려옵니다.
얼마나 많은 풍상을 겪어야 이런 모양이 될까요. 그 모습 보면서 참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룰루랄라 밝은 표정들 보니 다 내려온 거 같지요? ㅎㅎ
보광사 직전에서 겹황매화라고도 하는 죽단화를 만났습니다.
오후 2시 15분. 산행 시작한 지 4시간만에 하산 지점인 보광사에 도착합니다. 총 걸은 거리는 12km 정도네요.
부처님 오신 날을 열흘 남짓 남긴 보광사는 연등 장식이 한창인데 역시 코로나19로 마스크 착용 없인 출입 제한입니다.
보광사에서 도착해 원점인 목암마을로 가는데 비가 내립니다.
오늘이 4.19혁명기념일이자 穀雨라더니 원래 오후 6시경부터 비온다 했는데 어쩜 이렇게 산행 마치자 마자 비가 내릴까요. 정말 때를 잘 맞춰 산행을 마쳤네요.ㅎㅎ
코로나19로 차츰 지쳐가고 답답함이 가중되는 요즘, 선선한 바람으로 가슴은 뻥뚫리고, 연두색 신록으로 눈이 절로 시원해지는 가운데 야생화가 지천을 이룬 산길을 마치 천상의 화원을 거닐듯 참으로 행복한 산행아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