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65)
◇ 절름발이 만들기
배운것도 없고 집안 가난하지만 인물 하나만은 빠지지 않는 덕배
임참봉 열여덟살 무남독녀 도화와 남몰래 가끔 만나는데…
두사람 소문 들은 임참봉…둘이 만나는 물레방앗간 들이닥쳐…
덕배는 배운 것도 없고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인물 하나는 조선 천지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다. 열여섯이 되자 제법 남정네 티가 나 키는 훤칠하고 어깨는 떡 벌어지고 목은 울대가 불쑥 솟았다. 나무하고 지게 지는 처지지만 얼굴 허옇고 콧날 오뚝하고 눈썹은 시커먼 미남이다. 휘파람을 불며 냇가를 지날 때면 빨래하던 아낙네들의 자발없는 입놀림이 이어진다.
“덕배가 멱 감는 걸 먼발치에서 봤는데 물건이 보통 실한 게 아니여.”
“어느 년이 저놈 아래 깔릴지 생각만 해도 사지가 녹아드네.”
아낙들 사이에서 빨래하던 도화는 입을 꼭 다물었지만 가슴은 콩콩 뛰었다. 도화는 지난 단오 때 그네타기 시합에서 덕배와 쌍으로 그네를 타 광목 한필을 상으로 받은 후 남몰래 가끔 만나는 사이다. 덕배보다 두살 많은 열여덟 도화는 천석꾼 부자 임 참봉의 무남독녀 외동딸로 얼굴은 내세울 것 없지만 엉덩이와 젖가슴은 탱탱하니 색기가 넘쳤다.
덕배가 산에서 나무하는데 도화가 살며시 올라왔다. 들고 온 보따리를 풀어 송편을 덕배 입에 넣어주고 호리병에서 약주도 따랐다. 약주 몇잔에 달아오른 덕배를 도화가 쓰러뜨렸다. 처음이 아닌 듯 능숙한 솜씨로 치마를 벗어 풀밭에 깔고 덕배의 허리띠를 풀어 바지춤을 내리고는 자신도 고쟁이를 벗고 홑치마만 입은 채 덕배 위에 걸터앉았다. 딱 달라붙은 고추잠자리 한쌍이 요동치는 도화 어깨에서 날아올랐다.
소문은 들불처럼 퍼져 임 참봉 귀에까지 들어갔다. 달 밝은 어느 날 밤, 둘이 물레방앗간에서 한참 불이 붙었을 때 임 참봉이 들이닥쳤다. 물푸레 지게 고임대로 위에 올라탄 놈의 다리를 두 동강이 나라고 힘껏 두드려 팼는데 아래에 누웠던 덕배는 도망치고 도화가 똘똘 굴렀다. 이 약 저 약 다 써봐도 도화는 왼다리가 뻗정다리가 되어 잘름잘름 절었고, 덩달아 입덧을 시작해 부랴부랴 덕배와 혼례를 올리게 됐다.
부잣집에 장가갔으니 고생 끝이려니 한 덕배의 생각은 빗나가도 한참 빗나갔다. 노랑이 임 참봉은 솔티골 산지기가 살던 빈집으로 딸년과 사위를 내쫓고는 겨우 논 두마지기 밭 세마지기만 떼주고 머슴 부리듯 일을 시켰다.
덕배는 처갓집 머슴 노릇하랴 자기 농사 지으랴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데 밤일 또한 고달팠다. 절름발이 여편네는 하룻밤도 얌전히 자는 법이 없었다. 더구나 투기가 심해져 덕배가 길을 가다 동네 아낙과 인사라도 하는 날이면 날벼락이 떨어진다.
상강이 지나자 날씨가 제법 찬데 강 건너 양지마을 임 참봉의 백형이 상을 당해 모두 상가로 갔다. 임 참봉 내외와 도화는 상가에서 자고, 덕배는 시오리 길을 걸어 집에 와서 자고 이튿날 아침 다시 상가로 갔다. 이러기를 나흘째, 덕배가 집에 와 군불을 지피고 막 잠이 들었는데 문을 두드려 나가 보니 장인·장모였다.
“상가에서 며칠 지새웠더니 몸이 고달파 집에 갔는데 냉방이네. 자네 방에서 하룻밤 자야겠네.”
덕배는 꼼짝없이 안방을 내주고 마당 건너 곳간방에 불을 지피고 잠이 들었다.
얼마나 밤이 깊었나. 자지러지는 비명 소리에 안방으로 달려가니 장인·장모가 똘똘 구르고 도화는 다듬잇방망이를 든 채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다. 도화는 백부님 상가에서 그 며칠을 못 참아 달밤에 집으로 왔고, 안방에서 덕배가 웬 년과 어울린 줄 알고 미친 듯이 방망이찜질을 하고 보니 제 부모였다.
도화 어미는 시숙 구일장 출상도 하기 전에 저 세상으로 갔고, 아비 임 참봉은 왼다리 정강이가 부러져 절름발이가 됐다. 아비는 딸을 절름발이로 만들고 딸은 아비를 절름발이로 만들었다.